09_예쁜 잔과 예쁜 음료

by 슈히

2022년 12월 22일 목요일. 연말이니, 지인들 얼굴도 볼 겸 동호인 공사판 님을 초대했다.

“시간 되시면, 바에 놀러 오세요.”

하고 연락했더니, 그는 당일에 바로 찾아왔다. 다른 곳에서 중학교 동창과 1차를 마치고, 2차로 방문한 자리였다. 악수하며, 반갑게 맞았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공사판 님과 일행 한 명을 자리로 안내했다. 안경 쓴 남자 한 명도 바에 자리 잡았다.

“몇 분이세요?”

내가 물었다.

“혼자 왔어요.”

40대로 짐작되는 남자는 처음엔 말이 없고 조용했다.

“인디카 한 병 주세요.”

“네?”

뭘 달라는 건지 의아해서, 되물었다.

“저기 냉장고에 맥주요.”

“아, 네!”

코끼리가 그려져 있는 맥주를 꺼냈다. 인도산 술인가 했는데, 사장님 말씀으론 미국산이라고 했다. 인디카 IPA는 향긋한 맥주를 즐겨 마시는 이들이 선호할 만한 취향이란다.

‘수입 맥주도 종류가 무궁무진하겠구나.’

술을 안 마시고, 관심도 없었기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슈히 씨, 무슨 자격증 합격했다고 했죠?”

“조주 기능사요.”

“주조 기능사?”

“아뇨, 조주요. 주조는 다른 자격증이에요.”

혼자 온 남자는 맥주를 홀짝이다, 설명을 거들었다.

“주조는 틀로 제품 만드는 거예요. 조주는 칵테일이요.”

그때부터였다. 안경 쓴 남자가 공사판 님과 그의 친구와 셋이 대화하게 된 계기가.

“예전에 영어 강사로 근무했는데, 밤 10시에 퇴근했거든요. 술 마시고 싶은데, 친구들은 이미 다 집에서 쉴 시간이라서 불러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혼자 바에 오게 됐죠.”

그가 사장님과 나누는 대화 내용을 곁에서 들으니, 꽤 친분이 있어 보였다.

“사장님 또래이신 거죠?”

손님에게 물으니, 그가 발끈했다.

“또래라뇨! 사장님이 형님이신데. 제가 더 어려요!”

“이 손님도 단골이시군요. 알고 지낸 지 오래되셨어요?”

사장님에게 물었다.

“다른 곳에서 장사할 때부터요.”

“아, 그렇군요. 다른 곳에서도 영업하셨구나. 그럼, 이 가게 개업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같은 동네에서 작은 규모로 몇 년 운영하다가, 확장했어요. 여긴 개업한 지 일 년 안 됐어요.”

사장님이 대답했다.

“아이가 주말에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요.”

손님이 내게 말했다.

“오, 그래요? 저는 나가본 적은 없지만, 돈 많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그에 걸맞은 적절히 반응을 보였다.

“아내가 예체능 교육에 집착하는 편이라서요. 자기가 못한 걸 자녀한테 대신해주고 싶은가 봐요.”

좌석 한 칸을 띄우고 앉은 공사판 님과 친구는 혼자 온 이 남자에게 친절히 말을 붙였다.

“기타를 가르쳐요. 그게 가장 돈 안 드는 악기거든요.”

남자 셋은 명함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여기 온 덕분에 좋은 분을 만나서, 대화가 즐겁군요.”

뒷정리하랴, 설거지하랴 분주한 나머지, 공사판 님과 그다지 대화하지 못했다.

“슈히 씨, 마스크 좀 내려봐요. 얼굴 좀 보게요.”

공사판 님은 하이볼을 주문했다.

‘하이볼이 잔 이름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칵테일 하이볼도 있네!’

하이볼은 사이다와 위스키를 섞은 음료이다.

“슈히 씨도 한 잔 마셔요.”

“고맙습니다!”

사장님은 최근 직접 만든 피냐 콜라다를 꺼냈다. 파인애플과 황도를 갈아 혼합한 액체이다.

“황도를 넣으면 맛은 좋지만, 더 빨리 상해요. 어서 팔아야지.”

“손님에게 어떻게 유도하죠?”

“그게 곧 바텐더의 역할이죠.”

그는 튤립 잔에 버진 피냐 콜라다를 만들었다. 튤립 잔은 튤립처럼 잔 하부가 둥글고 상부는 길다.

피냐 콜라다에서 럼을 제외한 것이 바로 버진 피냐 콜라다이다. 붉은 그레나딘 시럽이 잔의 바닥에 깔려 파인애플의 노랑 빛깔과 조화를 이루었다. 사장님이 체리와 오렌지로 장식을 마치고, 내게 건넸다. 근무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사장님의 정식 칵테일을 맛볼 수 있었다.

‘예쁜 잔으로 마시니, 더 맛이 좋구나!’

피냐 콜라다(Piña colada)의 피냐는 스페인어로 파인애플을 뜻한다. 조주 기능사의 피냐 콜라다에는 럼 1¼온스, 피냐 콜라다 2온스, 파인애플주스 2온스가 필요하다.

블렌더에 재료를 먼저 넣고, 얼음을 넣은 후 간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블렌더의 뚜껑을 손으로 짚는 것이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 동작이다. 필스너 잔에 음료를 따르고, 체리와 파인애플로 장식한다.

피냐 콜라다의 기주(基酒)인 럼을 보드카로 변경하면, 치치(Chi Chi)가 된다.



20221221_버진 피냐 콜라다.jpg 버진 피냐 콜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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