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야크 섬&산 44좌
늘 그랬듯, 동행이 필요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여수 동행을 구했습니다. 이천에서 근무하는 문경인인데, 현재 일을 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금요일에도 시간 되겠네요?"
"네, 가능해요. 순천에서 출발하려고요."
"신분증, 생수, 간식 꼭 챙겨 오세요. 운동복 차림에 운동화도 꼭 신고요."
문경인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금요일 7시, 여수 연안 여객 터미널에서 집결했습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서, 칠흑같이 깜깜했습니다.
"전날 친구랑 술 마셔서, 늦잠 잤어요. 간식 살 시간이 없어요. 그냥 갈게요. 섬에 뭐라도 있겠죠?"
동행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뇨, 섬에는 아무것도 없을 걸요......'
초면인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할 순 없으니, 잠자코 있었습니다.
다행히, 편의점에서 김밥 두 줄, 빵 하나, 우유 세 개 등 간식을 넉넉히 산 편이었습니다. 마침, 집에서 귤도 넉넉히 챙겨서 가방에 네 개나 들어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둘이 충분히 나눠 먹고도 남을 양이었습니다.
여수 연안 여객 터미널의 또 다른 명칭은 백야도 여객 터미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7시 20분 배를 타고 개도에 갔다가 등산을 마치고, 다시 11시 15분 배를 타고 금오도로 나갈 계획이었습니다. 홍은 여자보다도 피부가 더 하얬습니다. 처음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승선권을 보니, 오빠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옷차림은 운동복이 아니었습니다. 치렁치렁한 청바지에 얇디얇은 캔버스화를 신은 채였습니다.
"운동복을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보니 온데간데없네요. 옷차림이 부끄럽네요......"
개도 화산항에 당도했습니다. 하늘이 흐렸습니다. 들머리가 어딘지 확신이 없었서, 불안했습니다. 마을 주민을 붙잡고 물어봤습니다. 여차저차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지도를 살피며 나아갔습니다. 홍은 평소에 등산을 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힘든 내색은 비치지 않았으나, 걸음이 느렸습니다.
"운동화 신고 오라고, 내가 말했잖아요."
"그러게요......"
"발이 많이 아프겠네요."
경치를 보며 간식을 나눠 먹었습니다.
"어떤 맛 우유 마실래요? 원하는 거 먼저 골라요."
그에게 양보했습니다.
"바나나맛 마실게요."
"그거 바나나맛 아니에요. 초당 옥수수맛이에요."
그는 마카다미아 초콜릿 맛을 골랐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간식을 먹은 후,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산비탈 경사가 꽤 심했습니다.
'캔버스화 신은 발로 화산항에 되돌아가긴 어려울 것 같은데. 어쩌지?'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봐,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그가 말했습니다.
"아까 간식 먹은 자리에 가방을 두고 왔나 봐요!"
홍의 클러치 백은 원래 내 배낭에 들어 있었고, 그 배낭을 홍이 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간식 먹느라 정신이 팔린 나머지 본인의 물품을 미처 챙기지 않은 것입니다.
"배낭은 제가 멜게요. 다시 돌아가서, 짐 챙기세요. 그리고, 지금 헤어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요. 정상까지 혼자 다녀올게요."
그와 헤어지고,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곧 정상에 닿았고, 청설모 두 마리가 냅다 나무에 오르는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울음소리가 괴이했습니다. '기기기긱 겍겍겍' 하고 울었습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몸집이 더 컸는데, 암수 한 쌍 같았습니다.
마을과 화산항이 내려다 보였습니다. 시계를 보니, 약 한 시간 남짓 남았습니다. 여객 터미널에 전화해 문의하니, 개도 초교로 하산하면 금방 화산항에 돌아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곧 사그라들었습니다. 하산하다, 홍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다음 일정에 대해 의사를 물으니, 뭍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11시 배를 탈 수 있었고, 우리는 작별의 인사를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