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야크 섬&산 43좌
출발하기 두 시간 전부터 일어났습니다. 외출 채비를 모두 마치고, 6시에 해운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통영 두미도 가는 6시 50분 배, 출발하나요?"
그러나, 대답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가는 배는 문제없지만, 오는 배가 결항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다행히 차선책이 있었습니다. 곧장 사천 삼천포항으로 향했습니다. 통영항에서 꼬박 한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반쯤 졸면서 운전했습니다. 신수항으로 가는 첫 배는 8시 20분 배인데, 추위를 견디며 한참 기다렸습니다. 한낮에는 영상이지만, 이른 아침에는 괴로울 정도로 매섭게 추웠습니다. 일교차가 매우 컸습니다.
주차장에 주차한 채 차 안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택시 한 대가 멈춰서는 게 보였습니다. 여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아들 둘에 딸 하나였는데, 엄마의 언성이 사나웠습니다. 배 안에서도 아이들이 산만하게 굴어서, 시끄러웠습니다. 어린 아들은 또래의 누이와 장난치며 뛰어놀았습니다.
"옷 더럽히지 마!"
엄마가 자녀들에게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검은 점퍼를 입은 사내아이가 의자 밑바닥을 쓸며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왜 저럴까......'
아이는커녕 조카도 없기에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이었습니다.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가 다가와 장부를 내밀었습니다. 승객들은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를 적었고, 뱃삯을 지불했습니다. 현금으로 2천 원이었습니다.
삼천포항에서 신수항까지 고작 10분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길고도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난롯불을 쬐며 손과 발을 녹이려 했으나, 실내는 마치 냉장고 같았습니다.
"혹시 대왕기산 가보셨어요?"
승객들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거기가 어딘데요?"
"아, 안 가보셨구나. 대구 마을 뒤라고 하던데요."
"아, 그래요? 안 가봤어요."
그들은 마을 주민들이지만, 대왕기산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마침내 신수항에 도착했고, 목적지인 대왕기산으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동안 방파제에 전시된 시들을 감상했습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작품은 없었습니다. 사천 출신의 작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언젠가 작품을 읽어야지, 다짐하며 휴대전화에 작품명과 작가명을 입력했습니다.
대왕기산 정상까지 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약 40분 걸렸습니다. 시계를 보니, 10시였습니다. 신수항에서 삼천포항으로 가는 배가 10시 40분인데, 촉박했습니다. 뛰어가면 가까스로 배를 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으나, 소용없었습니다. 정비가 잘 되지 않은 산길이라서, 얼마 못 가 헤맸습니다. 가보니, 낭떠러지였습니다. 식겁하며 물러섰습니다. 우거진 수풀 너머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넘실거렸습니다.
'침착하자!'
왔던 길을 되돌아갔습니다. 곧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사투를 벌인 증거로 바지에 바늘도깨비가 잔뜩 붙어 있었습니다. 따가워서, 얼른 떼어냈습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식당을 찾았으나, 휴무일이었습니다. 매점에 들러 컵라면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20대 초반으로 짐작되는 안경 쓴 여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섬은 인구가 몇 명이나 돼요?"
"잘 모르겠는데, 아마 약 200명 남짓 될 거예요."
"학교는 있어요?"
"초등학교 하나 있는데, 곧 폐교 돼요."
"그럼, 중고등학교는 어디로 가요?"
"배 타고 뭍으로 다니는 학생도 있고, 아예 사천으로 자취하러 나가기도 해요."
섬에는 죄다 노인들과 고양이들뿐인 것 같았습니다. 13시 30분 배를 타고, 육지로 돌아왔습니다. 긴 여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