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야크 섬&산 49좌
삽시도에서 배를 타고 고대도로 이동했습니다. 아까 삽시도 갈 때도 탄 배를 또 탑니다. '가자 섬으로'라는 배 이름이 희망차게 느껴져서, 마음에 듭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창의적인 이름입니다.
고대도는 개신교 최초의 성지라고 합니다. 먼 옛날 외국인이 이 먼 곳까지 와서 신앙을 전파했다는 이야기를 접하니, 새삼 고대도가 의미 있어 보입니다. 안내문의 God愛도라는 글자를 읽으면, '고대도'라고 들립니다.
당산은 고작 44m라서, 인증이 금방 끝났습니다. 시시했지만, 삽시도와 통틀어 무려 이만 보나 걸었습니다. 어쩐지, 피곤하다 싶었습니다. 하늘이 흐려서 더 기운이 없습니다.
승객 대기실에서 배를 기다립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관광객들끼리 대화를 나눴습니다. 부부 한 쌍과 아주머니 한 명입니다.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보통 나이 들어서 산을 찾게 되는데, 아가씨는 젊을 때부터 산에 다니는군요!"
"아, 여행 좋아해요. 여행 다니다 보니, 산을 가게 됐어요. 국내에 산이 굉장히 많잖아요."
같은 공간에 있는 태 님은 있는 듯 없는 듯, 말이 없습니다.
뭍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자 섬으로'를 오늘만 연거푸 세 번 탑니다. 태 님이 저녁을 사겠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제가 밥 살게요."
"네?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저야 좋죠. 잘 먹을게요!"
동행 덕분에 호강했습니다. 우럭, 광어, 새우, 생합, 청어 등 각종 해산물이 상다리 휘어지도록 즐비합니다. 그간 줄곧 섬을 다녀서, 해산물이 꽤 지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행의 호의를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먹었습니다. 남기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둘이서 그 많은 양을 다 먹을 순 없었습니다. 신나게 먹는데, 모르는 번호로 갑자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습니다.
"여보세요?"
"오늘 몇 시에 입실 예정이세요?"
"지금 저녁 먹고 있는데, 19시 이후에 들어가려고요."
"파티는 참석하실 거예요?"
"파티요? 음, 아뇨."
우럭과 청어도 고소하고, 매운탕도 훌륭했지만 결코 싸갈 순 없습니다. 민폐입니다. 손대지 않은 새우 세 개를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걸 포장해 가려고요? 그러지 마요."
태 님이 말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새우를 챙깁니다. 지금은 배부를지 몰라도, 내일이 되면 아쉬울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인근 마트로 가서 후식을 샀습니다. 편의점이 아니라서, 상품 가짓수가 별로 없습니다. 태 님이 딸기 우유를 고르길래, 같은 걸로 통일했습니다. 음료로 입가심을 하고, 태 님과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4월에 꽃 피고, 따뜻해지면 또 만나요. 서산, 태안, 보령 인근으로요."
보령항 근처 숙소로 향했습니다. 급하게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는 2만 원이었습니다. 옆 건물인 모텔은 숙박 4만 원이니, 절반 가격인 셈입니다. 마당에 주차를 하자, 체구가 작은 남성이 나와 말했습니다.
"여기 말고, 저 뒤에 주차하세요."
주차선이 그려져 있는데, 다른 곳에 주차를 하라니 이상했습니다. 머리를 갸우뚱했습니다.
"왜요?"
"여긴 마당이니까요."
"마당에 주차하면 안 돼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라서, 되물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좀 해주세요!"
숙박비가 저렴한 이유가 이런 건가, 싶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수건은 천 원 내시면 대여해 드려요."
입실할 때 안내를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수건도 안 주는 게스트하우스도 있어? 세상에......'
단돈 천 원이 아까워서, 수건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가져온 것 쓸게요."
집에서 수건을 미처 챙기지도 않았지만, 어이가 없어서 그리 말했습니다.
204호 문을 열었더니, 자그마치 열 개의 눈동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다섯 명의 아가씨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셋은 바닥에 앉아 있었고, 둘은 한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19시 30분, 다섯 명 모두 단장한 모습이었습니다.
"다들 파티 가요?"
말문을 열자, 일제히 관심이 쏠립니다.
"네, 파티 안 가세요?"
대답과 질문이 돌아왔습니다.
"내일 등산 가야 해서, 일찍 자려고요. 새벽에 출발해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기씨들 셋은 서둘러 문 밖을 나갔습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들 둘이 다가왔습니다.
"몇 시에 일어나세요?"
"네 시요. 여기서 여섯 시엔 나가야 해요."
"시끄러우실 텐데,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잠만 자면 돼요. 어쩔 수 없죠. 옷차림이 너무 얇은데, 안 춥겠어요? 밖에 추운데......"
입춘이 지났지만, 낮밤의 일교차가 아직 큽니다. 아가씨들의 옷매무새를 살펴보니, 소재가 얇디얇았습니다. 한 명은 서울, 한 명은 익산에서 왔고 대학교 친구 사이라고 했습니다.
"왜 하필 보령으로 왔어요? 여기 볼 것도 없는데......"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파티하는 곳이라고 해서 와봤어요. 이런 곳 처음이거든요."
"아, 그래요? 관광보다 그냥 사람들 만나러 온 거로군요."
"음, 별로 기대는 안 해요. 남자들 별로일 것 같아요."
이성에 대한 관심은 늘 빼놓을 수 없는 화젯거리입니다.
21시경,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파티장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거슬렸지만, 피곤한 나머지 곧 잠들었습니다. 새벽에 두 번, 잠에서 깼습니다. 20대 중반 아가씨 두 명은 추위에 떨며, 작게 속삭였습니다. 20대 초반 아가씨들은 셋이 아니라 둘만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중 한 명이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니, 친구 하나가 파티에서 만난 남자와 좋은 곳에 간 모양이었습니다. 잠결에 들은 내용이었지만, 흥미로웠습니다.
4시, 알람을 듣고 잠에서 깼습니다. 식사할 만한 장소가 없나 다른 방을 기웃거렸습니다. 마침, 비어있는 방이 있어 살그머니 들어갔습니다. 혹시 누구한테 들킬세라 조마조마했지만, 개미 한 마리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이 적막했습니다.
6시, 짐을 모두 챙겨 방을 나섰습니다. 낡은 방문이 불협화음을 냈습니다. 어젯밤, 아가씨 중 한 명이 말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뭐야, 오리 울음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