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산로
“지유한테 우리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할까?”
같은 모임의 지유 언니도 때마침 제주도였다. 그녀는 차를 대여해서 홀로 여행 중이었다. 우리 셋 모두 초면이었고, 그녀는 우리의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언니가 건넨 음료를 받아 목을 축였다. 달콤하고 시원한 딸기 라테였다. 올레길 21구간의 종점은 종달 바당, 아까 지미봉에서 마지막으로 본 무리가 걸어가는 게 보였다. 저 앞에 목적지가 바로 보였다.
“저 사람들 몰래 우리가 도장 먼저 찍자!”
기복 오빠가 눈치를 살피며 제안했다. 그는 공항에 주차한 차에 올레길 수첩을 두고 내린 탓에, 백지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내 수첩을 그에게 빌려주고, 도장 찍는 시늉을 하도록 한 후 그 모습을 기념 촬영했다.
기복 오빠가 가고 싶어 한 곳은 벚꽃과 유채꽃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명소 녹산로인데, 자가용 없이는 갈 수 없는 장소였다. 올레길 21구간 종점 종달 바당에서 녹산로까지 거리가 꽤 멀었다. 택시를 탈까 고민했으나,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지유 언니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탄 덕에 뒷좌석에 앉아 편히 꽃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연신 감탄을 외치며, 벚꽃과 유채꽃을 동시에 감상했다. 아름다운 봄꽃 잔치를 영상에 담아서 지인들에게 공유했다.
“세규 씨가 술 마시자는 걸 거절했더니, 갑자기 일 생겼다고 핑계를 대더군요. 그 사람, 등산 전날 취소했어요. 그래서, 단체 대화방에서 그냥 차단했어요. 아무래도 여미새 같아요. 재인 씨가 귀띔해 줬어요. 공주 언니랑 처음 만난 날부터 사귄다고. 여미새 맞네!”
모임원들에 대해 뒷말이 오갔다.
“공주랑 나랑 백화산 갔을 땐, 공주는 남자 친구 있다고 했는데. 남자 친구는 연상이라고 했어.”
“헤어졌나 보지. 아니면, 양다리거나. 뭐, 남의 인생이니까.”
“나이 차이 되게 많이 날 텐데?”
“9살 차.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부러우면, 지는 거다.”
아무래도 성인 남녀가 모이는 모임이라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잦았다.
벚꽃은 절정 시기를 지나 서서히 지고 있었다. 웨딩 촬영 중인 듯 보이는 선남선녀들이 두 쌍 보였다. 꽃에 둘러싸여 미소를 머금으니, 세상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지유 언니는 6살 딸이 하나 있다고 했다.
꽃놀이를 마치고, 맛집에서 흑돼지를 먹었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별로 없었지만, 우리가 자리를 뜰 시점에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고기를 익히느라 식탁 옆에 선 여사님에게 질문했다.
“제주어로 ‘맛있다’를 뭐라고 말해요?”
“맛 좋수다! 멜젓에 고기 찍어 드세요.”
과연, 제주 흑돼지는 맛이 좋았다. 아까 해변에서 익힌 새로운 단어 ‘멜’이 나오니 반가웠다.
“아, 멸치젓이요?”
지유 언니는 음식을 별로 먹지도 않았고, 기복 오빠는 혼자 공깃밥 3개를 주문했다. 절반은 남겨서, 정확히 2개 반을 비웠다. 그는 고기보다 탄수화물을 더 좋아했다. 그에게 ‘돼지’라는 의미의 수화를 보냈다.
숙소에 돌아와 옥구슬 씨와 대화를 주고받다가, 22시 전에 곯아떨어졌다. 직원이 코로나를 앓는 바람에 격리 중이었고, 그 때문에 옥구슬 씨는 혼자 13시간을 근무해야만 했다. 다음 날, 그가 간밤에 전화했다는 걸 뒤늦게서야 알았다. 22시 30분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