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신앙의 전형

올레길 21구간(하)

by 슈히

올레길 21구간의 중간 지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물 칼국수가 맛있었다. 여자가 혼자 운영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손 좀 씻어도 되나요?”

“밖에서 씻으세요.”

“그럼, 그냥 물수건 주세요.”

여자는 불친절했다. 별로 상냥한 기색이 없었다. 속으로 못마땅했으나, 친절함을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다 밥 한 그릇 먹으면 안성맞춤인데! 공깃밥 하나 먹을 수 있나요?”

“밥은 없어요.”

부지런히 걸었다. 옥구슬 씨가 좋아할 만한 장소가 나왔다.



각시당

각시당은 해녀와 어부의 무사 안녕과 안전한 해산물 채취를 기원하는 해신당으로 ‘남당하르방’, ‘남당할망’을 신으로 모신다. 해녀들은 음력 2월 13일 영등굿을 치르는데 메(쌀), 돌래떡, 생선, 과일, 야채, 삶은 계란, 술, 지전 등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올린다. 굿이 끝날 무렵 심방은 해녀들이 가져온 쌀로 점을 쳐주며 액막이한다. 해녀들은 액막이가 끝나면 제물을 조금씩 데어 한지에 싸 바다에 바치는 지드림 의례를 행한다.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사진을 찍어 옥구슬 씨에게 보내니 과연 반겼다.

“무속 신앙 너무 좋아.”

걷다 보니, 지쳤다.

“잠깐 쉬자.”

기복 오빠가 편의점에서 산 간식을 풀었다.

“많이도 샀네. 이런 거 먹으면 살쪄.”

“비상식량이야.”

“오빠, 어제도 야식 먹고 술 마셨던데. 자꾸 그렇게 과식하면 배 나와!”

“저녁 먹은 지 4시간 지났으니까, 또 먹은 거지.”

“과식해서 잔뜩 부른 배 안고 잤는데…….”

해변의 풍경을 감상하며, 간식을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잠깐의 휴식이 꿀맛이었지만, 갈 길이 멀었다. 마냥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 지친다. 종점까지 언제 간담?’

아가씨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둘이 똑같은 모자를 썼고, 옷차림도 같았다. 친구 사이로 보였다. 서로의 모습을 촬영해 주는 풍경이 마냥 정다웠다.

“아가씨들, 혹시 사진 찍어도 돼요? 모자가 참 귀여워요!”

그녀들은 수락했고, 나란히 선 뒷모습을 촬영해 옥구슬 씨에게 보냈다.

“저런 거 꿈도 꾸지 마세요.”

“옥구슬 씨랑 같이 저런 모자 쓰는 거요?”

“헐, 님이 혹시 쓰고 다닐까 봐 그렇죠. 제가 쓰겠습니까?”

“고기 사주면, 모자도 쓸 거면서.”

해나에게도 같은 사진을 보냈다. 그러자, 그녀는 옥구슬 씨와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저도 언니랑 놀러 가서, 저렇게 비슷한 옷 맞춰 입고 사진 찍고 싶네요. 귀엽다!”



토끼섬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된 문주란 자생지.



해녀들이 모인 동상이 있길래, 기복 오빠에게 장난스럽게 제안했다.

“오빠, 가서 해녀 가슴 만져. 사진 찍게.”

기복 오빠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는 해녀 가슴에 기대어 눕기도 했다. 꽤 재밌는 결과물이 나왔다.



멜튼개


갯담은 바닷돌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겹담 형식으로 둘러쌓고 밀물에 들어왔던 고기떼들이 썰물이 되면 그 안에 갇히어 쉽게 잡을 수 있게 해 둔 장치를 일컫는 말로 ‘원담’이라고도 한다.

멜튼개는 하도리 굴동에 위치한 갯담이다. 문주란섬 가까이에 있으며 자연 빌레를 이용한 이중 갯담으로 지금도 고기가 몰려들고 있는 살아있는 유적이다. 멜이 많이 몰려들어 잘 뜨는 개라서 멜튼개라고 이름 지었다.



하도 해수욕장


하도리 마을의 해수욕장. 백사장이 넓고 물이 깨끗하다.



너른 바다가 쭉 이어졌다. 파도가 밀려오고 나가는 모습을 보니, 마치 생물이 호흡할 때 폐가 들썩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복 오빠는 아까 꽃을 대할 때와는 달리 쌩하고 앞서갔다. 바다를 두고 차마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이 지점부터 한 무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종종 마주쳤다. 남녀가 뒤섞인 대여섯 명쯤 되는 인원이었다. 몸에 딱 붙는 레깅스를 입은 여자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도 저 젊은 사람들 틈에 끼고 싶다.”

기복 오빠가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자세히 안 본 모양이었습니다.

“안 젊은 사람도 있던데? 나이 좀 들어 보였어. 40대 이상 돼 보이네. 저렇게 뭉쳐 다니면 안 돼. 코로나 걸릴라!”



지미봉


가파르지만 길지 않아 20여 분이면 오른다. 오름 정상에선 360도 조망이 가능하다. 표고 166m, 비고가 160m쯤 되는 가파르게 경사진, 북향으로 말굽진 분화구가 있는 오름이며, 산의 등성이는 원뿔 모양의 동쪽 봉우리가 주봉(정상)이며, 북쪽에서 바라보면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보인다. 서북쪽 기슭에는 하도리 창흥동의 습지(옛 지명: 펄깨통)가 한눈에 들어오며, 이 지역은 철새도래지로서, 겨울이 되면 겨울 철새인 저어새, 도요새, 청둥오리 등 수만 마리가 날아와 겨울을 난다. 오름 꼭대기엔 봉수대의 흔적이 비교적 뚜렷이 남아 있는데, 북서로 왕가往哥봉수,

남동으로 성산城山 봉수와 교신하였다고 한다. 정상을 둥글 높직하게 인위적으로 만든 듯한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이곳에 서면 성산일출봉, 우도, 식산봉 등의 아름다운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구가 벌어진 안쪽에는 소나무와 관목림이 우거져 숲을 이루고, 서사면과 남사면 기슭으로는 해송이 조림되어 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반로는 따라서 차차 소나무, 까마귀쪽나무 등의 나무들이 들어서고 있고, 그 하부에는 사위질빵, 인동, 댕댕이덩굴 등의 넝쿨 식물들이 어우러져 자생하고 있다. 띠밭이 비교적 넓게 분포되고 있으며 아직도 곳곳에 베어다 쓴 흔적이 있고, 베어진 그루터기 사이로 산자고, 양지꽃, 무릇, 제비꽃, 흰대극 등의 초본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봉수대가 있었던 정상에는 쥐똥나무, 소나무 등의 관목이 바로 정상까지 분포하고 있다.



무리는 산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그들과는 달리 우측의 샛길로 빠졌다. 벚꽃이 지고 있었다. 여기서도 기복 오빠는 사진 찍어달라며 연신 아이처럼 굴었다. 그가 늘 취하는 고정적인 자세가 있는데, 줄곧 그 모습만 보니 싫증이 날 만도 했다.

“이제 그 자세는 식상해! 창의적인 자세 아니면 이제 안 찍을래.”

지미봉을 오르지 않고, 벚꽃을 감상하며 꽃길을 걸었다. 무인 카페를 발견하고, 잠시 들려서 휴식을 취했다. 매장 내부에는 꽃 화분이 많고, 깔끔했다. 방문자가 손을 씻은 후, 물기를 닦을 수 있도록 작은 손수건이 준비돼 있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손님을 배려한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기복 오빠는 화장실에 가서,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 배는 전혀 고프지 않았으나, 그가 준 간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재충전을 기했다.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은 건지 모르나, 나중에 그걸 알아차렸을 땐 이미 한참 늦은 후였다. 눈앞에 펼쳐진 탁 바다는 아름답고 경쾌했으나, 종점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점점 지쳤다. 더는 못 걸을 것 같았다. 물을 잔뜩 머금은 솜이 된 기분이었다.



종달리 생개납 돈짓당 제주특별자치도 향토유형유산 제22호


종달리 생개납 돈짓당은 제주도에 있는 해신당海神堂이다. 이 당은 바닷가 쪽으로 뻗어 나간 해안선 끝자락에 솟아 있는 자연석을 신체神體로 삼고, 신체 틈에서 자라난 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삼고 있다. 지금도 어부와 해녀들이 용왕신海田守護神과 선왕신船迫守護神에게, 무사 안녕과 풍어 등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종달리 생개납 돈짓당은 제주도 해양 신앙의 전형을 보여주는 당堂으로 향토 유산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진짜 음식을 놓고, 사람이 기도하고 있네!”

몽골인 버금가는 뛰어난 시력을 지닌 기복 오빠가 설명했다. 비록 내 눈에는 형체뿐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선명히 보이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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