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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Apr 12. 2023

다시 찾은 국가 정원(2)

2023 순천 국제 정원 박람회

  오후가 되자, 기온이 상승했습니다. 입구에서 꿈의 다리까지 직선거리라서, 헤매지만 않는다면 곧 닿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십 분이 지나도 여수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다른 데로 샌 거 아니야?'

답답한 마음에 그에게 전화했습니다.

  "어디예요?"

  "여기 음식물 반입 금지래요. 직원 아줌마랑 싸우는 중이에요."

  "네? 아니, 그럼 나한테 전화를 했어야죠! 가방 없어요? 가방에 넣으면 소지품 검사까진 안 하던데."

  "네, 없어요."

  "차에도 없고요?"

  "네."

복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습니다.

  "일단, 알겠어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종종걸음으로 부리나케 걸어 입구로 향했습니다. 여수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입구에서 뒤를 보면, 물품 보관소가 있어요. 거기서 만나요. 우리가 일행인 걸 누가 알면, 곤란하니까요."

  "네? 그게 무슨 소리죠?"

  "바다 김밥을 내 가방에 넣고 입장할 거예요. 우리가 서로 남남인 것처럼 굴어야 의심을 안 사요."

  "알겠어요."

마치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요원이라도 된 마냥, 조심스러웠습니다. 손등에 재입장 도장을 찍었습니다.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초 후, 물품 보관소에서 여수인을 만났습니다. 큰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였고, 안경을 썼습니다. 검정 상의에 카키색 바지를 입었고, 흰색인지 회색인지 분간이 안 되는 낡은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그를 보자마자, 바다 김밥을 가방에 황급히 넣었습니다.

  "누나, 음료 드세요."

  "고맙습니다."

  음료수를 마시며, 벤치에 앉아 대화했습니다.

  "오느라, 고생했어요. 그런데, 배는 왜 놓쳤어요?"

그는 프로 골퍼 지인들과 여수 경도에서 내기 골프를 쳤는데, 졌다고 했습니다.

  "육십만 원이나 날렸어요. 돈도 많은 놈들이, 내 돈을 탐내더라고요! 막판에 퍼터로 공치는데, 잘 안 들어가서 늦었어요. 게다가 배가 정시에 출발 안 하고, 오 분 전에 가버렸어요."

  "오늘 몇 시에 일어났어요?"

  "네 시요."

  "선약이었던 거죠?"

  "네."

  그도 나름 사정이 있었고, 그에게 화를 내봤자 이점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냥 덮었습니다. 이온 음료 한 병을 다 마시고,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자, 우리 각자 따로 들어갈 거예요. 내가 먼저 입장할 테니, 따라서 들어오세요. 동행인 거 티 내면 안 돼요!"

  입구에서 별 탈 없이 통과했습니다.

  '휴...... 다행이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바다 김밥을 펼쳤습니다. 정오를 막 지난 점심시간이라서, 관광객들은 식사 중이었습니다.

  "다들 음식을 싸 오셨네!"

  동행이 말했습니다.

  "내부에 식당이 있기 때문에, 음식을 준비해 오면 사실 영업 방해죠. 가져오더라도 이렇게 몰래 먹어야지, 아까처럼 버젓이 보여주면서 들고 오면 외부 음식 반입을 광고하는 꼴이 돼요."

  바다 김밥은 푸짐했습니다. 종류가 다양했는데, 어묵이 든 김밥이 특히 짜고, 매웠습니다. 괴로워하면서도 남기지 않으려고, 열심히 먹었습니다. 반면, B는 먹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결국 음식이 많이 남아서, 반찬통에 옮겨 담았습니다.

  서관은 이미 봤기에, 동관을 훑었습니다. 오전에 비해, 오후에 손님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은 간혹 보였습니다.

  형형색색의 튤립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순 없었습니다.

  "나, 저기서 사진 찍어줘요! 엎드려 있을게요."

  "풀밭에 함부로 누우면, 안 돼요. 더러워요. 병균 옮을지도 몰라요."

B의 말은 과연 일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얌전히 앉은 자세만 취했습니다.  

  병아리 같은 노란 유채꽃과 파릇파릇 돋은 새싹은 한참이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야외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어서,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은 중국 정원이었습니다. 서양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동양에는 양산백과 축영대가 있습니다. 남녀가 이루지 못한 애틋한 사랑을 중국 정원에서 마주했습니다. 팔 년 전, 그때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국가 정원에 처음 왔을 땐, 함께 한 이가 힘들어해서 다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비교적 꼼꼼히 살폈습니다.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면, 대단한 사랑이긴 하네. 그래도, 난 불행한 사랑은 안 하고 싶은데! 그냥 다른 사람 만나면 되는 거 아닌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키가 작고 큰 꽃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게 무슨 꽃일까요? 키가 작으니, 작약이려나?"

  "그러네요. 작약 같아요."

B가 대답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이름표를 보니, 모란이었습니다.

 "어, 모란치고는 키가 굉장히 작네요."

고개를 숙여 숨을 들이켜자, 은은한 향기가 흘렀습니다. 

  "코랑 인중에 꽃가루 묻었어요."

B가 말하며, 손가락을 들어 직접 얼굴을 털어줬습니다. 어수룩한 모습을 들켜서, 다소 민망했습니다.

  이 밖에 현충 정원, 노을 정원, 장미 정원, 흑두루미 미로 정원, 태국 정원, 일본 정원, 영국 정원, 튀르키예 정원, 스페인 정원, 미국 정원, 독일 정원, 네덜란드 정원 등이 있었습니다. 모든 꽃이 봄에 개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게 없는 휑한 정원도 더러 있었습니다.

  "시크릿 가든이면, 현빈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B의 재치 있는 한 마디였습니다. 그가 서관에서 동물원을 보고 싶다고 하길래, 다시 꿈의 다리를 건넜습니다. 자고 있거나, 숨어 있어서 오전에는 못 봤던 풍산개, 코아티, 다람쥐원숭이들이 오후에는 깨어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참물범은 유유히 헤엄치는 중이었고, 다브라 코끼리 거북은 아까와는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뱀을 특히 좋아해요."

  "본인도 뱀 띠잖아요."

  "동물원에 뱀도 있어요?"

  "아뇨, 없어요. 대신, 꽃뱀 여깄어요!"

그가 웃었습니다.

 






저녁은 주꾸미!
[ Byblis ] 아폴론의 아들 밀레토스와 강의 신의 딸인 키아니에의 딸로, 쌍둥이 오빠 카우노스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샘이 되고 만다.


숙소에서 본 수건! ㄹㅇ 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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