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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Apr 25. 2023

신안 홍도 깃대봉(365m)

  육 년 전, 서른한 살 때 홀로 홍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금요일에 기차를 타고 도착한 밤의 목포는 인적이 드문 작은 도시였습니다. 당시 삼월이었는데, 게스트하우스에는 손님이 없었습니다. 숙소에서도 역시 혼자 머물렀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 날인 토요일 아침에 역시 여자 한 명이 유람선을 타고 홍도로 향했는데, 가는 동안 승객들이 나만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민망했습니다. 그들은 단체 손님이었고,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혼자 온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뭐야, 혼자 온 사람 처음 봐?'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대놓고 쳐다보길래, 똑같이 바라봤습니다. 초봄이라서 산뜻한 기분으로 얇은 옷을 걸쳤다가, 해풍에 오들오들 떨었습니다.


  바야흐로, 육 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블랙야크와 국립공원 인증을 위해 홍도를 재방문했습니다. 이번에는 결코 혼자이고 싶지 않아서, 목포 운동방에서 동행을 구했습니다. 그는 서른여덟 살의 목포인인데, 홍도만 가겠다고 답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목포 연안 여객선 터미널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더 일찍 왔습니다. 목포인에게 전화했습니다.

  "저 도착했어요. 오셨어요?"

  "지금 집에서 출발하려고요. 금방 가요."

건물 이 층으로 올라가 매표소에서 발권했습니다. 아침 일찍 홍도에 갔다가 오후에 흑산도로 이동할 예정이었습니다.

  "홍도에서 흑산도행 성인 한 명 예약해 주세요."

며칠 전, 홍도 해운사에 전화해 문의하니 직원이 혀를 끌끌 찼습니다.

  "홍도, 흑산도는 봄에 인기가 많아요. 왜 이제야 예약하는 거예요? 더 일찍 예약해야 돼요. 숙소가 없을 수도 있어요."

다급한 마음에 일사천리로 모든 예약을 마쳤습니다. 다행히 홍도행 배표도, 흑산도에서 묵을 숙소도 빈자리가 있었습니다. 


  과연 관광객이 많았습니다. 줄을 서서 배를 탔습니다. 좌석에 앉았는데, 조바심이 습니났다.

  "목포인이 설마 지각해서, 배를 놓치면 어쩌나......?"

다행히, 목포인은 나타났습니다.

  "해운사 직원한테 전화 왔어요. 왜 안 오냐고......"

  "배표가 비싸니, 그럴 만도 하죠."

각자 예약했으나, 번호가 붙어 있어서 나란히 좌석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가는 동안 즐겁게 대화했습니다.

  "오늘 나올까, 말까 망설였는데, 나오길 잘했네요! 슈히 씨는 좋은 사람이군요! 아, 근데 머리가 아프네요. 칠 세대가 삼십 팔만 원이라니......"


  엊그제 컴퓨터가 갑자기 고장 났습니다. 출장 수리 기사를 불러서, 하드웨어를 교체했습니다. 옥구슬 씨에게 물어보니, 삼십만 원이면 쓸 만한 제품을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산더미 같은 작업물을 해치우려면 바가지요금이라도 감지덕지였습니다. 처음에 수리 기사는 육십만 원을 불렀고, 옥구슬 씨의 의견을 말했더니 사십만 원으로 낮추는 게 아닌가?

  "좀 깎아주세요. 만 원이라도요......"

  "그럼, 이 만 원 깎아 드릴게요." 

  옥구슬 씨에게 가격을 말했더니 노발대발했습니다.

  "앞으로, 내 말 안 들을 거면 나한테 물어보지도 마요! 화나니까!"

  "옥구슬 씨 바쁠 텐데, 부탁하기 미안해서 그랬죠......"

  "안 바빠요. 충분히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인데!"

 까칠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치곤 상당히 듣기 좋은 말이었지만, 누추한 집에 그를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지인한테 맡겼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면 인간관계 망가져요. 그냥,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제일이죠."

수리 기사의 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네, 맞아요. 지인은 아무리 유능해도, 결국 비전문가니까요."


  홍도행 쾌속선은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초도를 경유했습니다. 그때까진 별 탈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놀이동산에서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배가 간지러웠습니다.

  "돌고래 타고 달리는 것 같네요!"  

까르르 웃었습니다.

  한편, 승객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선원이 좌석을 누비며, 비닐을 배포했습니다. 여기저기서 토하는 소리와 절규가 들렸습니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짝꿍도 역시 낯빛이 사색이었습니다. 그는 인내하려 애썼으나,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그 후로 내내 자리에 앉지 못하고, 자리를 비웠습니다.

  

  일곱 시 오십 분에 출발한 홍도행 배는 목적지에 열 시 반에 도착했습니다. 지루함과 뱃멀미를 견디느라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지?"

목포인이 의아해했습니다.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서, 막판에 결국 토했어요. 힘드네요. 여태 배를 그렇게 많이 탔는데, 오늘처럼 멀미한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왜 아무도 이런 정보를 안 알려줬을까? 홍도 다녀간 사람들은 죄다 멀미 안 한 사람들인가?"

  나중에 흑산도민에게 사연을 말하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어제까지 너울이 심해서, 배가 못 다녔어요. 오늘은 다행히 비교적 잠잠해진 거라서, 출항한 거예요. 도초도까지는 바다가 잠잠한데, 이후부터는 먼바다라서 파도가 거세요."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못 가서, 목포인은 기진맥진했습니다. 그는 다른 산악회원 두 명에게 전화해서 현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습니다.

  "여기 진짜 좋은데, 왜 안 왔어?! 혼자 오기 진짜 아깝다. 같이 왔어야 했는데!"

회원 한 명은 전날 장거리 출장을 다녀와서 집에서 휴식 중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근무 중이었습니다.

  "멀미한 탓에 괴로워요. 더 이상 못 가요. 여기서 기다릴게요!"

사백 미터도 채 안 되는 낮은 산이었지만, 환자를 강제로 끌고 갈 순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를 중남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중도 하차한 남자'라는 뜻입니다. 그에게 쉬라는 말만 남기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하늘이 흐렸습니다.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우울했습니다. 하산할 땐 다행히, 차차 하늘이 개었습니다. 해도 떴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똥손인데, 괜찮아요?"

중남 님이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럼, 이대로만 찍어 주세요."

배경 사진을 먼저 한 장 찍은 후, 그에게 보여주며 부탁했습니다.

  "음, 잘 나왔네요! 마음에 들어요! 점심은 어떻게 할까요? 속 안 좋아서, 못 먹는 거 아니에요?"

  "식당 가서, 식사해요."


  아까 선착장에서 만난 식당 아주머니를 떠올렸습니다.

  "광주 식당으로 오세요."

생선 구이를 먹었습니다. 볼락 세 마리가 나왔습니다. 중남 님이 생선을 기가 막히게 발랐습니다.

  "생선 잘 바르네요? 아버지 외에 남자가 생선 발라준 건, 중남 님이 처음이에요."

  "누나가 매형이랑 처음 만났을 때, 생선을 먹었대요. 근데, 매형이 생선을 안 발라줘서 누나가 삐졌대요. 그래서, 그냥 집에 가버렸대요. 매형이 그러는데, '중남아, 너는 여자한테 꼭 생선 꼭 발라 줘야 한다'라고 했어요."

  "생선 안 발라줬는데도, 두 분이 용케 결혼은 하셨네요."

  중남 님이 발라준 생선 살을 먹으며, 생선 구이를 함께 먹은 누군가를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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