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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May 02. 2023

신안 흑산도 칠락봉(272m)

  중남 님은 줄곧 걱정하며, 불안해했습니다.

  "과연, 무사히 육지에 돌아갈 수 있을까?"

  15시 40분, 홍도에서 배를 타고 섬을 떠났습니다. 중남 님은 비닐을 챙기며, 좌석에 앉았습니다. 약 40분 후, 배는 흑산도에 닿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중남 님과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아, 잠들면 뱃멀미를 안 하는구나!"

잠에 취한 그가 말했습니다. 오전보다는 파도가 비교적 잠잠했습니다. 중남 님은 흑산도에는 가지 않았고, 목포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망망대해에 혼자가 됐습니다. 흑산도에 발을 디뎠습니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여객선 터미널이 보였습니다. 국립공원 인증 도장을 못 찾아서, 매표소 직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도장함은 지척에 있었는데, 먼지가 뿌얬습니다. 워낙 먼 곳이라서, 인증자들이 쉽사리 오지 못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도장을 여권에 꾹 찍었습니다. 잠시 성취감에 젖었습니다. 여권에는 국립공원 조류연구센터와 정약전 유배지가 추천 여행지로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직원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정약전 유배지 어때요? 볼거리가 있어요?"

  "사리 말하는 거지?"

  여자 직원이 남자 직원에게 묻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특별히 볼 건 없고, 초가집만 있어요."


    그때,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여보세요?"

  "흑산도 도착하셨어요?"

  "네, 방금 도착했어요. 누구세요?"

  "오늘 묵기로 한 숙소예요. 선착장에 마중 나왔는데, 어디 계세요?"

  "아, 지금 나갈게요!"

종종걸음으로 터미널을 나와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흑산도 비석 앞에서 발신자와 마주쳤습니다. 짧은 머리칼에 안경을 쓰고, 푸근한 인상을 지닌 50대 여성이었습니다.

  "숙소가 코 앞인데, 마중 나오셨어요? 숙소 위치 알고 있어요. 마중 안 나오셔도 되는데......"

  "그래도, 나와 봐야죠."

  "아, 혹시 정약전 유배지 가보셨어요?"

  "아뇨. 거기 가시게요?"

  "네, 갈 수 있을까요?"

  "마을버스가 있긴 한데, 지금 이 시간엔 돌아올 수 있는 버스가 없어요."

아쉬웠지만, 포기하고 다른 곳을 둘러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노점 상인에게 물어 철새 박물관까지 걸었습니다. 예리항에서 서쪽으로 약 이 킬로미터 방향이고, 찾기 쉬웠습니다. 큰 야자수가 있길래 가까이 다가가 관찰했는데, 모형이었습니다.

  '진짠 줄 알았네......'

입장료는 무려 오천 원이나 했습니다. 잠시 망설였습니다.

  '너무 비싸잖아? 이왕 왔으니 보고 가는 게 나을 것 같긴 한데...... 여기 다시 올 일이 없으니까.'

일단 실내로 들어갔습니다. 품이 넉넉한 연보라색 상의를 입은 흰 피부의 여성이 인사했습니다.

  "볼 만한가요? 입장료가 좀 비싸네요."

  "그럼요! 볼 만해요. 제가 설명도 해 드려요!"

어차피 들릴 데도 특별히 없고, 여인의 차분한 태도를 보니 믿어도 괜찮겠다 싶어 입장료를 지불했습니다. 

  "파파야 슬러시 한 잔 드릴까요?"

  "좋아요. 고맙습니다!"

그녀가 음료를 준비할 동안, 법정 스님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법정 스님과 흑산 동박새

  법정 스님은 출가하기 전인 1952년 8월, 흑산도에 왔습니다. 그는 당시 대학생(속명 박재철)이었고, 친구들과 이곳 철새 박물관 뒤편 진리 해안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속 법정 스님 앞에는 새장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흑산도에서는 동박새를 대나무 새장에 넣어 팔았다고 합니다. 동박새는 동백나무 숲에 흔하였고, 노랫소리가 아름다워 인기가 많았답니다. 법정 스님은 갇혀 있는 동박새가 불쌍해서, 새를 산 후에 풀어 주었다고 합니다.



  새에 관한 전시물은 흥미로웠으나, 늘 그랬듯 더 관심 있는 분야는 사람이었습니다. 해설사 선생님은 알고 보니, 아들 넷을 둔 엄마였습니다.

  "다복하시네요! 자녀복이 좋으시군요. 근데, 딸이 없어서 아쉽겠어요."

  "대학생 때 만난 오빠랑 대학 재학 내내 사귀었고, 졸업하자마자 결혼했어요. 그 시절엔 사귀면 당연히 결혼하는 시대였거든요. 자녀는 원래 많이 낳고 싶었어요. 최소 셋 이상이요. 양육하기엔 자녀들 성별이 같은 게 아무래도 좋은 것 같아요."

  "지인한테 들은 얘기인데, 흑산도에서 2016년에 성폭행 사건이 있었다면서요? 전혀 몰랐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학부모 셋이 초등 여교사 한 명을 윤간했어요."

  "세상에, 그런 일이! 미친놈들이네. 너무 무섭네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교사 남자 친구가 신고했고, 검사 결과 교사 몸에서 가해자들 유전자가 검출됐대요. 그렇게 입증됐는데도, 섬 주민들은 오히려 가해자들 편을 들었죠."

  "네? 어째서요?"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죠. 사건이 커지면, 섬에 대한 평판이 나빠지잖아요. 그럼, 관광이나 수산물 판매 측면에서 타격 입는 건 아무래도 섬사람들이니까요. "

  "이기적이네요."


  박물관을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B에게 전화했습니다.

  "홍어회 괜찮던데."

  "너랑 왔으면, 먹었겠지!"

  "흑산도 홍어는 비싸. 자연산이라서. 저녁 안 먹어서, 배고프겠다."

  "배는 안 고파. 뱃멀미 탓에 속이 안 좋아서."

통화하며 걷는데, 뒤에서 경적이 울렸습니다. 돌아보니, 할아버지 두 명이었습니다.

  "지나가다 아가씨 보고, 차 돌렸네요. 등산을 얼마나 하면, 그런 탄탄한 하체를 만들 수 있어요?"

  "그냥 유전이요."

흑산도 성폭행 사건을 떠올리며, 떨떠름하게 웃었습니다.

  '노인이라도 여자 몸매 보는 건 매한가진가.'


  숙소로 돌아와 1층 식당에서 석식을 먹었습니다. 홍어회와 아귀탕을 곁들인 백반이 나왔습니다.

  "숙박 손님이잖아요. 너무 비싸요, 좀 깎아 주세요!"

  "원래 안 깎아 드리는데, 깎아 드릴게요."

섬 산행은 특히 주유비, 식대, 승선료, 숙박비, 주차비, 입장료 등 지출이 어마어마합니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단 한 푼이라도 절약해야만 합니다.



  홍어의 효능

  홍어는 뼈까지 연골로 이루어진 고단백 식품으로 관절에 좋은 고단백인 황산콘드로이친 성분을 90% 이상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관절염이나 류머티즘을 치료하는 효능이 탁월하다.         - 전남대학교(2006)



  홍어를 먹으면 장이 깨끗해지고, 술독을 해독하는 큰 효험을 볼 수 있다. 남자의 정력에 좋다. 홍어의 간은 야맹증에 좋고, 살과 간이 오메가 3 지방산, 고도불포화 지방산을 다량 포함하고 있다. 관상동맥 질환, 혈전 유발증을 억제, 뇌졸중, 두뇌 발달과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혈관질환, 심부전증 예방의 효과가 크다. 

  또한 식도암, 위암, 폐암에도 효과가 있다. 타박상이나 근골을 다친 사람에게도 좋다. 삭힌 홍어는 식이 섬유소가 함유되어 있어 변비 예방에 도움을 준다. 고단백, 저지방의 알칼리성 영양 식품으로써 다이어트 식품으로 좋다. 항산화 작용을 통해 피부 노화를 늦춘다. 피부가 거칠고, 냉이 많은 여성에게 효과적이다. 검버섯이나 기미, 주근깨에 효과가 좋다. 

  숙성된 홍어는 강알칼리성의 되어 산성 체질을 알칼리성 체질로 바꿔준다. 위산을 중화시켜 위염을 억제하고 대장에서는 강암모니아로서 잡균을 제거해 속을 편하게 해 준다. 열을 내리고, 해독작용이 있다. 가래를 삭이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자보강장작용이 있어 감기 치료에 효과가 좋다. 기관지에 좋아 국악인이나 목청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즐겨 먹기도 한다.                                                    - 정약전, <자산어보>



  홍어의 비밀 - 암모니아 나와 톡 쏘는 맛, 살보다 내장에 항암 효과

  김치는 유산균의 활동으로 시어지지만, 홍어는 살, 뼈 등 조직 속에 있는 효소의 작용으로 삭는 것이다. 삭힌 홍어는 톡 쏘는 맛은 암모니아가 만든다. 홍어는 바닷속에서 삼투압을 암모니아로 조절하는데, 삭힐 경우 그 암모니아가 살, 뼈 등 조직에서 빠져나온다.                                 - 박방주 기자, 중앙일보(2004)



  사실 홍어 하면 삭힌 홍어의 악취가 제일 먼저 떠올랐기에, 도전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흑산도까지 와서, 특산물도 안 먹는 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시도했습니다. 몸에 이롭다니, 보약으로 생각하고 먹었습니다. 싱싱한 회에서 비린내는 전혀 안 났습니다.

  "홍어회 얼마야?"

  "삼만 원."

  "싸네. 칠레산인가?"

  "아니, 자연산. 원래 더 비싼데, 깎은 거야."

B에게 안부를 전했습니다.

  "탁주랑 먹어야 제맛인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술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너, 술 안 마신다고 하지 않았어?"

  "자주 안 마신다는 뜻이었지."

  "그럼, 나한테 거짓말한 거야?"

아무래도 사람을 한참 잘못 본 것 같습니다.


  온 가족이 합심해 식당과 숙소를 운영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아까 마중 온 여성과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모텔 외에 펜션도 있어요."

  "오, 부자시군요!"

  "눈코뜰 새 없이 바빠요. 섬이라서, 사람 구하기가 어렵거든요. 일만 하다, 좋은 시절 다 지났네요. 결혼해서 출산하고, 육아하고...... 자녀들 다 키워놨더니, 이제 여기저기 몸이 아파요."

  "저런...... 저는 미혼이요."

  "결혼하지 마세요."

  "애인 없어서, 어차피 못 해요."

  보랏빛 짧은 머리칼을 가진 이모님도 한마디 했습니다.

  "절대 본인 재산을 남에게 공개하면 안 돼요!"

  "...... 공개할 재산도 없는걸요. 빚은 없어요."

  "빚 없으면 됐죠. 빚이 어마어마합니다."

  덩치 큰 50대 남성도 거들었습니다.

  흑산도 성폭행 사건에 대해 도민의 의견을 물으니, 오히려 섬보다 도시에서 범죄 발생률이 훨씬 높다고 했습니다.

  "이상한 사람은 여기보다 도시에 훨씬 많아요. 각자 늘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요. 여기가 섬이라서 고립된 곳이긴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근면 성실한 사람들이거든요."

  대화 상대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배불리 먹고, 자리를 떴습니다. 남은 홍어회는 다음날 아침에 이어서 먹기로 했습니다.


  이 층 숙소로 올라가 잠을 청하는데, 옆 방에서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방음이 잘 안 돼서 신경 쓰였습니다. 나중에 전해 들은 바로는, 뚱뚱한 남자가 옆 방에서 지냈다고 했습니다.

  "분명 혼자 묵는 방인데, 누군가와 함께 있는 기분이 들더군요."

이렇게 말하자, 아주머니가 웃었습니다.

  "뚱뚱하면, 기도에서 살이 붙어서 숨소리가 크게 나요."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칠락봉을 등산했습니다. 하산 후 조식을 먹고, 배를 타고 목포로 돌아갈 계획이라서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하늘이 흐려서 조망은 실망스러웠지만, 인증에 성공했으니 스스로 위안 삼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본 플래카드에는 2026년에 흑산도 공항이 완공될 예정이며, 120억 원을 확보했음을 축하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2026년에 나는 과연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비파 나무
팥배나무의 꽃말은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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