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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May 04. 2023

[블야 섬&산 70좌] 신안 암태도 승봉산(356m)

  이제 오직 산 하나만 남았습니다. 여기만 가면, 오늘 일정은 드디어 끝납니다. 들머리에 도착했습니다. 정자와 화장실이 보였습니다. 비록 주차 공간이 넓진 않았지만, 혼자 쓰기엔 넉넉했습니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고맙게도 인터넷에 정보 공유를 해줘서, 덕분에 수월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참 편리하고, 좋은 세상입니다.

  '날씨만 좋았더라도, 저 멀리 다른 섬들이 보였을 텐데...... 너무 아쉽다!'

  혼자 천천히 산을 올랐습니다. 재밌는 띠지를 발견했습니다. 대구의 '비실이 부부'는 어떤 분들일까, 상상했습니다.

  '부부가 산을 좋아해서 함께 등산을 다닐 정도라면, 비실이가 아니라 튼실이 같은데......?'

  대전 '산미인'도 눈에 띄었고, 반가웠습니다. 산미인은 '산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산에 미친 인간'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산미자(산에 미친 자)'가 있습니다.

  '진정한 산미인은 등산 안 좋아해도 이렇게 멀리까지 혼자 등산 오는 나 같은 사람이지!'

  평일, 등산 가리지 않고 등산을 다니는 중입니다. 이렇게 무리해서 다니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돈, 체력은 제한적인데, 이루고픈 목표와 가고픈 멋진 곳이 한가득입니다. 블랙야크 섬&산과 백두대간을 완등하고,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섬+바다 인증도 완료하면 그다음 목표는 제주 올레길입니다. 나아가 다가올 사십 대부터는 해외로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알프스,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등 전부터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돈 많이 벌어야겠다!'

때문에, 한눈팔 새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그저 목적의식만 강하다고 염려할지 몰라도, 인생에 정답은 없는 법입니다. 각자 삶에 대한 생각과 방식이 다르니, 존중하는 수밖에요.

  다음날 진도에서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첨찰산 일정을 남겨뒀기에, 숙소는 목포에 예약했습니다. 신안에서 목포까지 지도상에선 매우 가까워 보이지만, 막상 와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 배고파! 식사는 어디서 하지?'

  목포 인증방에서 맛집 추천을 받았으나, 숙소 입실 시간도 너무 늦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인근에서 끼니를 대충 때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제육볶음을 먹을까 해서 백반집에 들어갔으나, 인기척이 없습니다. 너무 고요했습니다. 석식 시간인데, 손님이 없는 건 수상했습니다.

  '여긴 아닌가 보다.'

누가 볼세라, 서둘러 발을 돌렸습니다. 맞은편에 순대국밥집이 보였습니다. 식당의 간판과 벽면을 훑으니, 방송에도 나온 적이 있는 유명한 식당인가 봅니다. 내부에 손님들도 적당히 있었습니다.

  '좋아. 저기 가보자!'

  순대국밥을 주문하고, 인터넷에서 상호를 검색했습니다. 평판이 어떤가 싶어 후기를 읽었는데,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이모님들끼리 친목하시느라, 손님한테 너무 신경을 안 쓰시네요."

  "위생 수준도 나쁩니다. 이런 집이 왜 백 년 가게인지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니, 음식을 주문한 지 꽤 시간이 지났습니다.

  '대기 손님이 잔뜩 밀려서 바쁜 것 같진 않은데, 왜 여태 식사가 안 나오지?'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따질 만한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휴대전화를 보면 시간을 때우고 있자니, 드디어 순대국밥이 나왔습니다.

  "늦어서, 미안해요......"

  주인아주머니가 사과했습니다.

  "괜찮아요."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국물은 해장국이었습니다. 평소 알고 있던 순대국밥과는 달랐습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으나, 개성이라고 생각하고 식사를 마쳤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 입실했습니다. 오늘 묵을 곳은 사 인실입니다. 신안에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서른여덟 살의 언니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경계하는 눈빛이었습니다.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시시콜콜한 연애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그녀는 수줍게 웃었습니다. 

  "신안에서 근무하는데, 신안에서 사는 게 낫지 않아요?"

  "원래 살던 순천에서 쭉 살고 싶어서요."

  "아, 순천인이 굉장히 많네요! 전남 여행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 죄다 순천인이던데. 남자 친구는 없어요?"

  "남사친은 많은데, 단 둘이 만나진 않아요. 여럿이서 어울려요."

  밤이 깊었습니다. 그녀는 내일 배를 타고 신안으로 출근할 예정이라서, 새벽에 퇴실할 거라고 밝혔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논문 읽어야 해서, 챙겨 왔어요.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읽으려고요. 잘 자요!"

목포에 혼자 왔지만, 혼자가 아니라서 좋았습니다. 곧 잠이 들었습니다.


덜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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