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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May 09. 2023

여수 초도 상산봉(339m)

  이제 여수는 초도, 거문도, 손죽도만 가면 됩니다. 이 세 곳만 다녀오면, 여수의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 섬&산 인증을 모두 마칩니다.

  초도, 거문도는 고흥의 녹동항에서 가는 배가 있고, 손죽도는 여수 여객선 터미널에서 갈 수 있다고 해운사로부터 안내받았습니다. 고흥 녹동항의 평화 해운 직원이 말했습니다.

  "평일에 가면, 주말 승선료의 반값이에요."

  "와, 그럼 꼭 평일에 가야겠네요! 그런데, 인터넷 예매가 안 되네요?"

  "네, 현장 발권만 가능해요."

  지난 4월 2일 일요일, 배를 타기 위해 전날 고흥에서 하루 묵었습니다. 다음날인 월요일, 새벽 6시 30분경에 고흥 녹동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평화 해운은 월요일에 휴무라는 게 아닙니까? 허망했습니다. 귀가 후, 해운사에 전화해 직원에게 따졌습니다.

  "배값이 싸니까, 평일에 오라면서요? 그런데, 월요일에 휴무라는 걸 왜 안 알려 주셨어요?"

  "안내를 안 해드려서, 죄송해요. 요금에 대해서만 물으시길래, 휴무를 미처 안내 못 드렸네요."

  "네, 그 말이면 돼요. 변명을 하실 필요는 없어요."

  "전화를 하신 이유가 뭐예요?"

  "사과를 받으려고 전화한 거고, 사과를 받았으니 됐습니다. 다음부터는 안내 잘해주세요. 저처럼 손해 보는 손님이 또 있으면 안 되잖아요."

  분하고, 억울하고, 속상하지만 별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시간과 돈과 노력이 아깝지만, 해운사에서 책임질 리 없습니다. 앞으로 더 집요하게 문의하고, 치밀하게 계획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짬을 냈습니다. 4월 26일 수요일, 새벽 3시에 출발했습니다. 졸음을 참으며, 먼 길을 달렸습니다. 마침내 고흥 녹동항에 도착했습니다. 7시에 출발하는 배인데, 조급했습니다. 그간 경험을 떠올리면, 출발 예정 시간보다 더 일찍 배가 출발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늘 미리 가서 대기해야, 아무래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여수 초도에서 하루, 거문도에서도 하루 숙박할 예정이기에 짐이 많습니다. 배낭과 캐리어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짐을 챙기고 부랴부랴 뛰어 매표소로 가니, 대기줄이 꽤 길었습니다. 발권 후, 화장실에 들렸습니다. 문득, 자동차 유리창에 덮개를 씌우지 않은 게 떠올랐습니다.

  '후다닥 덮개 씌우고, 뛰어서 배 타야겠다.'

  대합실 좌석에 짐을 내려놓고, 주차장으로 달렸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문이 열려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응? 나 아까 차문을 아예 안 닫았어? 세상에, 미쳤네!' 

하마터면, 승용차 운전석을 활짝 열어 놓고 섬에 갈 뻔했습니다.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듯, 닫힌 문도 다시 확인해야만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마무리를 마치고 배에 올랐습니다.

  "아직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하셔도 돼요."

검표 직원이 친절한 말 한마디를 건넸으나, 그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대답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통 없었습니다.


  날씨는 화창했습니다. 배는 순조롭게 출항했고, 약 두 시간 후에 초도 대동 선착장에 닿았습니다. 민박집 위치를 몰라서, 행인을 붙잡고 물어봐야 할 판이었습니다.

  "두산 민박에 묵는 손님, 맞지요?"

누군가 말을 건넸습니다. 60대로 보이는 노신사였습니다. 키가 상당히 컸습니다.

  "네, 맞아요!"

  "마을 이장입니다. 마중 왔어요. 데려다 드릴게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고맙습니다."

알고 보니, 민박집은 선착장에서 바로 코 앞이었고, 충분히 걸어갈 있는 거리였습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등산하러 떠났습니다. 친절한 이장님이 이번에도 몸소 바래다주었습니다. 그는 시인이라고 했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김진수요."

  상산봉에 오르니, 바다가 보이는 곳에 과연 이장님의 시가 한 수 있었습니다.



초도에 가면

                                   김진수



가슴에 별이 진 사람 초도로 가라


여수항 뱃길로 48마일

삼산호, 신라호, 덕일호 훼리호,

순풍호, 데모크라시, 줄리아나 오가고

뱃길 빨라질수록 발길은 멀어져도

해초처럼 설레는 낭만은 있다


이슬아침 소바탕길로 상산봉에 오르면

낮고 낮은 햇살에도 퍼덕이는 금비늘

희망은 가슴 터질 듯 수평선에 이르고

달빛 수줍은 갯바탕길을 따라

은하수 시거리가 이야기꽃 피우는

초도, 그 풀섬에 가면

아직도 총총한 별들이 뜬다



  하산 후, 숙소 식당에서 이장님과 재회했습니다.

  "정상에 이장님 시 있던데요! 그 너머로는 바다가 보이고요."

  "그 시의 핵심은 첫 연이죠. '가슴에 별이 진 사람 초도로 가라'. 초도가 고향입니다. 섬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노인들은 그저 살다 가면 그만이지만,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둘레길도 곧 만들 거예요."

  이장님의 두 딸들은 결혼해서 여수에서 살고, 막내아들은 미혼이라고 했습니다.

  "아드님이 이장님 닮았으면, 키가 훤칠하겠네요."

  "안 그래요. 뚱뚱해요."

  대화하던 중, 이장님이 칭찬을 했습니다.

  "이런 말하면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가씨 개방적인 성격이 딱 내 이상형이에요!"

  "개방적이라는 말, 최근 들어서 많이 들어요. 의외로 보수적인 면도 있어요."

  "우리 딸들한테도 내가 늘 그렇게 가르쳐요. 남자한테 의지하지 말아라. 스스로 자립해라!"

  "그럼요. 여자가 남자한테 기대면, 남자들도 심히 부담스러워해요."

  

  이장님과 함께하는 식사라서 그런지, 진수성찬이었습니다. 전라도 밥상답게, 상다리 부러지게 반찬이 풍성했습니다. 주인아주머니와도 대화를 나눴습니다. 순천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역시나, 가는 곳마다 순천인이로군!'

잠시, 누군가를 생각했습니다. 여수에서 순천은 지척입니다.

  청포도 막걸리가 있길래, 맛이 궁금해서 맛보았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인심 좋게 한 사발 가득 부어주었습니다. 향긋했습니다.


  이장님이 운전하는 트럭을 얻어 타고, 대풍 해수욕장을 둘러봤습니다.

  "여름에 여기서 해수욕하는 사람들 많아요."

  "육지인들이 피서 오나요?"

  "아뇨, 마을 사람들이요."

  초도는 대동, 의성, 진막 3개의 마을이 모여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장님과 점방 앞에서 헤어졌습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베어 물고, 숙소까지 걸어왔습니다. 방으로 들어와, 책을 폈습니다. 법정 스님의 수필을 읽었습니다. 스르륵 졸음이 몰려오자, 일찌감치 눈을 감았습니다.


  별이 지고, 뜨는 것에 대해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이 바쁘게 하루하루 살고 있었습니다. 초도에 와서 시 한 편을 읽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내 가슴에는 과연 어떤 별이 몇 개나 떠 있나,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습니다. 막연하지만, 아직 별이 꽤 여러 개 반짝이는 것 같습니다. 만약 별이 다 지고 없다면, 누군가 이렇게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갈망할 리는 없으니까요. 다행히, 감성만은 초도의 풀처럼 무성하고 싱그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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