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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n 16. 2023

[블야 섬&산 78좌] 인천 대연평도 안보 교육장

  안개로 인해 대연평도행 배는 결항됐습니다. 울화통이 터졌지만, 인간의 힘으로 날씨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인천 수목원을 둘러보고, 오후 일찌감치 숙소에 입실했습니다. 감기 몸살 때문에 고단했습니다. 광명시에 거주하는 지인으로부터 밴댕이를 대접하겠다는 연락이 왔으나, 몸을 일으킬 수 없었습니다. 끼니도 거른 채, 곯아떨어졌습니다.


  다음날, 숙소에서 출발하기 전 해운사에 확인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행히, 출항한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여덟 시 배를 타고, 대연평도에 도착했습니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버스가 한 대 보였습니다. 원래 목적지까지 걸어갈 요량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습니다.

  "안보 교육장, 가나요?"

버스 기사에게 질문했습니다.

  "네, 갑니다." 

사십 대로 보이는 남성이 대답했습니다.

  "안내 방송이 나오나요?"

  "아뇨, 안 나와요. 제가 알려 드릴게요."

잠시 후, 기사의 안내에 따라 하차했습니다.


  조금 걷다 보니, 안보 교육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건물이 옆에 있었는데, 분위기가 스산했습니다.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이런 걸 왜 방치하는 거지? 보기 싫게......'

  실내에 들어서니, 안보 교육장은 무인으로 운영 중이었습니다. 전시물을 훑고, 영상도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까 본 폐건물은 바로 폭격의 상흔이라는 것을.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 모두 북한 황해남도와 인접한 섬입니다. 백령도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이 있었고, 대청해전, 두 차례의 연평해전이 터졌습니다. 



  북방한계선(NLL)

  북방한계선은 천구백오십삼 년 팔 월 삼십 일, 유엔군 사령부가 정전협정 체결 직후 남북간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서해 다섯 섬)를 따라 그은 해안 경계선입니다. 천구백오십삼 년 칠월 정전협정 체결 당시 유엔군과 북한군은 지상에 대해서는 양측 대치 지점에 군사분계선을 합의했으나 해상경계선을 어디로 정할지는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서해의 경구 국군이 육·이오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 끝에 확보한 '서해 다섯 섬'의 전력적 중요성 때문에 양측이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유엔군은 서해 5도와 북한 측 육지 중간을, 북한은 육지의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해상경계선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회담이 결렬됐습니다. 유엔군사랑관(마크 클라크)은 동서해에서 우리 측 해군 및 공군의 초계 활동을 한정하는 북방한계선(NLL)을 설정했습니다. 서해 북방한계선은 삼 해리 연해를 다섯 개 도서와 북한 지역의 개략적인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강 하구로부터 서북쪽으로 열두 개 좌표를 연결하여 설정된 선입니다.

  서해 다섯 개 도서와 북방한계선 인근 수역은 위치상 삼팔도선 이남으로 육·이오 전쟁 발발 이전과 전쟁 기간은 물론 천구백오십삼 년 칠 월 정전협정 체결 당시에도 우리 측이 관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한반도 주변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유엔군과 한국군 해·공군력의 초계활동 범위를 한정하는 NLL을 통해 남북한 무력충돌을 예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북한은 북방한계선이 설정된 이후 천구백칠십삼 년까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이를 인정·준수해 왔습니다. 그러나 천구백칠십삼 년 북방한계선을 대규모로 침범한 이른바 '서해사태'를 일으킨 이후 북한은 "유엔군 측이 서해 다섯 섬을 관할하고 있으나 그 주변 수역은 북한의 연해, 관할 수역, 영해"라고 주장하면서 북방한계선을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북한은 천구백구십이 년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한 구역으로 한다"라고 합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두 건의 연평해전, 대청해전 등 무력도발을 지속했습니다.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서해 다섯 섬 주변 수역을 북한 측 영해라고 억지 주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을 전혀 몰랐습니다. 관람을 마친 후, 밖으로 나와 허물어진 건물을 자세히 살폈습니다. 지붕이 내려앉고, 무너진 담벼락에는 그슬린 자국이 남았습니다.

  '세상에, 도민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여기서 살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 다들 육지로 피난 갔겠네!'


  안보 교육장에는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용변을 보기 위해 마땅한 장소를 찾던 중, 체육관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기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어, 아까 버스 기사님?"

그곳에서 낯익은 이를 만났습니다. 그가 고개를 까딱이며, 가볍게 인사했습니다. 넓은 어깨와 다부진 몸매에 시선이 쏠렸습니다.

  '어라, 아깐 몰랐는데...... 근육질 몸매잖아?'

  화장실만 다녀와서, 체육관을 나가려는데 육십 대 남성이 말을 걸었습니다.

  "혹시, 의사 선생님이세요?"

  "네? 아니요. 의사가 운동복 차림으로 일하러 오겠어요?"

  "선생님들도 대부분 편한 복장으로 오셔서, 옷을 갈아입으시더라고요. 흰 가운 하나만 걸치면 되니까요. 오늘 오실 예정인 의사이신가 했어요."

  "아, 아니에요."

  의사처럼 보였다니, 엉뚱하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인근 식당에서 식사했습니다. 김밥을 맛있게 먹었는데,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이물질을 발견했습니다.

  "여기 머리카락 있는데요......"

  "어머, 그게 왜 거깄지?"

  "괜찮아요. 계산할게요."

  "돈 안 받을게요. 그냥 가세요."

결국, 식당 아주머니는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어색하게 자리에서 뭉기적뭉기적 일어났습니다. 뜻하지 않은 공짜밥이었습니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배는 오후 세 시 삼십 분입니다. 아직 한참 여유가 남았습니다.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아까 체육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버스 기사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어, 또 뵙네요."

반가워서, 먼저 아는 체를 했습니다.

  "이따 배 타고, 인천으로 나갈 거죠?"

  "네."

  "두 시 삼십 분쯤 이 도로에 서 있으면, 버스 지나가요. 그냥 아무 데나 서 있어도, 버스 탈 수 있어요. 알았죠?"

  "네, 알겠어요."


  정자에 올랐습니다. 바다와 다리가 보였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색색의 지붕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폭격 이후 도민들이 집을 수리하고, 마을을 새 단장하느라 꽤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이 들었겠네.'

  인조 잔디가 깔린 드넓은 운동장에서는 해병대원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곧 축구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책을 펼쳤습니다. 



  花落花開又一年

  人生幾見月常圓

  꽃이 피고 지기 또 한해

  평생에 몇 번이나 둥근달 볼까



  달이라는 단어를 접하니, B와 통화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B: 전남 모임을 누나가 왜 가입했대? 전남인도 아닌데?

슈히: 나, 동행이 필요해서.

B: 동행?

슈히: 어.

B: 일단, 동행은 나 있잖아.

슈히: 넌 내가 숙박비 아낀다고 재워 달라고 했는데, 재워 주지도 않고!

B: 내가 집에 없는데, 어떡해.

슈히: 치, 아무것도 안 훔쳐 갈게.

B: 토요일엔 정원 박람회 누구랑 가?

슈히: 한타 님.

B: 일요일엔 누구랑 가?

슈히: 토요일에도 둘이고, 일요일에도 둘인데?

B: 그래? 좋은 데이트되겠구먼.

슈히: 데이트 이제 그만하고 싶어.

B: 이십 대 남자라고 좋아하더니.

슈히: 그거야, 농담이지. 너도 나한테 전남 여성 만날 때 좀 부르라고, 그랬잖아!(웃음)

B: 오늘 보름달이네?


  그땐 뜬금없이 그가 웬 보름달 타령인가 했는데, 지금은 달이라는 글자만 봐도 마음이 먹먹합니다.

  '정말 중증이네. 앉으나 서나, 님 생각.'

빨간 옷을 입은 해병대원들이 운동장을 힘차게 누비고 있었습니다.

  '해군 아니고 해병대만 봐도어딜 가나 그대 생각.'


  선착장을 향해 천천히 걸었습니다. 가는 도중, 나무 사이로 운동장 벽이 무심코 보였습니다.

  '응? 왜 저래?'

가까이 다가가 살피니, 벽이 뜯겨서 철골이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섬뜩했습니다. 이것 또한 폭격의 잔재였습니다. 안내문을 읽었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적 포탄 낙탄 장소

이천십 년 십일 월 이십삼 일 오후 두 시 삼십 분경, 북한군은 해안포와 백이십이 밀리미터 방사포(백오십 여발)로 연평도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해병대 연평 부대는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십삼 분 만에 자주포 대응 사격을 실시하여 북한군의 도발을 분쇄하였습니다.

북한군의 연평도 도발은 육·이오 전쟁 이후 대한민국 영토에 직접 포격을 가한 최초의 사건으로, 당시 해병대원 두 명이 전사하였습니다. 민간인 사망자 두 명과 다수의 부상자, 민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해병대 연평부대는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고 오늘도 대한민국 수호의 최선봉에서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임무 완수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아까 버스 기사가 일러준 대로, 두 시 삼십 분경에 도로를 걷고 있자니 버스가 다가와 멈췄습니다. 오늘만 벌써 동일 인물을 네 번이나 마주쳤습니다. 놀랍고도, 신기한 상황이었습니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군인들과 소방관을 마주쳤습니다. 뭍으로 나가는 동료를 부러워하는 군인들의 대화를 곁에서 들으며, 공감했습니다.

  '아무래도, 여기 갇혀 있는 게 엄청 답답하겠지. 근데, 소방관은 왜 이리 흔한 거야! 가는 곳마다 있잖아? 예전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만약 전쟁이라도 나면, 아마 이런 한가한 고민 따위는 하지도 않겠지요. 나라가 평화로워서, 한낱 사랑 타령 중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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