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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n 17. 2023

[블야 79좌] 완도 생일도 백운봉(483m)

  어제는 B의 생일이었습니다. 생일도 산행을 제안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거절했습니다. 불과 두 달 사이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새 여자 친구가 생겼으니 껄끄럽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씁쓸한 마음으로 완도로 향했습니다. 지난 삼 월에 완도 화흥포항에서 B를 처음 만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혼자 이별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우울했습니다. 그는 이제 곁에 없습니다.


  아홉 시경, 약산 당목항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Y 님이 먼저 다가와 인사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지난달에 고흥 연홍도에서 처음 만났고,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잘 지냈어요?"

Y 님의 본가는 B가 사는 아파트라는데, 괜스레 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아홉 시 사십 분 배를 타고 완도로 출발했습니다. 해풍 때문에 으스스했습니다. 겉옷을 입을까, 말까 고민하다 귀찮아서 그냥 벌벌 떨었습니다. S 님이 말했습니다.

  "우리들 외에 다른 승객들은 무슨 종교 단체에서 왔나 봐요. 분위기가 묘해요. 단순히 관광하러 가는 것 같지 않아 보여요."

듣고 보니, 과연 그럴싸했습니다.


  완도로 가는 동안 경치가 훌륭했습니다. 꽤 감탄할 만한 풍경이었습니다. 별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눈이 즐거웠습니다.

  "와, 아름답네요!"

  완도 생일도는 그간 일부러 가지 않고, 아껴둔 곳입니다.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거나, 혹은 생일을 축하받고 싶어서였습니다. 또, 녹음을 감상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두 달 전에 왔더라면, 앙상한 나뭇가지만 무성했을 터였습니다.


  생일도 서성항에 도착했습니다. 커다란 삼단 케이크 모형을 발견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을 안고, 다가가 관찰했습니다. 흰 케이크 위에 장식된 전복과 미역, 과일, 마카롱 등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미리 준비한 고깔모자 머리핀을 꽂고 기념 촬영했습니다.  

  '케이크와 해산물이라니, 웃겨! 날마다 생일인 것처럼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게 무슨 꽃이지?"

  Y 님이 궁금해하길래, 대답했습니다.

  "데이지요."

  "오, 이게 데이지예요? 지드래곤이 좋아하는 꽃이네!"

백색, 황색, 녹색이 어우러져 오 월의 햇살 아래 무럭무럭 자라나는 중이었습니다.


  백운봉 들머리로 향하던 중, 노랗게 만발한 아름다운 꽃을 만났습니다. Y 님에게 물었습니다.

  "이 꽃은 뭘까요?"

  "몰라요."

  "금계국이요! 예전에 내변산에서 알게 됐어요."

시간이 한참 지난 후, Y 님이 꽃에 대해 기억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꽃, 아까 뭐라고 했죠?"

  "...... 국이었는데. 뭐였지?"

  "하하, 미역국이요? 금계국이요!"

  "개국공신!"

  "그 개 자 아니에요."


  익숙한 꽃이 또 나타났습니다. 흰색이 순결하고 청아해서, 좋아하는 꽃이었습니다. 

  "이 꽃 이름 아는 사람?"

   "......"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산딸나무라고 해요."

오빠들은 꽃에 대해 잘 몰랐으나, 다행히 관심이 아예 없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며칠 후, S 님이 단체 대화방에서 꽃 사진과 함께 소식을 전했습니다.

  "슈히 님이 알려준 산딸나무 봤어요!"


  백운산은 오백 미터가 채 되지 않는 높이였지만, 감기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오빠들은 이미 멀찌감치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지친 몸을 끌고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감기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거겠죠? 날씨 탓도 있을 테고...... 벌써 이렇게 더우면, 어쩌나!"

다행히, 오빠들이 한 번씩 돌아보며 기다려줘서 겨우 정상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하산할 때, Y 님이 질겁했습니다. 혼자 뱀을 봤다는 것이었습니다. 뱀의 존재보다 Y 님의 반응을 보고 더 놀랐습니다. 뱀을 굉장히 싫어하는 모양이었습니다. 


  하산 후, 맛집 전문가 Y 님의 안내를 받아 인근 맛집에서 풍성한 식사를 했습니다. 푸짐한 매운탕이 일품이었습니다.  좀 더 느긋하게 쉬려고 했으나, 식후에 부랴부랴 밖으로 나왔습니다. 안내 방송이 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오후 두 시 이십 분 배가 곧 출발할 시간이었습니다.

  "어? 이러다 배 놓치겠어요! 빨리 나가요!"

  발권 후 매표소를 나왔는데, 승선권을 보니 이름이 잘못 입력된 걸 뒤늦게 알아챘습니다. 이름의 '서'를 '꺼'로 직원이 오타를 냈습니다. 언짢아서 이 사실을 오빠들에게 말했더니, 그 후부터 '서화'가 아니라 '꺼화'로 불리게 됐습니다. 완도 생일도에서 의도치 않게 새 별명을 얻었습니다.



리빙스톤 데이지
멀구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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