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히 Jul 13. 2023

[블야 섬&산 83좌] 인천 승봉도 코끼리 바위

  승봉도

  아득한 옛날, 신 씨와 황 씨가 고기를 잡던 중 풍랑을 만나 대피한 곳입니다. 며칠 동안 굶주린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경관도 좋고 산세도 괜찮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해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이곳의 지형이 마치 봉황새의 머리 모양과 같다 하여 승봉도라 부릅니다.



  대이작도에서 승봉도행 뱃삯이 단돈 팔백 원이었습니다. 세상에, 버스비보다 저렴했습니다! 바다로 할인을 받은 덕택이었습니다. 흡족한 마음으로 배를 타고, 몇 분 후 승봉도에서 사뿐히 내렸습니다.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펜션 사장님이 운전하는 승합차에 몸을 싣고 숙소까지 이동했습니다. 해풍 때문에 문이 녹슬었는지, 숙소의 출입문 손잡이가 영 말썽이었습니다. 한참 씨름하다 간신히 문을 열고, 짐을 내렸습니다.

  블랙야크 섬 인증지는 코끼리(남대문) 바위였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바위를 사진으로 봤을 때, 코가 긴 동물의 모습을 영락없이 빼닮은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혼자보다는 Y 양과 함께 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숙박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일정이라서 혼자 오게 됐습니다.

  숙소 바로 옆에 식당이 하나 있어서, 석식으로 해물 칼국수 일 인분을 예약했습니다. 허기졌지만, 주인아주머니는 두 시간 후인 저녁 여섯 시에 오라고 당부했습니다. 숙소 사장님에게 물으니, 남대문 바위까지 금방 다녀올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인증 먼저 마치기로 마음먹고, 신발 끈을 묶었습니다.

  이일레 해수욕장을 떠나 도로를 따라 걸으니 겹작약, 사계 패랭이, 송엽국, 초롱꽃 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기척은 없었습니다. 숲길을 지나자, 곧 해변이 나왔습니다. 짐승 한 마리가 모래사장 위에 서있는데, 한 남자가 카메라를 들고 동물의 뒤를 살그머니 쫓았습니다. 점차 간격이 좁혀졌습니다. 새는 낌새를 눈치채고, 아장아장 걸었습니다. 그들은 잠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고, 관광객은 질세라 끈질기게 추격했습니다. 갈매기는 곧 무심히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술래잡기는 끝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인간과 동물의 경쟁에서 인간이 진 것 같아 빙그레 웃음이 났습니다.

  맞은편에서 단체 관광 온 할머니 무리가 한 차례 지났습니다. 부채 바위라는 볼거리가 하나 있었으나, 전혀 부채 같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남대문 바위에 도착했습니다.



  남대문 바위

  거대한 암석 한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있어 코끼리를 연상하게 합니다. 바위 모양이 남대문 같아서 남대문 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멀리서 보면, 코가 뭉툭한 개미핥기를 닮은 듯도 하고, 코끼리 같기도 합니다. 간조 시에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와, 멋있어! 실례지만,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뒤따라 온 노부부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습니다. 어머님이 촬영하는 동안, 코를 붙잡고 뱅뱅 돌며 코끼리 흉내를 냈습니다. 지인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웬 벌칙을 받는 중이냐고 물었습니다.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 앱에 인증 요청을 했으나, 이목구비가 선명히 드러나지 않아서 재인증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당황해서, 정면 모습 사진으로 재인증 요청했습니다. 가까스로 인증 성공했습니다. 하마터면, 인증하러 다시 와야 할 뻔했습니다.


  해변에서 노부부보다 먼저 숙소로 발길을 돌렸으나, 가는 도중 산림욕장에 잠시 한눈을 팔아서 잠시 헤맸습니다. 숙소 인근에서부터 노부부와 재회해 대화하며 걸었습니다. 부부는 딸이 하나 있는데, 또래였습니다.

  "딸은 여행을 좋아해서, 혼자 잘 다녀요. 결혼 생각은 없대요."

자녀가 왜 결혼할 마음이 없는지 궁금했으나, 초면에 실례될까 봐 캐묻지 않았습니다.


  숙소에 들러 세면대에서 손을 청결히 닦은 후,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아까 만난 노부부가 먼저 와서 식사 중이었습니다. 혼자 칼국수를 먹으려 했는데, 아버님이 합석을 권했습니다.

  "딸 같아서 그래.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머님의 눈치를 살피자, 동의하는 듯 보여 합류했습니다. 먹을 복이 많아서, 어딜 가든 굶어 죽진 않는 편입니다. 파래 전, 매운탕, 수제비 등 진미가 넘쳤습니다. 배불리 먹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만찬이었습니다.


  독서하다 일찍 취침했고,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산림욕장과 당산을 지나 촛대 바위까지 산책했습니다.


  당산 이야기

  옛날, 신 씨와 황 씨가 함께 고기를 잡던 중 풍랑을 만나 대피한 곳이 승봉도입니다. 두 사람의 성을 따서 신황도라고 부르다가, 이곳 지형이 마치 봉황새의 머리 모양 같다 하여 승봉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산에서 중턱에 서 있는 거대한 소나무를 만났는데, 송진 방울이 뚝뚝 흘렀습니다. 마치 사람이 슬퍼서 우는 듯하여, 이 소나무를 위로하기 위해 봄마다 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촛대 바위

  촛대 같기도 하고, 사람의 손가락 같기도 합니다.  



  소나무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건 허무맹랑하긴 했지만, 식물의 애환까지 헤아리는 마음이 정답게 느껴졌습니다. 촛대 바위에 다다랐을 무렵, 성난 파도가 철썩철썩 몰아쳤습니다. 바위에 부딪친 포말이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고 놀랍고도 무서워서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혼자 보기에 아까운 광경이었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하늘이 흐리고, 파도가 거세서 출항 여부가 걱정스러웠습니다.


  식당에서 조식을 먹고, 숙소에서 아홉 시에 출발했습니다. 펜션 사장님이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손님들과 다 같이 선착장으로 모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배는 예정대로 출발하지 못했습니다. 대이작도를 경유해서 오는 배가 꽤 지연됐습니다. 갈매기 떼를 보며, 지루한 시간을 견뎠습니다. 다행히, 무사히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옥구슬 씨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바빠서 통 연락하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옥구슬: 내일 짬뽕 먹으러 갈까?

슈히: 나 지금 인천이에요.

옥구슬: 어, 그럼 모레 갈까?

슈히: (웃음) 그때도 시외에 있을 텐데.

옥구슬: 그럼, 다음에 가야겠네.

슈히: 옥구슬 씨가 내일 만나자고 하면, 등산 안 갈게요.

옥구슬: 어, 안 가도 되는 등산이면......

슈히: 안 가도 돼요. 옥구슬 씨 보는 게 더 중요하죠,

옥구슬: 난 별로 안 중요할 것 같지만...... 슈히 씨가 괜찮다면 그렇게 하죠.

슈히: 그래요. 내일 등산 안 갈게요.

옥구슬: 이제 마음 좀 괜찮아지지 않았어요?

슈히: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알던 오십 대 선생님과 상담했어요. 그분이 지혜로우시거든요. 아주 시원하게 정리해 주시더라고요.

옥구슬: 뭐라고 하시던가요?

슈히: 몸 주고, 맘 다 주면 미련 곰탱이래요.

옥구슬: 전혀 현명하지 않으신데. 사랑은 원래 불공평해요. 어떤 사람에겐 많은 흔적이 남고, 어떤 이에겐 흔적조차 남지 않는 거예요. 슈히 씨가 팔 하나 잘라서 상대한테 준 것도 아니잖아요?

슈히: 이 선생님은 저한테 밀당하라는 거예요.

옥구슬: 개소리를 하네. 지금까지 내 마음 가는 대로 살았는데, 이제 와서 무슨 밀당을 해? 어차피 늙어서 썩어 문드러질 몸뚱이. 좋아하고, 사랑했다가, 안 되면 아픈 마음 안고 사는 거지. 밀당을 하고 자빠지고 있어. 살 날이 얼마 남지도 않은 사람이.

슈히: 어차피 그런 성격이 못 돼요. 안 좋은데 좋은 척하고, 좋은데 안 좋은 척 못 해요. 계산 못 해요.

옥구슬: 슈히 씨 하고픈대로 하다 가는 게 맞아요.

슈히: 제멋대로 살다 가기?

옥구슬: 그럼. 이미 틀렸어.

슈히: (웃음)

옥구슬: 인생에 남자가 얼마 안 남았어.

슈히: 뭐 그런 말을 해. 지난 일요일에도 누구 만났어요.

옥구슬: 아니, 그런 남자 말고.

슈히: 진심으로 좋아할 남자요?

옥구슬: 사랑해서, 잠자리하게 될 남자요.

슈히: 슬프네요.

옥구슬: 나도 마찬가진데, 뭐. 시한부 인생이지. 이제 몇 명이랑 못 하겠다, 하고 살고 있어요. 충분히 많이 하긴 했지만.

슈히: 지겹네요, 저는.

옥구슬: 양보다 질이죠.

슈히: 그렇죠.

옥구슬: 가슴이 떨리는데, 밀당을 하고 자빠질 시간이 어딨어요? 그런 얘기 듣지 말고. 아파도, 시간이 다 해결해 줘요. 좋으면, 좋아해야지. 몸 주고, 맘 줬다는 소린 하지 마요. 우리 증조할머니도 그런 얘긴 안 할 거야. 헛소리를 하고 있어. 자기는 더 이상 연애라는 감정을 못 느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슈히: 첫 연애 상대랑 결혼하셨대요.

옥구슬: 명산 100 완등자가 등산 한 번 해본 사람 말을 들으면 어떡해요? 내 얘길 들어요. 내가 연애 훨씬 많이 해봤잖아요. 아프면 아픈 대로 살고, 가슴이 떨리는 사람이 있으면 들이대고.

슈히: 하하하하하하!

옥구슬: 결혼은 좀 그른 것 같으니까.

슈히: 아무튼, 그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냐면. B의 여자 친구 직업이 간호조무사거든요? '수입이 불규칙한 예술가보다는 고정 수입이 있는 간호조무사가 B 입장에선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옥구슬: 그런 거 아니에요.

슈히: 그리고, 거리도 무시 못 하고.

옥구슬: 슈히 씨랑 한 번 했으니까, 다른 여자랑 해야 하니까 그런 거예요.

슈히: 그것도 맞는 말이고요.

옥구슬: 그 수입을 남 줄 것도 아니고. 핑계예요.

슈히: 그 여자가 더 예뻤나 보지.

옥구슬: 그것도 맞는 말이고. 그 남자는 여자가 너무 좋고. 그 심정은 내가 이해해. 그냥, 슈히 씨는 재밌게 한 번 놀았다고 생각하면 돼요. 가질 수 있다면 좋지만, 가질 수 없는데 어떻게 해. 안 주는데.

슈히: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잖아요. 난 솔직히 그때, 원나잇인 줄 알고 '한 번 보고 말겠지.' 싶어서 미주알고주알 얘기 많이 했거든요? 근데, 생각해 보니 그것도 손해야.

옥구슬: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다 말했으면 좋겠어.

슈히: 그래요?

옥구슬: 다 말하는 연애가 가장 진실했어요. 전 남자 친구가 어땠고, 전 여자 친구가 어쩌고...... 이런 얘기 다 하는 게 오히려 더 나아요.

슈히: 난 내가 너무 입이 가벼워서 말실수를 했나, 말조심해야 하나 생각했거든요. 

옥구슬: 아직까지 슈히 씨나 나나 사랑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슈히: 아, 그래요? 사랑을 믿어요?

옥구슬: 나는 사랑만 믿어요.

슈히: 돈을 엄청 사랑하는 것 같은데.

옥구슬: 당연히 돈을 좋아하지만, 사랑이 제일이죠.

슈히: 믿을 건 돈밖에 없다, 이건 아니네?

옥구슬: 믿을 건 돈 뿐이죠. 돈이 나를 제일 든든하게 해 주는데, 요즘 내가 든든하지가 않아요. 든든했으면 좋겠어.

슈히: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잖아.

옥구슬: 그렇죠.

슈히: 법정 스님은 무소유 이야기를 오십 대 선생님한테 했더니......

옥구슬: 법정 스님은 유명인사잖아요. 우리랑 무관해요.

슈히: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주장하시지만, 실제로 그분의 삶은 무소유가 아니라 많은 걸 누리고 가셨다.'라고 하셨어요.

옥구슬: 무소유가 어딨어? 그 사람은 돈 벌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다 했는데.

슈히: 결론이 뭐냐면, 남자 열심히 만나고, 당장 새로운 남자 만나래요.

옥구슬: 그럼요.

슈히: 지쳐요, 마음이. 이렇게까지 해야 돼? 아무튼, 일요일에 만났던 사람은 트레이너인데, 키가 너무 작아요. 밥 먹고, 차 마시고, 코노 갔거든요? 데이트 비용을 다 본인이 내요. 그래서 제가 "음, 왜 돈을 다 혼자 내요?" 물었더니, "다음에 또 만나고 싶어서요."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두 번째 만남은 없어요. 왜냐하면, 두 번째 만나면 여지를 주는 거잖아. 안 맞는 게 제일이지. 아무튼, 한 번 놀고 말았어요. 또 만날 생각은 없어요.

옥구슬: 그래요. 한 번 놀았으면 됐지. 병원 왔어요.

슈히: 어디 아파요?

옥구슬: 운동 무리해서, 어깨가 아파요.

슈히: 내일 우리 만나서 놀 순 있는 거예요?

옥구슬: 우리가 뭐 하고 놀 건데?

슈히: 피아노. (웃음)

옥구슬: 우리가 만나서 내 몸까지 쓸 일은 없어요.

슈히: 피아노 쳐줘요.


풍향계
갈매기는 슬금슬금 도망가는 중ㅎㅎ
부채 바위라고는 하는데, 부채 같지 않은데...
아름다운 금계국 꽃길^^
해물 칼국수^^
수제비가 든 매운탕^^
파래 전!^^
작은데 의외로 실한 게!ㅎㅎ
갯메꽃
으아리
겹작약(1)
겹작약(2)
사계 패랭이(잔디 패랭이)
송엽국
초롱꽃


새들이 씨앗을 파먹는 걸 방지하기 위해 덮어둔 뚜껑들.
촛대 바위
청미래덩굴
남자를 배려한 화장실은 처음 본다. 굳이 남자를 위해 화장실을 두 칸이나 만들 필요가 있나? 그냥 한 칸만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매거진의 이전글 [블야 섬&산 82좌] 인천 대이작도 부아산(163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