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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l 12. 2023

[블야 섬&산 82좌] 인천 대이작도 부아산(163m)

  인천 거주자 Y 양과 함께 인천 자월도에 가려고 했으나, 안개 때문에 출발 지연됐습니다. 여덟 시안산 방아머리 선착장에 관광객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렇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아홉 시가 지나고, 열 시가 됐습니다. 이제,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이대로 쭉 기다릴 순 없으니, 우리도 그만 일어나죠. 어휴, 오전 시간 다 지났네!"

  Y 양과 안산 바다 향기 수목원을 둘러봤습니다. 날씨는 쾌청하고 더웠습니다. 우리들의 공통점은 현재 식단에 따라 식사량을 조절 중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과일, 닭가슴살, 야채 등을 나눠 먹었습니다. 인근 카페로 이동해 그간 쌓인 사연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와 작년 가을에 군산에서 처음 만났고,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언니, 책 재밌어요! 거의 다 읽었어요."

   "인생은 등산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우리, 정상에서 만나요!"

그녀가 들고 온 단행본 <저 등산 안 좋아하는데요?>에 정성 들여 서명했습니다. 

  인천에서 또 다른 지인 R을 만나 푸짐한 석식을 먹고, 느지막이 게스트하우스에 입실했습니다. 사십 대 언니 한 명과 도란도란 대화했습니다. 대구에 사는 그녀는 일자리를 찾아 인천까지 왔다고 했습니다.

  "이틀 동안 하루 세 시간밖에 못 잤어요. 하루 쉬려고요. 내일도 일 나오라네요."

  "그렇게 무리하면, 건강이 상해요! 괜찮아요?"

  "대구는 일자리가 없어요."

  "게다가 물가도 싸다고 들었어요. 제가 사는 도시도 상황이 비슷해요."

  "젤리 먹을래요?"

  "좋죠. 고맙습니다!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봬요."

음식을 주는 사람을 늘 은인으로 여기는 터라, 기쁜 마음으로 젤리를 받았습니다.

  여섯 시 사십 분, 해운사에 전화로 문의했습니다.

  "일곱 시 오십 분에 대이작도 가려는데, 정상 출발하나요?"

  "네, 출발합니다!"

어제는 비록 실패했지만, 오늘을 다행히 성공했습니다. 기뻤습니다.

  여유 있게 인천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주차를 마치고 이동하려는데, 오십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말을 걸었습니다.

  "굴업도 가려는데, 이 주차장에 주차하는 거 맞죠?"

  "네, 맞아요. 제주행은 저쪽이고, 그 외 나머지는 여기에 주차하시면 돼요. 굴업도엔 무슨 일로 가세요?"

  "백패킹하러 가요!"

  "그러시군요. 즐거운 여행 하세요!"

조만간 굴업도에도 갈 예정이라서, 반가웠습니다. 상대도 혼자 온 여자라서 동질감도 느껴졌습니다.

  대이작도행 배에 올랐습니다. 일 층은 주차 공간입니다. 이 층은 선실이 넓고, 승객이 많아서 피했습니다. 계단을 더 올라, 삼 층에 자리 잡았습니다. 처음엔 방바닥이 냉랭했으나, 곧 온기가 돌았습니다. 부족한 수면 시간을 채우기 위해 눈을 감았습니다. 늘 시간에 좇기는 여행자라서, 매번 잠이 고픕니다.

  배는 자월도, 승봉도, 대이작도 순으로 하선했습니다. 하루에 섬 두 개를 인증하기 위해 대이작도부터 들렸다 승봉도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대이작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영화의 고향 섬마을 선생님'이라는 문구가 보였습니다.



  섬마을 선생님(이경재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19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 마오

구름도 쫓겨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는가 총각 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 보는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섬마을 선생 노래비

  영화 '섬마을 선생'에서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인 '섬마을 선생님'을 기념하는 뜻에 만들어진 기념비입니다.

1967년 제작된 영화 '섬마을 선생'은 당대 최고 인기 배우들인 오영일, 문희, 김희갑, 안인숙, 이낙훈, 최남현, 박암, 김신재 등이 출연했습니다. 외진 섬마을에 교사로 청년(오영일)이 무지한 주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섬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한다는 계몽성이 강한 이야기와 처녀(문희)와의 사랑을 담은 영화입니다.

당시 영화만큼이나 가수 이미자 님의 '섬마을 선생님'이라는 노래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섬마을을 남해의 낙도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 촬영지는 대이작도(계남분교, 문희 소나무, 큰 마을 등)입니다.



  각자 약혼자가 있는 남녀의 연애라니, 흥미진진했습니다. 흑백 사진이었지만, 남자 주연의 얼굴이 흡사 원빈을 닮았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왠지 행복한 결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섬은 아무래도 고립되고 외로운 느낌이라서, 사랑을 쉽사리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선착장에서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잡지 못해 잠시 헤맸습니다. 눈에 띈 도민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데크 따라서 쭉 가면, 부아산 등산로 나와요."

  "고맙습니다!"

과연 굽이굽이 데크가 쭉 펼쳐졌고, 길을 따라가니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부아산까지 고작 육백 미터 남짓입니다.

  '식은 죽 먹기네! 오 형제 바위 먼저 보고 가야지.' 



  오 형제 바위의 전설

  오 형제 바위는 백제 시대에 효심이 지극한 형제가 어부인 부모님을 기다리던 곳으로, 지금은 바위만이 남아 있습니다. 어부인 부모님은 자식들을 위하여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물고기를 잡기 위하여 바다로 나갔습니다. 부모님이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슬피 울던 오 형제가 죽어서 망부석이 됐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 후, 오 형제 바위가 있던 곳에서는 자주 물난리가 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한 해의 마지막날 대이작도만의 풍물놀이인 기원제를 올리고 대성배를 띄웠습니다. 액운을 없애고, 무사 안녕과 오 형제를 위한 제사를 지냈던 장소입니다.


  다섯 개의 바위가 바다를 향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은 마치 부모를 애타게 기다리는 오 형제 같아 보였습니다. 

  '와, 그럴싸한데?'


  부아산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금방 정상에 닿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정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등산객이 한 명 올라오길래, 말을 건넸습니다.

  "부아산 정상은 어디로 가야 해요?"

  오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구름다리는 공사 중이라서, 우회로를 택했습니다. 잠시 함께하는 동안,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최근에 누가 등산하다 여기서 다쳤거든요. 그래서, 공사하는 거예요."

  '구름다리 따위 건너지 않아도 별 미련은 없지만, 이왕 온 김에 건너면 좋았을 텐데!'

살짝 아쉬웠습니다.

  "딸이 하나 있어요. 다 자라서, 청담동에서 근무해요. 남편은 공무원인데, 섬으로 발령받았어요. 남편 따라 이 섬에 온 지 몇 개월 안 됐는데, 좋아요! 여길 매일 등산해요."

  찬찬히 살피니, 여자는 화장이 진했습니다. 무용 강사라고 했습니다. 군살이 없고, 몸놀림이 가벼워 보였습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니,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재혼했어요."

  '다들 이혼하네. 이게 무슨 일이야?'

분명, 사연이 있을 것 같았지만 갈림길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정상에 가지 않고, 마을로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하트 모양의 해변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작년에 비금도 선왕산을 등산할 때도 하트 해변을 본 적이 있는데, 하산 후 감상한 수국 축제의 아름다운 추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부아산은 겨우 해발 백육십이 점 팔이지만, 점이 희미해서 잘 안 보였습니다. 언뜻 보면, 마치 천육백이십팔 미터로 오해할 만했습니다.

  하산 후 비싸기 짝이 없는 회덮밥을 먹고, 야무지게 양치질을 마쳤습니다. 오후 세 시 배를 타고 승봉도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아직 시간이 꽤 남았습니다. 법정 스님의 책을 펼쳤습니다.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고', '내 가슴에까지 그 서러움이 묻어오는 것 같다.' 이 대목이 남일 같지 않습니다.

  '어휴, 남자 하나 때문에 죽을 일은 또 뭐야? 그냥 다른 남자 만나면 될 것을!'

  작은 게 한 마리가 옆걸음질 치며 다가왔습니다. 벗어 놓은 왼쪽 등산화 아래로 숨어들길래, 장난치고 싶은 마음에 신발을 확 들었습니다. 작은 생물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가, 오른쪽 등산화 밑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습니다. 이상한 낌새를 곧 눈치챘는지, 저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몸집은 작은데 어찌나 재빠른지, 다리가 많아서 빨리 도망갈 수 있나 봅니다.

  매표소에서 승봉도행 표를 발권했습니다. 섬에서 보기 드문 젊은이들이 둘이나 있었습니다. 처음엔 연인이나 부부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남남이었습니다. 남자가 자리를 비우고, 여자가 혼자 남았을 때 물으니,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그 오빠는 남편의 친구예요. 남편이 선장이라서, 저도 남편 따라서 섬에 왔어요. 결혼한 지 삼 년 됐어요."

  "아이도 곧 태어나겠네요."

  "네, 출산 계획은 있어요."

한 관광객이 발권하러 매표소에 들어왔다가, 여자를 보더니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여기 있네! 보조개 들어가는 것 좀 봐!"

과연 여자는 섬에만 있기엔 아까울 정도로 미인이었습니다. 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른 입술과 까무잡잡한 피부, 검은 머리칼이 건강해 보이면서 매력적이었습니다. 헐렁한 검정 원피스로 가려져 있었지만, 몸매도 풍만해 보였습니다.

  오후 세 시, 다음 목적지인 인천 승봉도로 배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땅비싸리
깜짝 놀라 도망가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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