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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l 19. 2023

[블야 섬&산 84좌] 진도 관매도 돈대산(219m)

  멘티가 좀 더 일찍 출발하자고 해서, 계획보다 삼십 분 일찍 길을 떠났습니다. 토요일 새벽 네 시 반, 다랑과 만나 그가 주행하는 차 조수석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장장 네 시간을 달려 마침내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에서 노란색 리본을 마주하자, 세월호 사건이 떠올라 마음이 다소 무거웠습니다.

  크고 넓은 대합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주행 매표소였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관매도행 매표소는 인근에 떨어진 초라한 건물이었습니다. 주차한 지점에서 한참 걸었습니다. 그때, 여수에서 출발한 K 님이 당도했습니다. 무려 세 시간이나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 명이 오지 않았습니다. 목포 거주자 고라니 님인데, 초면이었습니다. 원래 배를 타려면 출발 삼십 분 전까진 선착장에 도착해야만 하는데, 그는 영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홉 시 오십 분, 배는 출발했습니다.

  "설마, 배를 놓친 건가? 아이고, 큰일이네!"

지각생으로부터 연락이 통 없길래,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때, 출입문으로 청년 한 명이 쓱 지나갔습니다.

  "저 사람 같은데?"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를 제외한 승객들은 모두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기엔 태도가 너무 평안한데? 서두르는 기색도 전혀 없고."

의아했습니다. 아마 저 사람일 것만 같았지만, 확신이 없었습니다. 단체 대화방에서 그에게 연락처를 주며, 전화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배 못 탔어요?"

  "아뇨, 탔어요."

  "어디 있어요?"

아까 본 젊은이가 바로 고라니 님이었습니다.

  "왜 늦었어요? 가장 가까운 곳 사는 사람이!"

그를 보며 눈을 흘겼습니다.

  "어제 술 마셔서요......"

심지어, 그는 진도 출신이었습니다.

  "진도 관매도, 가봤어요?"

  "아뇨."

  "진도 출신이라면서요?"

  "......"

  해풍 때문에 다소 추웠습니다. 약 구십 분 후, 관매도에 도착했습니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들머리가 보였으나, 등산은 잠시 미뤘습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섬 플러스 바다 인증 도장이 있습니다.

  "잠깐 들를 곳이 있으니, 여기서 잠깐 기다려 주세요."

K 님과 고라니 님에게 말하고, 다랑과 함께 이동했습니다.

  "마지막 인증 축하해!"

  "고마워!"

  "갖고 싶은 선물 있어?"

  "손편지."

  "말 안 해도 써주려고 했는데......"

  "달라고 말해서 받는 거 별론데."

이윽고,  K 님으로부터 독촉 전화가 왔습니다.

  "네, 지금 가고 있어요!"

  돈대산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멘티는 초반에 앞장서서 큰 덩치로 거미줄을 헤쳐 나갔으나, 줄곧 선두를 유지하진 못했습니다. 그가 용변을 보느라 잠시 뒤처진 동안, 남은 일행들끼리 서로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처음엔 몰랐습니다. 그런데, 경치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고릴라 한 마리가 떠올랐습니다.

  "산맥이 마치 고릴라 같지 않아요? 저기 튀어나온 부분이 머리, 양 옆으로 뻗은 산줄기는 넓은 어깨."

그러자, 다른 이들도 동의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멘티가 '참으로 보는 눈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오늘의 꼴찌는 멘티가 아니었습니다. K 님이 기진맥진하며 후발대를 유지했고, 종종걸음을 멈춰 다 같이 그를 기다렸습니다. 한편, 고라니 님은 과연 수색대 출신다웠습니다. 하산할 때 내내 선두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흡연자만 아니면, 참 좋은 동행감인데! 아쉽네.'

  하산 후, 육지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렸습니다. 식사를 하기엔 시간이 어중간했습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간식으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배를 탔는데, 추웠습니다. 곁에 나란히 누워 있던 다랑의 손을 잡았는데, 따뜻했습니다. 다랑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안 피곤한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덮고, 정신없이 곯아떨어졌습니다.

  이틀 뒤, K 님이 물었습니다.

  "둘이 사귀어요?"

  "아뇨. 왜용?"

  "둘이 배에서 손잡고 누워 있는 거 봤음."

  "추워서요."

  "나랑도 손 잡을 수 있음?"

  "당근이죠."

  "됐거든요?"

  "다음에 만나면 손 잡아 드리리다."

  무사히 진도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에 들렸다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운전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야?"

다랑에게 전화했습니다.

  "K 님이 자동차 열쇠를 분실해서, 모여 있어."

  "뭐? 아니, 어쩌다...... 지금 거기로 갈게!"

K 님이 추천한 맛집에 갈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뜸북은 톳의 전라도 방언이라고 합니다. 뚬북이 든 갈비탕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뜸북 가격은 킬로그램당 무려 십만 원이나 한다는데, 놀랐습니다. 

  "우리 오늘 목포에서 하루 묵을 건데, 바다 보이는 예쁜 카페 추천 부탁해요."

  목포 거주자 고라니 님은 흔쾌히 한 곳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고라니 님이랑 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

다랑이 물었습니다.

  "아닌데. 왜?"

  "그래도, 동행인데."

  "눈치 없긴, 데이트잖아! 목포까지 갔으니, 명소 곳은 가야 하지 않겠어? 해넘이 보러 가자."

  "목포는 노을 별로 안 예쁜데."

  "왜?"

  "섬이 많아서."

다랑의 의견에 동의할 순 없었지만, 카페에 도착하자 마침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선명하면서도 부드러운 하늘빛과 흰 구름들이 굉장히 조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누구였더라? 목포 노을은 별로 안 예쁘다고 한 사람이?"

  "누나랑 봐서, 예쁜가 봐."

  "말은 번지르르하네."


  열여덟 시경, 옥구슬 씨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받을 수 없었습니다. 곁에 다랑이 있어서였습니다. 게스트 하우스에 입실한 후, 씻고 잘 준비를 마친 뒤에 그에게 전화했습니다. 약 다섯 시간 후였습니다.


  슈히: 운전기사 겸 짐꾼이 있어서, 좋아요. 내 생일에 얘가 수국 꽃다발 줬거든요? 그땐 고백인 줄 몰랐는데, 그게 고백이었대!

  옥구슬: 정성이야. 

  슈히: 뭐라 했냐면, 남자는 결혼하면 남편이라고 불리잖아요. 나한테, 평생 내 편이 돼주겠대요.

  옥구슬: (웃음) 나 오래간만에 결혼식장 가게 생겼네!

  슈히: 무슨 소리예요! 그냥, 나랑 같이 있기만 해도 좋다는데...... 아직 멀었지만, 처음 봤을 때보단 얘 살 좀 빠졌어요. 내가 일 년 시간 줬어요.

 




마지막 인증지 드디어 완료!^^
해당화 열매(1)
해당화 열매(2)
킹콩이다!
달개비
진도 뱃고동에서 먹은 뜸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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