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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l 23. 2023

[블야 백두대간 48좌] 함양 할미봉(1,026m)

  여러 산악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등생아는 블랙야크 명산 100 완등자이며, 동갑입니다. 그간 만나려고 시도는 했으나, 일정이 안 맞아 만나지 못하다가 이번에 어렵게 시간을 맞춰 함께 등산했습니다.

  일요일 여섯 시 삼십 분, 등생아와 다랑과 합류했습니다.

  "나 감기 걸려서, 목소리가 안 나와......"

초면인 등생아와 반갑게 인사하고 싶었으나, 심한 감기로 인해 작은 소리를 내기 조차 고통스러웠습니다.

  "아프면, 그냥 쉬지......"

등생아가 말했습니다.

  "아냐, 일정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거 싫어해. 괜찮아, 갈 수 있어."

야무지게 대답했습니다. 힘들었으나, 꾹 참고 견뎠습니다. 오후에 비 소식이 있어서, 서둘렀습니다. 오전 중에 함양 할미봉 등산을 마치고, 오후에 전주로 이동할 예정이었습니다.

  등생아는 국가 지원금을 삼천 만 원을 받아 수소 자동차를 샀다고 했습니다. 그가 운전하는 방식은 꽤 거칠었습니다.

  "난폭 운전자 차에 탔어요. 살려 주세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단체 대화방에 유언을 남겼습니다.

  피곤한 나머지, 뒷 좌석에서 곧 잠이 들었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등생아와 조수석을 차지한 다랑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는데, 잠결이라서 거의 못 듣고 일부만 들렸습니다. 좋아했던 누나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저것 자세히 질문하고 싶었으나, 목이 아파서 그럴 수 없었습니다.

  육십령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다랑이 사준 등산화와 모자를 자랑했습니다.

  "둘이 사귀어요?"

  "아뇨."

  "비밀 연애하는 거 같은데. 손 잡아도 돼요. 난 신경 쓰지 말고."

  "안 사귀어요. 계약 관계요."

  계단을 오르며,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좌측은 할미봉, 우측은 다음번에 갈 구시봉이었습니다.

  "할미봉 다녀와서 구시봉, 민령까지 가자!"

  등생아는 민첩했습니다. 과연, 종주하는 사내답습니다.

  "헉헉, 환자를 좀 배려해 주세요. 힘들어요! 구시봉, 민령은 다음에 갈 거야. 오늘은 오후에 꽃놀이 가야지!"

  정상에 다다를 즈음 내려다본 경치를 보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우와, 멋있어!"

흰 안개에 휩싸인 짙푸른 산맥 아래 가지런히 정돈된 논과 마을, 그리고 경마장의 풍경이 조화로웠습니다. 바위에 걸터앉아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몇 걸음 내딛자 곧 할미봉 정상에 닿았습니다. 등생아가 인증 사진을 찍는데, 혼자 찍길래 곁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사진 찍어 줄게!"

그러자, 등생아가 거절했습니다.

  "아냐, 남이 찍어주면 배 나온 것도 보여서 안 돼."

여태 등생아가 왜 얼굴만 대문짝 만하게 나오도록 사진 찍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됐습니다.

  "그럼, 살을 빼면 되잖아."

  "식탐이 강해서 그래.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했거든. 잘 못 먹어서 그래. 음식만 보면 환장해."

  "못 먹은 것 치고는 키가 굉장히 크구나."

등생아는 무려 백팔십칠 센티미터의 큰 신장을 자랑합니다.

  "너, 살만 빼면 여자들이 가만 안 놔둘 텐데? 왜 살을 안 빼? 긁지 않은 복권이로군!"

  "나도 알아. 작년에 두 달 만에 이십삼 킬로그램이나 뺐거든. 여자들이 다가오는 게 느껴지더라."

  "아, 그러니까 좀 빼라고! 너 좋아하는 누나한테 보란 듯이 보여주란 말이야. 다시 잘해보든가."

그는 짝사랑하는 상대가 있었는데, 마음을 얻지 못한 채 차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잊지 못한 채 가슴앓이 중인가 봅니다.

  준비한 음식들을 펼쳤습니다.

  "난 음식 안 싸왔는데."

등생아는 빈손이었습니다. 음식을 안 먹고 등산함으로써 체중 감량하는 유형인 듯 보였습니다.

  "괜찮아. 음식 나눠 먹자."

  하산길에도 등생아는 역시 저 멀리 혼자 앞서갔습니다. 그의 시선을 피해 다랑에게 슬쩍 장난을 쳤습니다. 다랑이 깜짝 놀란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도 역시 맞장구를 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등생아가 혹시라도 뒤돌아 볼까 봐 신경이 쓰였습니다. 눈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다랑이 물었습니다.

  "여긴 꽃이 드문 곳이네."

대답했습니다.

  "다 늙은 할미라서 꽃이 없나 보다. 이름이 할미봉이잖아."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각자 여벌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준비한 산뜻한 원피스로 갈아 입자, 등생아가 말했습니다.

  "난 그냥 달랑 상의만 한 장 가져왔는데! 신경 좀 쓸걸."

  "응? 괜찮아. 검정 옷도 사진 찍으면 배경이 돋보이게 잘 나와."

  함양 맛집 검색하니, 육십령 휴게소의 돈가스가 맛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평소 돈가스를 좋아하는 터라, 기쁜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섰습니다. 은은한 꽃차를 마시며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등생아도 돈가스를 선호하는지, 예전에 먹었던 돈가스를 떠올렸습니다.

  "거기가 제일 맛있더라고!"

식대를 계산했습니다.

  "어, 내가 낼게!"

다랑이 말했습니다.

  "아냐, 내가 살게."

등생아가 운전하고, 다랑이 간식을 샀기 때문입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에 전주로 향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법정 스님의 책에서 덕진 공원의 연꽃이 아름답다는 감상을 접했습니다. 연꽃을 보고 싶어서, 칠 월이 되길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예전에 양평 세미원에서 연꽃을 처음 접했고, 부여 궁남지에서 비 오는 날 연꽃놀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전주 덕진 공원의 연꽃은 단연 키가 컸습니다. 칠 월 첫째 주라서, 이제 막 연꽃이 피어나는 시기였습니다. 몇 송이는 활짝 피었고, 대부분 꽃봉오리였습니다. 다랑의 표현을 빌리자면, 활짝 핀 연꽃들은 녹색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불꽃들 같았습니다.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팔팔하게 솟구치는 새끼들의 뒤를 어미가 뒤따르는 모습을 보며, 아비는 과연 어디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잘 가다가, 새끼들이 갑자기 뭔가에 놀라 튀어 올랐습니다. 자연 속에서 동물을 관찰하니, 그저 신기하고 반가울 따름이었습니다.

  빼곡히 들어선 연잎 사이로 흰 연꽃 하나와 분홍 연꽃 두 송이가 피어있었습니다.

  "삼각관계인가 봐!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거나, 여자 하나에 남자 둘처럼 보인다. 얘네들은 가까운데, 한 송이는 좀 머네. 짝사랑 같아."

감상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등생아가 심술을 부렸습니다. 우산으로 둘 사이를 방해했습니다.

  "왜 그래, 하지 마!"

소리치며 만류했으나, 그는 결국 가운데에 있던 흰 연꽃을 멀찌감치 떨어진 분홍 연꽃과 인위적으로 교차시켰습니다.

  '어휴, 심술꾸러기! 엉뚱해!'

  연꽃 옆에 가까이 서서 예쁘게 사진 찍고 싶었으나, 괜찮은 곳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랑이 적당한 지점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아직 덜 피었습니다.

  "활짝 핀 꽃이 좋은데......"

그러자, 다랑이 꽃봉오리를 흔들며 꽃을 재촉했습니다. 등생아도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벌려!"

  "이 야만인들! 그런다고 꽃이 피겠어? 그만둬!"

어이가 없어서, 크게 웃었습니다.

  오후에 비 소식이 있어서 내내 우산을 들고 다녔으나, 결국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무더워서, 땀이 주룩주룩 비처럼 흘렀습니다. 밤에 야경을 보면 아름답겠다 싶었으나, 병환 중이라서 어서 귀가 후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덕진 공원은 과연 법정 스님이 반할 만한 아름다운 명소였습니다. 이곳에서의 기억이 오래오래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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