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동행과 헤어진 후, 개도에 혼자 남았다. 약 십 분 후, 금오도행 배를 탔다. 금오도에는 항구가 여러 개인데, 그중 함구미항으로 향했다.
평화로운 금요일, 정오였다. 온기가 흐르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옥구슬 씨였다.
“오랜만이네요.”
“어디 가고 계시나 봐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놀러 가요, 또?”
“하하하, 여기 여수예요.”
“그럴 줄 알았어.”
“떠나요, 둘이서~”
“뭘 ‘떠나요’야!”
“낄낄낄낄낄낄!”
“맨날 떠나. 저기, 뭐야. 퇴원은 언제 했어요?”
“퇴원이요? 퇴원은 일월 이십일에 했어요.”
“한참 됐네. 퇴원하면, 연락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길래. 아직도 병원에 있나 싶어서 전화해 봤죠.”
“옥구슬 씨가 연락해야죠! 내 연락에 답도 없더구먼?”
“언제?”
“기억 안 나요?”
“언제 연락했지?”
“아, 진짜 너무하네!”
“퇴원하면 연락 달라고, 내가 그랬잖아요.”
“아니에요. 그런 얘기 없었어.”
“그랬나?”
“빨리 확인해 봐요.”
“음, 나중에 확인할게요.”
“요즘 통원 치료받고 있어요. 일자 목과 일자 허리라서.”
“자세가 나쁘지 않은데, 왜 그러지?”
“십 대 때부터 미술 했잖아요.”
“아, 그러네. 맞아, 예술가 병.”
“직업병이에요.”
“예술가 병이라고 합시다.”
지난달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 옥구슬 씨에게 알렸으나, 그는 ‘문병 못 간다.’라고 답했다.
‘어쩜 이렇게 서운하게 말할까? 문병 오라고 요구한 것도 아닌데…….’
그냥 내버려 두고 신경 쓰지 않으면, 그는 다시 다가왔다. 길들이기 어려운 마치 고양이 같은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금오도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흘렀다. 일어나 신발을 신으려는데, 선원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아가씨, 이거 마셔요.”
“뭐예요?”
“코코아.”
“누가 주시는 건데요?”
“내가!”
“아, 고맙습니다! 잘 마실게요.”
달짝지근하고 따뜻한 음료를 음미했다. 소원한 이로부터 연락이 온 것도 기뻤고, 공짜 코코아를 받아 마신 것도 기분이 좋았다. 화창한 날씨마저도 내 편 같았다.
배에서 내려, 섬에 발을 디뎠다. 슈퍼 앞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반겼다. 붙임성 좋은 놈이었다. 체격이 작고, 털이 보드라웠다. 어린놈이었다. 동물은 목걸이를 차고 있어서, 주인이 있는 것 같았다.
“똘이야, 따라가라! 육지로 데려가서 키우소.”
동네 할아버지가 말했다.
“안 돼요, 등산하러 왔단 말이에요! 못 데려가요. 매봉산 가려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우측으로 쭉 올라가세요.”
그의 말만 믿고 따랐으나, 이정표는 비렁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식당 아주머니가 제대로 가르쳐 줬다.
“항구에서 좌측이에요. 돌아가세요.”
“매봉산에 멧돼지 나와요. 조심해요!”
관광객인지, 마을 주민인지 신분을 알기 어려운 한 어르신이 곁에서 거들었다. 괜히 겁주는 것처럼 들렸다. 아직 멧돼지를 산속에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시 슈퍼로 되돌아왔다. 아까 그 어르신에게 물었다.
“매봉산 등산 안 해보셨죠?”
“이쪽으로 쭉 가면 돼요.”
“등산, 안 해보셨죠?!”
“네.”
“저한테 길 잘못 알려 주셨잖아요.”
“…….”
하마터면,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맬 뻔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속담이 있듯, 들머리를 잘 찾아야 고생을 면한다.
오전에 개도 봉화산 등산하느라, 고단했다. 어쩌면, 오후엔 혼자라서 기운이 없는지도 몰랐다. 동행이 있으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느라 지루할 틈이 없을 텐데, 보이는 건 오직 자연뿐이었다.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다.
‘설마 갑자기 멧돼지가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걱정스럽다…
….’
대나무숲을 지나며,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하늘 높이 장대처럼 솟은 대나무들이 음산한 기운을 자아내고 있었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눈이 시리도록 푸른 망망대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혼자 보기 아까운 경치였으나, 안타깝게도 곁에 아무도 없었다.
적막한 가운데 차디찬 해풍이 스며들었다. 옷깃을 여몄다. 유자 크림치즈 빵으로 허기를 달랬다. 아까 헤어진 동행이 남긴 초콜릿 우유를 꺼내 탈탈 털어 마셨다.
그가 뭍으로 잘 돌아갔는지 궁금했으나, 연락하지 않았다. 앞으로 다시 볼 일은 없을 상대였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길고도 지루한 산행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가려져 경치 감상은 불가능했지만,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홀로 기쁨을 만끽했다.
하산하니, 슈퍼가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식사를 제대로 못 해서 시장했다.
“컵라면 얼마예요?”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천오백 원인데, 먹고 가면 삼천 원이요.”
“네? 왜 더 비싸요?”
“김치가 나가니까요.”
여기까지 와서, 고작 컵라면이라니! 그런 건 평소에도 먹지 않는 음식이었다. 아까 본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식사 돼요?”
“밥이 없어서, 안 돼요.”
식당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그럼, 방풍 전은요?”
“그건 가능해요.”
방풍이 뭔지 처음 알았다. 검색하니, 약용 식물이었다.
“아가씨, 방풍 먹었으니 풍에 안 걸리고 장수할 거예요.”
아주머니가 덕담을 건넸다.
“아니에요. 장수 안 하고 적당히 살다 갈래요. 힘들어요!”
냉장고 안에는 방풍 막걸리가 있었다. 맛이 궁금했다.
“아가씨, 아까 매봉산 등산할 때 다른 등산객 만났어요?”
“아뇨, 처음부터 끝까지 저 혼자였어요. 왜요?”
“어떤 남자 한 명이 음식을 십만 원어치 주문하고, 맛만 보더군요. 하산하면 다시 올 거라면서요. 곧 폐점 시간인데.”
“그럼, 어떡해요?”
“일단 놔두고, 내일 다 버려야죠. 언제까지고 이 상태로 둘 순 없으니까요.”
“아깝네요. 음식 안 먹을 거면 남은 걸 나나 주지!”
“별 희한한 손님 많아요. 계산 안 했는데, 돈 냈다고 억지 부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어머, 세상에!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시시티브이 있는걸요.”
“돈 받으셨어요?”
“네. 시시티브이 확인하자고 했더니, 손님이 곧장 돈 내더라고요!”
문득, 허영만 화백의 그림이 눈에 띄었다.
“어? 허영만 화백 왔었어요?”
반갑고도, 놀랐다.
“네. 방송 출연하라고 제의는 들어왔는데, 거절했어요. 혼자 운영하는 곳이라서, 유명해지면 곤란해요. 힘들어요.”
식당에서 만난 손님들은 비렁길을 걷기 위해 숙박할 예정이라고 했다. 비렁길은 인증지가 아니라서 우선순위는 아니었으나, 아름답다고 익히 들었기에 적잖이 관심이 갔다.
“방풍 막걸리 맛 어때요?”
매표소 여직원에게 물으니, 그녀는 폭포수처럼 의견을 쏟아냈다. 결론인즉슨, 개도 막걸리가 훨씬 맛있다는 거였다.
“연예인들도 금오도 많이 와요. 쉬러.”
난생처음 맛본 방풍과 허영만 화백의 흔적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술에 별 흥미가 없어서, 그저 호기심만 간직한 채 금오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