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초도 상산봉과 시인

by 슈히

초도, 거문도는 고흥의 녹동항에서 가는 배가 있고, 손죽도는 여수 여객선 터미널에서 갈 수 있다고 해운사로부터 안내받았다. 고흥 녹동항의 평화 해운 직원이 말했다.

“평일에 가면, 주말 승선료의 반값이에요.”

“와, 그럼 꼭 평일에 가야겠네요! 그런데, 인터넷 예매가 안 되네요?”

“네, 현장 발권만 가능해요.”

지난 사월 이일 일요일, 배를 타기 위해 전날 고흥에서 하루 묵었다. 다음날인 월요일, 새벽 여섯 시 삼십 분경에 고흥 녹동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월요일은 해운사 휴무일이라고 했다. 허망했다. 귀가 후, 해운사에 전화해 직원에게 따졌다.

“승선료가 싸니까, 평일에 오라면서요? 그런데, 월요일에 휴무라는 걸 왜 안 알려 주셨어요?”

“안내를 안 해드려서, 죄송해요. 요금에 대해서만 물으시길래, 휴무를 미처 안내 못 드렸네요.”

“네, 그 말이면 돼요. 변명하실 필요는 없어요.”

“전화하신 이유가 뭐예요?”

“사과를 받으려고 전화했고, 사과를 받았으니 됐어요. 다음부터는 안내 잘해주세요. 저처럼 손해 보는 손님이 또 있으면 안 되잖아요.”

분하고, 억울하고, 속상하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시간과 돈과 노력이 아깝지만, 해운사에서 책임질 리 없다. 앞으로, 더 집요하게 문의하고, 치밀하게 계획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짬을 냈다. 사월 이십육일 수요일, 새벽 세 시에 출발했다. 졸음을 참으며, 장거리를 달렸다. 마침내 고흥 녹동항에 도착했다.

일곱 시에 출발하는 배인데, 조급했다. 그간 경험을 떠올리면, 출발 예정 시간보다 더 일찍 배가 출발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늘 미리 가서 대기해야, 아무래도 마음이 편안하다.

여수 초도에서 하루, 거문도에서도 하루 숙박할 예정이기에 짐이 꽤 많았다. 짐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짐을 챙기고 부랴부랴 뛰어 매표소로 가니, 대기 줄이 꽤 길었다.

발권 후, 화장실에 들렸다. 문득, 자동차 유리창에 덮개를 씌우지 않은 게 떠올랐다.

‘후다닥 덮개 씌우고, 뛰어서 배 타야겠다.’

대합실 좌석에 짐을 내려놓고, 주차장으로 달렸다. 그런데, 자동차 문이 열려있는 게 아닌가?

‘응? 아까 차 문을 아예 안 닫았어? 세상에, 미쳤네!’

하마터면, 승용차 운전석을 활짝 열어 놓고 섬에 갈 뻔했다. 꺼진 불도 다시 보라는 말이 있듯, 닫힌 문도 다시 확인해야만 한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마무리를 마치고 배에 올랐다.

“아직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하셔도 돼요.”

검표 직원이 친절한 말 한마디를 건넸으나, 그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통 없었다.

날씨는 화창했다. 배는 순조롭게 출항했고, 약 두 시간 후에 초도 대동 선착장에 닿았다. 민박집 위치를 몰라서, 행인을 붙잡고 물어봐야 할 판이었다.

“두산 민박에 묵는 손님, 맞지요?”

누군가 말을 건넸다. 육십 대로 보이는 노신사였다. 키가 상당히 컸다.

“네, 맞아요!”

“마을 이장입니다. 마중 왔어요. 데려다줄게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고맙습니다.”

알고 보니, 민박집은 선착장에서 바로 코 앞이었고,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등산하러 떠났다. 친절한 이장님이 이번에도 몸소 바래다주었다. 그는 시인이라고 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김진수요.”

상산봉에 오르니, 바다가 보이는 곳에 이장님의 시가 있었다.


초도에 가면

김진수

가슴에 별이 진 사람 초도로 가라

여수항 뱃길로 48마일

삼산호, 신라호, 덕일호 훼리호,

순풍호, 데모크라시, 줄리아나 오가고

뱃길 빨라질수록 발길은 멀어져도

해초처럼 설레는 낭만은 있다

이슬아침 소바탕길로 상산봉에 오르면

낮고 낮은 햇살에도 퍼덕이는 금비늘

희망은 가슴 터질 듯 수평선에 이르고

달빛 수줍은 갯바탕길을 따라

은하수 시거리가 이야기꽃 피우는

초도, 그 풀섬에 가면

아직도 총총한 별들이 뜬다


하산 후, 숙소 식당에서 이장님과 재회했다.

“정상에 이장님 시 있던데요! 그 너머로는 바다가 보이고요.”

“그 시의 핵심은 첫 연이죠. ‘가슴에 별이 진 사람 초도로 가라’. 초도가 고향입니다. 섬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노인들은 그저 살다 가면 그만이지만,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둘레길도 곧 만들 거예요.”

이장님의 두 딸은 결혼해서 여수에서 살고, 막내아들은 미혼이라고 했다.

“아드님이 이장님 닮았으면, 키가 훤칠하겠네요.”

“안 그래요. 뚱뚱해요.”

대화하던 중, 이장님이 칭찬했다.

“이런 말을 하면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가씨 개방적인 성격이 딱 내 이상형이에요!”

“개방적이라는 말, 최근 들어서 많이 들어요. 의외로 보수적인 면도 있어요.”

“우리 딸들한테도 내가 늘 그렇게 가르쳐요. 남자한테 의지하지 말아라. 스스로 자립해라!”

“그럼요. 여자가 남자한테 기대면, 남자들도 심히 부담스러워해요.”

이장님과 함께하는 식사라서 그런지, 진수성찬이었다. 전라도 밥상답게, 상다리 부러지게 반찬이 풍성했다. 주인아주머니와도 대화를 나눴습니다. 순천 출신이라고 했다.

‘역시나, 가는 곳마다 순천인이로군!’

잠시, 순천의 누군가를 생각했다. 여수에서 순천은 지척이다.

청포도 막걸리가 있길래, 맛이 궁금해서 맛보았다. 주인아주머니가 인심 좋게 한 사발 가득 부어주었다. 향긋했다.

이장님이 운전하는 트럭을 얻어 타고, 대풍 해수욕장을 둘러봤다.

“여름에 여기서 해수욕하는 사람들 많아요.”

“육지인들이 피서 오나요?”

“아뇨, 마을 사람들이요.”

초도는 대동, 의성, 진막 세 개의 마을이 모여 있다고 들었다. 이장님과 점방 앞에서 헤어졌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베어 물고, 숙소까지 걸어왔다.

별이 지고, 뜨는 것에 대해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이 바쁘게 하루하루 살고 있었다. 초도에 와서 시 한 편을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 가슴에는 과연 어떤 별이 몇 개 떠 있나,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막연하지만, 아직 별이 꽤 여러 개 반짝이는 것 같다. 만약 별이 다 지고 없다면, 누군가 이렇게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갈망할 리는 없으니까. 다행히, 감성만은 초도의 풀처럼 무성하고 싱그럽다.

방으로 돌아와, 책을 폈다. 법정 스님의 수필을 읽었다. 썰물처럼 졸음이 몰려오자, 스르륵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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