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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an 13. 2024

NO BRAND에서 생긴 일(4)

NO BRAND NO MANNER

  그녀는 예전에 바나나를 살 때, 몇 마디 나눈 적이 있던 사람이었다.

  "스미후루 바나나, 일제죠? 안 사요!"

  "아뇨, 필리핀산이에요."

  "아, 그래요? 저렴하네요. 애용해야겠다."

  현재까지 파악한 바, 노 브랜드 문지점에는 여직원이 둘 있는 모양이었다. 문제의 여직원은 검은 파마 머리카락에 깡마르고, 마스크로 늘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피면, 눈 밑 피부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였다. 여태 대화한 결과에 따르면, 그녀는 그다지 붙임성이 좋은 편은 못 됐다.

  반면, 다른 한 명은 긴 갈색 머리카락을 단정히 하나로 묶고, 안경을 썼으며 비교적 싹싹한 편이었다. 덕분에 몸매도 후덕하게 느껴졌다. 통통한 여직원은 진열대에서 상품을 정돈하는 중이었다. 매장을 훑다가,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멸치 어디 있어요?"

그러자, 그녀는 멸치가 있는 곳까지 직접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껏 본 다른 직원들과 굉장히 다른 태도였다. 멸치는 양이 많았고, 그래서 비쌌다. 소량이 필요한데, 과분했다.

  '다른 데서 사야겠다. 불필요하게 많이 살 필요는 없으니까.'

  여직원에게 매니저에 대해 이야기했다.

  "며칠 전에 굴이 필요해서 여기 왔는데, 매니저님이 계산대에 계시더라고요. 굴 어디 있냐고 제가 물었는데, 그분은 제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으셨어요. 휴대전화 보느라 정신없으시던데요. 건성으로 저기 있다고 손짓만 하셨어요. 그분과 태도가 매우 달라서, 제가 놀랐네요. 여기서 제일 정상이신 분 같아요! 이게 정상인 거, 맞죠?"

  사건과 무관한 사람을 붙잡고, 애초에 남 험담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통통한 여직원의 친절한 응대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샐러드, 바나나, 우유를 계산했다. 10,850원이었다. 다행히, 매장에 손님은 적었다. 그녀에게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매니저님과는 태도가 매우 다르셔서, 놀랐어요! 어쩜, 매니저라는 사람이 태도가 그렇게 안일해요? 매니저랑 점장 갈아치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수 사원은 여기 따로 있는데!"

  "...... 혹시, 팥 사러 오신 분이세요?"

  "네, 맞아요! 제 얘기 들으셨어요?"

  "...... 네."

  "점장님 성함이 이OO 맞죠?"

  "아뇨, 안 씨예요."

  "아, 그렇군요. 계약직 여직원은 언제 퇴사해요?"

  "아마, 3월일 거예요."

  "나, 참! 아직 멀었잖아요!"


  다음날, 수요일 밤이었다. 21시경에 남자 친구와 함께 매장을 찾았다. 마른 여직원이 근무 중이었다.

  '드디어 만났군!'

오리엔탈 샐러드 소스를 한 통 집어 들었다.

  "연어나, 장어는?"

남자 친구가 물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다음에."

  마른 여직원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녀에게 물었다.

  "근무 중이라서요."

대화를 원치 않는 눈치였다.

  "기다릴게요."

  구석에 서있는 안 점장의 존재가 눈에 띄었다. 그는 이번에는 저지하지 않았다. 손님들이 분주히 드나들었고, 잠시 소강상태를 맞았다. 여직원에게 다가가, 벽면에 붙은 간판의 문장을 한 줄 읽었다.

  "'소비자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가 노 브랜드의 정신이군요! 손님이, '팥 언제 들어와요?'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죠?"

  "지난번 일은 죄송한데요......"

그녀는 억울한 듯이 변명하려 들었다. 거기서, 잽싸게 말을 받고 끊었다.

  "그거면, 됐어요! 점장님? 저는 사과를 강요하지 않았어요. 방금, 이분이 저한테 사과한 거 들으셨죠?"

안 점장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는데, 3월에 퇴사하신다면서요? 점장님이 사과 강요하지 말라고 하셔서, 저 지난번에 매장 왔는데 사과 못 받고 그냥 집에 갔어요. 그거, 아세요?"

  마른 여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자기들끼리 별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 모양이었다. 점장이 껴들었다.

  "강요하지 말라고요!"

  "강요하지 않았어요! 사과받았으니, 됐잖아요! 본인한테 사과받으면 끝날 일인데, 왜 일을 자꾸 크게 만들어요? 사과하는 게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어렵지 않은 건데 왜 부하 직원을 감싸기만 해요?"

  안 점장은 자신이 뱉은 말도 부인했다.

  "제가 언제 그랬어요!"

대화가 안 통했다. 상대하기 지쳐서, 남자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남자 친구도 그날 곁에 있었기에, 안 점장이 내게 여직원에게 사과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을 함께 들었다.

  "저도 옆에서 들었어요. 점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안 점장의 눈에서 광기가 일었다. 지난번에 본 겁먹은 눈빛과는 사뭇 달랐다. 돌변한 모습이 꺼림칙했다.

  '정신 이상자인가? 자기가 한 말을 왜 기억 못 해?'

  필요한 물품도 구매했고, 본인에게 사과도 받았으니 매장에서 죽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여직원에게 인사하고, 매장을 빠져나왔다.

  "수고하세요!"


    남자 친구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말했다.

  "난 얼굴이 알려졌으니, 여기 못 오겠네. 이마트나 가야겠다."

  "이마트는 멀잖아. 뭐 하러 그래,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랑 같이 살면, 이마트 가서 장 볼 텐데."

  "...... 뭐야, 그 흑심은?"

  "아, 말이 헛나왔어."

  "...... 본심 같은데."


  이제, 다음엔 매니저를 만날 차례이다. 연락 주겠다던 약속을 왜 어겼는지, 본인 연락처를 동의 없이 소비자 보호원에 알린 것에 대해 따지고 드는 게 맞는 응대인지에 대해서 이번엔 내가 따질 순번이다. 이틀 뒤인 금요일, 일부러 오후에 매장에 갔다. 매니저가 있을 만한 시간대라고 생각해서였다.

  계산대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매니저님 계세요?"

  "식사하러 나가셨어요."

  "아, 그래요? 몇 시에 오실까요?"

  "제가 시계를 못 보거든요."

  "...... 네?"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시계를 못 본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이지?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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