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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an 15. 2024

[완결] NO BRAND에서 생긴 일(5)

  청년이 말한 '시계를 못 본다'는 의미는 다음 세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첫째, 계산대 포스기(Point of Sales, 판매시점 정보관리)에 시계가 없다. 하지만, 상점 포스기에 시계가 없을 리 만무했다. 시간이 곧 돈이니 말이다. 둘째, 사내의 시력은 정상이나, 시계를 보는 방법을 미처 깨우치지 못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초등학교부터 다시 다녀야만 할 것이다. 셋째, 주말 파트 타이머는 시각 장애인이이다. 그러나 그와 대화할 때 눈을 마주친 결과, 결코 장애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그가 '시계를 못 본다'라고 한 것은 명백히 거짓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비협조적인 아르바이트생의 태도에 대해 더 따질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용건은 매니저를 만나는 것이지, 시답잖은 알바생의 말도 안 되는 태도를 따지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자 근무하세요?"

  안 되겠다, 싶어 다른 사람을 찾기로 했다.

  "근무자 한 명 더 있어요."

다행히, 맹추는 순순히 대답했다.

  "어디 있어요?"

  "밖이요."

  입구를 바라보자, 안경을 쓴 똥똥한 남자가 한 명 보였다. 그는 빈 상자를 정리 중이었다.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매니저님, 언제 오세요?"

  "식사하러 나가셨어요."

  "지금 오후 4시 다 돼가는데, 점심을 지금 먹어요?"

  "식사 시간이 따로 없어요. 곧 오실 거예요."

  계산대 알바보다 이 사람의 인성이 비교적 나은 듯했다. 그간 겪은 사연들을 속사포처럼 털어놓았다.

  "아, 팥 이야기 알아요."

  "그래요? 직원들끼리 서로 대화는 하는 모양이군요. 다행이네요! 하지만, 그분들 유리한 식으로 말했겠죠? 본인들 잘못은 쏙 빼놓고?"

  매장 실내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는데, 이윽고 안 점장이 등장했다.

  "매니저님은 어디 계세요?"

  "휴가 가셨어요."

  "언제 출근하세요?"

  "다음 주 월요일이요."

  "몇 시에 오면, 매니저님 뵐 수 있을까요?"

  "그건 알려드릴 수 없어요."

  "네? 왜요? 저 이 동네 안 살아서, 자주 못 와요."

  "매니저님도 이 동네 안 사세요!"

  "매니저님은 여기가 직장이잖아요."

  "경찰 부를 거예요!"

  "네? 경찰을 왜 불러요?"

  점장의 태도는 가관이었다. 대화가 아니라, 벽을 보고 혼잣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병자인가? 답답하네!'

오만방자한 그의 태도에 맞서기 위해 이마트 충청 관리자 이OO에게 전화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다음으로, 이마트 고객센터로 전화했다. 다행히, 상담원과 연결됐다. 



  상담원: 내용 전달은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고객님.

  슈히: 바로 연락을 주시나요? 아니면, 제가 방문해야 할까요?

  상담원: 직원의 근태까지는 확인할 수가 없어요.

  슈히: 지금 경찰들이 오셨네요. 아무튼, 매니저님께 연락 달라고 전해주세요.

  상담원: 내용 전달은 해보겠습니다.

  슈히: 고맙습니다.



  남자 경찰 두 명이 출동했다. 한 명은 백발이었고, 다른 한 명은 검은 머리였다. 자초지종을 대강 설명하고, 매니저와 주고받은 문자를 보여줬다.

  "매니저가 연락 주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연락이 아예 없었어요. 답답해서 소비자 보호원에 중재를 요청했더니, 본인 연락처를 동의 없이 남에게 알렸다고 매니저가 따지네요. 연락하지도 말라고 하고요. 어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래서, 매장으로 매니저 만나러 온 거예요. 근데, 매니저가 휴가 갔대요. 안 점장한테 매니저의 출근일과 근무시간 물었더니, 알려줄 수 없다면서 경찰에 신고했어요! 이게 맞는 처사인가요?"

  "네, 상황 이해했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셔요."

  "네, 경찰 말 들어야죠. 월요일까지 연락을 기다려 봐야죠."

  매장을 벗어났다. 금요일 오후, 햇살이 따사로웠다.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맞은편에서 경찰들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곧 모습을 감췄다. 집에 도착해 도룡동 지구대에 전화했다.


  슈히: 아까 저랑 만나셨잖아요. 마스크 쓴 여자.

  경찰: 예예.

  슈히: 어떻게 됐어요?

  경찰: 마찬가지로 얘기했어요. 현재 민원 접수 중이고, 본사에서 매니저와 통화 후 답변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점장이)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슈히: 오, 그걸로 끝이에요?

  경찰: 점장 인적사항도 적어 왔어요.

  슈히: 그럼, 사건 종결이에요?

  경찰: 네. 현장에서 종결한 거예요. 특별한 내용 없잖아요.

  슈히: 아니, 영업 방해가 아니잖아요.

  경찰: 그건 우리가 판단할 게 아니에요. 영업 방해라는 생각이 들면, 경찰서 민원실 가서 CCTV 증거 자료 제출하고 상담을 받으라고 했어요.

  슈히: 굉장히 우습게 됐네요. 점장한테도 사과받을 일이 하나 더 늘었네요.

  경찰: 아무튼, 본사 연락 기다려 보세요.

  슈히: 알겠습니다.

  경찰: 저희가 관여할 일은 아닌 거 같고......

  슈히: 그러니까요. 황당해요!

  경찰: 그래요. 알겠습니다.

  슈히: 수고하세요.


  다행히, 경찰은 정상인이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문의하니, 상담사는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고 했다. 누가 봐도 그랬다. 안 점장의 정신세계가 의심스러웠다.

  '본인이 사과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왜 자꾸 일을 크게 만들지? 학창 시절도 알 만하다. 왕따 아냐?'

  문득, 노 브랜드에서 근무하는 동창이 한 명 떠올랐다.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슈히: 지금도 노 브랜드에서 근무해?


답장은 바로 왔다.


  동창: 아니.

  슈히: 이거 읽고, 의견 들려줘.


작업물을 그에게 공유했다. 약 15분 후, 그가 물었다.


  동창: 다음 화는 어딨어?

  슈히: 안 보여? 목록에 다음 화 있어.

  동창: 아, 찾았다. 지금 근무 중이라, 바빠서. 일단 다 볼게.

  

  그는 바쁜 것치곤, 응답이 빨랐다.


  동창: 다 봤다, 재밌네! 5화 나오면 알려줘.

  슈히: 응, 5화는 작업 중!

  동창: 점장, 매니저 누군지 알 것 같은데. 초반 대처를 잘못하신 거 같네.

  슈히: 아는 사이야? 또라이던데!

  동창: 이름만 알아. 매니저 밑에 직원은 OO일 텐데.

  슈히: 몰라.

  동창: 문지점, 오랜만에 보네. 개점할 때 지원 몇 번 갔거든.

  슈히: 점장이 나 경찰에 신고함.

  동창: 점장, 다른 지점으로 발령 나는 거 아니야?

  슈히: 제발 발령 가면 좋겠다. 꼴 보기 싫어!

  동창: 문지점 자주 가?

  슈히: 응. 문지동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동하거든. 운동가는 김에 겸사겸사 문지점에도 들려.



  오래전에 본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출처는 불분명하다. 

  "나쁜 고객은 불만 신고하는 고객이 아니라, 영업장을 다시 찾지 않는 고객입니다. 불만을 표현하고 개선하도록 하는 고객은 오히려 좋은 고객이죠."

  이 문장대로라면, 나는 좋은 고객이다. 하지만, 곧 나쁜 고객이 될 참이다. 제품이 아무리 우수하고 저렴하더라도, 마주치는 근무자들이 꼴사나운데 누가 가고 싶겠는가? 앞으로 노 브랜드 문지점을 두 번 다시 찾지 않을 예정이다. 노 브랜드 문지점은 충성 고객 한 명을 잃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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