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인 J와 즉흥적인 P의 베트남 여행(4)

드디어, 베트남 호치민 도착!

by 슈히

비행기 창가 좌석에 앉아 한국의 야경을 보며 이륙했다. 눈을 감았다, 떴다. 잠을 충분히 자고 났으니, 독서할 차례였다. 준비한 책 한 권을 단숨에 읽었다. '늙기 싫다면 운동하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귀남 오빠에게 구절을 공유하자, 그는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냐?'며 거부 반응을 보였다.

여전히 비행 중이었다. 간간이 창문을 열어 하늘과 구름, 그리고 바다를 관찰했다. 흰 구름들이 빼곡히 군집한 모습은 마치 우유 아이스크림처럼 먹음직스러웠다. 바다에는 얼룩처럼 두둥실 떠있었다. 뽀글이 점퍼처럼 보였다. 자외선이 워낙 강렬해서, 곧 창문을 닫고 말았다.

뒷좌석 옆 옆 자리에 앉은 귀남 오빠는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이마에 내 천(川) 자가 그려진 걸 보니, 심각한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었다. 안타까웠다. 그 모습을 몰래 촬영했다. 그의 두툼한 턱살은 접혀 있었다.

본래 내 옆자리에 앉기로 한 다랑의 부재 탓에, 옆 옆자리의 남자 승객과 몇 마디 주고받게 됐다. 그는 작년 가을에 친구들과 호치민으로 여행 온 적이 있었는데, 재방문하는 참이었다.

"그럼, 몇 분이서 오셨어요?"

"아, 이번엔 저 혼자 왔어요."

"왜요?"

"친구들이 시간 내기 어렵다고 해서요. 혼자서라도 오고 싶어서, 항공권, 숙소만 예약하고 무작정 왔어요."

"이미 한번 왔던 곳인데, 또요?"

"호치민이 좋아서요. 좋아서 왔어요."

어떤 점이 좋은지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고, 그 역시 부연 설명하지 않았다. 호치민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겠거니, 하고 막연히 생각할 따름이었다.

승무원들이 음료를 실은 수레를 밀고 좁은 통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음료는 무료인가요?"

혹시나 싶어, 줄곧 대화하던 안경 쓴 남자에게 질문했다.

"아뇨, 유료예요."

그가 귀띔했다. 국제선 탑승 시 액체는 기내 반입 금지이기 때문에, 생수를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갈증이 나서, 괴로웠다.

'저가 항공이라서 그런지, 무료가 아니군. 아, 목이 마르지만 견뎌야지! 돈 아껴야지.'

예정보다 일찍 착륙했다. 베트남과 한국의 시차는 2시간, 베트남에 도착하니 10시 30분경이었다. 기내 화장실에서 두꺼운 겨울옷을 벗고 얇은 여름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했다. 호치민 탄손누트 공항에서 머무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승무원이 좌석에 앉은 채로 본인의 다리 한쪽을 들어 저지했다. 순간, 기분이 언짢았지만 좋은 말로 허락을 구했다.

"Can I change my clothes in the lavatory?(화장실에서 옷 갈아입어도 될까요?)"

"No!(안 돼요!)"

그녀의 태도는 단호했다. 얄미웠다. 이유를 묻고 싶었으나, 그런다고 해서 통과시켜 줄 것 같지 않았다. 난감했지만, 순순히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귀남 오빠에게 USIM 카드를 교체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따 공항에서 하자. 우리, 비행기에서 내리잖아."

"우린 뒷자리라서 내리려면 한참 기다려야 돼요. 그동안 교체하면 되죠."

그는 알겠다며, 휴대전화를 살폈다.

"여긴가? 아닌데...... 그럼, 여기?"

"아니, 그건 SD 카드예요."

그 와중에 뒷문이 열렸다. 뒷좌석 승객들이 하나둘씩 하차하기 시작했다. 마침 통로에 서있던 터라, 예상보다 빨리 내릴 수 있었다. 눈부신 햇살을 맞닥뜨리니, 베트남에 온 것이 실감 났다. 더웠다. 모자와 선글라스가 절실했다. 모두 캐리어에 있었다. 짐을 풀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꺼낼까, 말까 내내 고민했다.

출구에 혼자 서있자, 승객들이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민망했지만, 인내심을 지니고 잠자코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귀남 오빠는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승객들은 모조리 내린 모양이었다. 단발머리의 승무원이 출구로 나와 말했다. 아까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막았던 밉상이었다.

"Are you a member of the man's group? A man spilled something on the floor and is looking for it. However, he couldn't find the lost item. You just have to go.(남자 승객과 일행이신가요? 그는 바닥에 뭔가 떨어져서, 분실물을 찾는 중이에요. 그렇지만, 못 찾았어요. 이제 나가셔야만 해요.)"

귀남 오빠가 늦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까닭은 바로 USIM을 분실했기 때문이었다. 승객들이 하차하느라 번잡한 통에, 그만 실수로 바닥에 USIM을 떨군 모양이었다. USIM을 찾기 위해 기내로 들어가려 하자, 승무원은 또다시 가로막았다.

"You can't come in. I will find the lost item and leave it at the airport later.(들어오시면 안 돼요. 제가 분실물을 찾아서, 나중에 공항에 맡길게요.)"

답답했다. 분실물이 뭔지도 모르고, 외형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그 작은 물체를 대체 무슨 수로 찾는다는 말인가? 게다가, 애초에 그 물건은 내 것도 아니었다. 다랑이 본인 대신 쓰라며, 준 것이었다.

"로밍하면, 인터넷 속도가 느리거든. USIM이 꼭 필요해."

"호텔에선 와이파이 될 거 아니야? 난 USIM 없어도 되겠다. 귀남 오빠랑 네가 정보 검색하면 충분할 테니까."

발을 동동 굴렀으나, 서둘러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모든 승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처했다. 비행기에서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다시 버스에 탑승했다. 승객들의 옷차림은 각양각색이었다. 여름옷을 걸친 사람도 있었으나, 겨울옷을 걸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로 마주 보며 즐겁게 대화 중인 젊은 남녀 한 쌍이 보였다. 여자는 안경을 쓰고 평범해 보였는데 반해, 남자의 얼굴에선 반항기가 다소 느껴졌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으나, 분위기로 봐선 연인인 듯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자, 인천 공항에 홀로 남겨진 다랑의 안부가 궁금했다.

'지금쯤, 혼자 뭐 하고 있으려나? 불쌍한 것!'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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