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고의 노력
비 오는 3월, 목요일 13시가 막 지났다. 전국 노래자랑 예심이 열린 날이었다. 예심 장소에 도착하니, 주차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선거 후보 관계자들이 우산을 쓰고, 입구에서 유세 중이었다. 그중 한 남자가 주먹을 불끈 쥐며, 나를 향해 응원을 보냈다. 공연복을 입고, 무대 화장을 진하게 한 내 모습을 보고 참가자임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나 역시, 그에게 같은 몸짓을 지으며 인사했다.
참가 번호를 확인하니, 299팀 중 103번이었다. 예심이 끝날 무렵에는 현장 접수자가 추가돼 총 320팀이었다.
'작년에 동구 편 예심은 토요일이었고 500팀이었는데, 아무래도 대덕구 인구가 비교적 적은 모양이로군. 혹시 평일 예심이라서,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은 건가?'
강당에 들어서자, 부채를 들고 이정현의 <와>를 부르는 여자 참가자가 보였다. 어디서 산 건지, 의상도 그럴듯했다. 관객의 호응도 있는 듯했고, 그녀의 노래 솜씨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PD의 선택은 완강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불합격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그럼, 그렇지! 휴, 합격의 기준이 너무 높단 말이야......'
다랑은 주차하느라, 한참 후에야 강당에 도착했다. 일단 휴게실로 이동해 식사부터 했다. 집에서 식사할 여유가 없어서, 음식을 싸왔다. 초밥, 샐러드, 과일 등이었다. 배를 적당히 채운 후, 인적이 드문 곳에서 연습했다.
"그대는 내 운명."
"당신도 내 운명!"
남진과 장윤정이 부른 <당신이 좋아>라는 곡이었다. 이번 노래자랑을 준비하며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2012년 발표곡이었다.
"오, 노래 좋다! 가사, 가락 모두 맘에 들어.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곡이야? 난 처음 들어."
다랑에게 물었다.
"아버지 컬러링."
2주 전, 전국 노래자랑 예심 소식을 우연히 알았다. 다랑에게 참가 의향을 물으니,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과거에 홀로 4번이나 도전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번만은 성공하고 싶어서, 골몰했다.
'노래자랑이지만, 단지 노래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니야. 음, 뭐가 좋을까? 우리를 돋보이게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다랑과 서는 무대이니, 그와 어울릴 만한 특별한 무언가를 준비해야만 했다. 마침, 우리는 아르헨티나 탱고를 함께 배우고 있었다. 시작한 지 고작 3개월 차였다. 선생님들의 정규 수업 외 별도의 지도를 받아 연습실에서 안무를 익혔다.
전주에서 차카렐라, 간주에서 히로를 췄다. 굽 높은 탱고화를 신고 움직이려니, 익숙하지 않아서 휘청거렸다. 발과 종아리가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 초보라서, 서툴렀다.
"힐 신고 춤추는 게, 아직 능숙할 단계는 아니지. 나 역시, 힘든데!"
아테네 선생님이 말했다. 심지어 그리스 선생님은 노래 지도도 했다.
"내가 왜 노래 지도까지 해야 돼?"
그가 투덜거리자, 아테네 선생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거 좋아하시잖아요!"
연습은 화요일마다 2회, 늦은 밤에 마쳤다.
다랑과 자주 만나서, 틈틈이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 노래자랑이니, 노래가 우선순위였다.
"가사 절대 틀리면 안 돼! 1절에선 '이 세상에 그 무엇도'이고, 2절에선 '하늘 아래 누가 와도'야. 가사 자꾸 틀려. 정신 바짝 차려!"
다랑에게 조언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웃어! 사랑 노래잖아, 웃어야 해. 그리고, 혹시라도 실수해도 안 틀린 척 자연스레 넘어가. 알았지?"
무대에 선 경험이 별로 없는 다랑에겐 첫 노래자랑 도전이었다. 반면, 나는 다섯 번째 시도였다.
그간 노래자랑 예심에 임하며 분석한 결과, 줄곧 실패한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합격자들은 개성과 재미, 볼거리를 겸비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불합격자들 중에서도 노래 실력이 출중한 이는 꽤 있었기 때문에, PD의 기준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합격 여부는 PD의 취향과 마음에 달린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