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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Mar 17. 2024

[완결] 매화가 준 행운(하)

얼음 위 아마추어 대회

  순간 다랑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하고 생각했단다. 그는 부모님과 마주칠까 봐 줄곧 조마조마했는데, 드디어 맞닥뜨린 것이었다. 다랑의 어머니가 반색하며 말했다.

  "처음엔 모르는 척할까 했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아는 척했지!"

그녀는 짧은 파마머리에 안경을 쓰고, 통통했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인상이었다. 

  다랑의 아버지도 가까이 다가왔다. 신장 193cm인 다랑에 비해 아버지는 165cm의 단신이었다. 아버지와 전혀 닮지 않은 아들 다랑은 돌연변이인 셈이었다. 다랑은 어릴 적에 1000ml 우유를 매일 마시고,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선천적 요인을 후천적 요인이 뛰어넘은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남자 친구의 부모님에게 인사했다. 초면이었다. 며칠 후, 다랑을 만났을 때 그가 말했다.

  "누나 사진 부모님한테 여자 친구라고 보여드린 적 있거든. 누나 실물이 훨씬 예쁘다고 하시더라."

  "그런 말은 실제로 만났을 때 해주시지!"

  다랑의 부모님은 단체 관광으로 버스를 타고 광양 매화 축제에 왔고, 다음 목적지는 구례 산수유 축제라고 했다. 우리는 곧 작별했다.

  13시부터 시작하는 얼음 위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가는 길에 떡볶이와 순대를 먹었다.

  "고작 이거 먹고, 대회에서 버틸 수 있겠어?"

  다랑의 근심 어린 목소리였다.

  "20분 이하만 버티면 되는 거잖아. 신청서에 그렇게 쓰여 있던데. 날씨가 온화해서, 다행이야."

  화장실에 들리기 위해 문학관에 들어갔다. 1층 화장실은 만원이었다.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순 없기에,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광양시의 캐릭터 매돌이에 대한 설명이 보였다. 매돌이는 2010년생인데, 영원한 10살이라고 했다.

  그곳 화장실은 아래층과 대조적이었다. 매우 한산했다. 공연자들로 미루어 짐작되는 여자들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인조 속눈썹과 채도 높은 분홍색 상의가 인상적이었다.

  서둘러 공연장으로 향했다. 얼음 위 아마추어 대회가 진행 중이었다. 우리의 순번은 4, 5번이었는데, 차례가 이미 지난 후였다. 19, 20번으로 참석하라고 안내받았다. 참가자는 선착순 총 20명이었다. 좌석에 앉아 대회를 관람했다.

  손수건을 깐 얼음 위에 도전자들 4명이 맨발로 서서 고통을 인내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여자 초등학생이 2명이나 있었고, 어르신들도 꽤 있었다. 중도 포기하고 하차한 연약한 도전자들도 있었다. 우리는 식사하느라 대회 참석에 늦었으나, 지각한 게 오히려 신의 한 수였다. 13시를 넘어 14시가 가까울수록 한낮의 기온은 상승했고, 덕분에 얼음의 냉기를 견딜 수 있었다.

  마침내, 우리의 이름이 호명됐다. 다랑을 이끌어 무대 앞으로 나가자, 집채 만한 덤불을 머리에 인 남자 사회자가 질문했다.

  "두 분이 어떤 관계이십니까?"

  "남자 친구요."

  "오, 연인이시군요! 아름다운 도전, 기대됩니다."

  아프로 머리의 사회자는 이국적인 외모와는 달리 목소리가 차분하고 부드러워서, 듣기 좋았다. 19번으로 무대에 올랐고, 다랑은 마지막 순번이었다. 이전 참석자들의 체온 덕분에 얼음은 움푹 파여 있었고, 물이 고여 있었다.

  공교롭게도 중앙에 그와 나란히 섰다. 우리는 손을 잡고 하트를 그리며, 다정한 모습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주최 측의 배려 덕분이었다.

  한편, 대회 무대 옆 공연 무대에서는 합창단원들의 리허설이 열렸다. 남자 가수들은 검은색, 여자 가수들의 옷은 분홍색이었다. 공연복을 보니, 아까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던 여자들이 입은 옷과 동일했다.

  '그 여자들이 저 중에 있겠군!' 

가수들의 노랫소리를 감상하며, 얼음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얼음의 한기로 인한 괴로움과 정지 자세에서 느끼는 따분함을 이겨낼 수 있었다. 

  20분의 길고도 짧은 시간을 견디며, 지구 온난화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대회를 개최하고, 대중이 참석하는 과정에서 환경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할 있게끔 하는 대회의 취지인 듯했다. 국제 환경 운동가 조승환에 대해서도 검색하게 계기가 됐다.

  '약 5시간을 맨발로 빙하 위에서 견디다니! 대단하긴 하지만, 누가 상을 주는 건 아닐 텐데...... 휴, 너무 고통스러웠겠다!'

  사회자가 소리쳤다.

  "5, 4, 3, 2, 1!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내려오십시오! 와, 대단합니다!"

양말과 신발을 들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마지막 도전자인 다랑의 독무대였다. 사회자가 다랑의 이름을 부르며 격려했는데, 나중에 그의 소감을 들으니 다소 창피했나 보다.

  어느덧, 다랑도 지상으로 내려왔다. 사회자가 상품권 추첨을 알렸다.

  "오늘 20분 이상의 기록을 보유한 도전자 중, 오직 한 분에게만 10만 원 상품권을 드립니다. 자, 과연 누가 될까요?"

  무대 옆 한편에 앉아 젖은 발을 닦고, 양말과 신발을 신던 찰나였다. 장난 삼아 외쳤다.

  "슈히요!"

그러자, 거짓말처럼 사회자가 회답했다.

  "놀랍습니다! 당첨자는 슈히 씨입니다!"

  "와아!"

  환희에 차 무대 앞으로 뛰어 나갔다.

  "지금 소감이 어떠십니까?"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광양시! 광양시 홍보 대사 슈히입니다!"

  매돌이 인형과 김부각도 받았다. 매화나무 아래에서 다랑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행운의 기쁨을 만끽했다. 상품권은 광양 지역 화폐였고, 오직 광양시내에서만 사용 가능했다. 석식으로 광양 불고기를 먹고, 후식까지 먹으니 배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상품권 10만 원을 남김없이 탈탈 털었다.

  화창한 봄 날씨와 아름다운 경치, 그리고 상품권 당첨! 모든 것은 매화 축제에서 만난 매화가 준 유쾌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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