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히 Mar 16. 2024

매화가 준 행운(중)

달콤한 매실 아이스크림

  천막 앞을 지나려니, 단발머리의 관계자 한 명이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거기 두 분! 맨발 걷기에 참가하실래요? 참가자 전원에게 손수건 드려요!"

그나마 참가자 모두에게 손수건을 증정한다니, 밑져야 본전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길은 정비가 잘 안 돼있었다.

  "혹시 발 다칠까 봐, 걱정돼서요......"

  "에이, 안 다쳐요!"

  "......" 

  아주머니 관계자는 열심히 홍보했지만, 참가하려는 이는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낮은 기온 탓인 듯했다. 어려울 건 없다는 생각에, 허리를 굽혔다.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 검은 비닐봉지에 넣었다. 발걸음을 막 떼려는데, 살가운 관계자가 기념사진을 촬영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다랑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은 후, 그와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맨발로 걸으려니, 곧 후회가 밀려왔다.

  '악! 이런 길을 맨발로 걸으라니, 적어도 자갈은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난의 시간을 겪는데, 길 건너 맞은편에서 예수 그리스도 복장을 한 남자와 그를 따르는 여인들이 보였다.

  "엥? 저건 또 뭐야? 연극도 해?"

  놀라서 다랑에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선교하려고 온 것 같은데."

  산타 복장의 사내도 있었다. 그는 트럭에 뻥튀기를 한가득 싣고 장사 중이었다.

  "성탄절은 한참 전에 지났는데, 왜 산타복을 입었을까?"

이번에도 다랑이 설명했다.

  "아무래도, 애들이 산타를 좋아하니까."

  "......"

  마침내, 맨발 걷기 구간이 모두 끝났다. 오염된 발을 씻기 위해 세숫대야에 발을 담그자, 그만 몸서리치고 말았다.

  "앗, 차가워! 으으, 이따 얼음 위에서 과연 오래 버틸 수 있을까?"

  "그러게. 누나, 몸도 안 좋은데 무리하는 거 아니야?"

  "금반지 준다잖아. 도전해 보는 거지!"

  13시부터 14시까지 얼음 위 아마추어 대회가 곧 있을 예정이었다. 참가 희망자는 미리 접수해야 된다고 들었다.

  다랑이 광양 매화 축제의 입장권을 2장 샀다. 인당 무려 5천 원이었다.

  "아따, 광양시 돈 많이 벌겠네!"

  "입장권을 현금처럼 쓸 수 있어. 결국, 공짜인 셈이지."

  "오, 그래? 음식 사 먹자!"

  빼곡히 늘어선 천막을 지나 화장실에 가려는데, 끝없이 긴 줄이 있었다. 관광객에게 질문했다.

  "무슨 줄이에요?"

  "셔틀버스요."

  놀랐다. 대기자들의 숫자에 비해 셔틀버스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다들 두 다리 멀쩡한데, 그냥 걷지. 서서 기다리면, 다리 아플 텐데. 차라리, 운동 삼아 걷는 게 낫지!'

  용무를 마치고, 이동했다. 군중 속에서 아까 본 예수 그리스도 일행이 보였다. 예수가 십자가를 진 채 느리게 걷고, 로마군으로 남장한 여자가 채찍질을 하며 뒤를 따랐다. 또 그 뒤에도 한 사람 더 있었지만,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희한한 광경을 다 보겠네! 저런다고 과연, 전도가 될까?'

  천막에서 파는 시식 음식들을 맛보았다. 그러나, 매화 축제와는 무관한 상품들이 대부분이어서 지갑을 열 마음이 통 일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매실 아이스크림을 발견했다. 매화와 관련 있는 유일한 상품이었다. 과연, 매실 아이스크림은 인기리에 절찬 판매 중이었다. 가격은 4천 원이었다. 입장권을 사용하면, 애석하게도 잔돈은 거슬러 받을 없었다.

  "쳇, 잔돈을 왜 안 주지? 돈 아까우니까, 하나만 사서 나눠 먹자!"

  매실 아이스크림의 맛은 꽤 만족스러웠다. 하얗고, 부드럽고, 적당히 달콤했다. 인위적이고 자극적이지 않은 순한 단맛이어서, 좋았다. 시중에서 판매되지 않기에 가치가 높았고, 특산품이니 더욱 의미가 깊었다. 다랑은 하나 더 먹고 싶은 눈치였다. 

  이윽고 매실 아이스크림 판매점을 하나 더 마주쳤는데, 거긴 500원 더 비쌌다. 비싼 이유가 궁금했으나, 아이스크림으로 배를 채울 순 없기에 단념했다.

  티 없이 맑고 파란 하늘과 팝콘처럼 흰 매화가 조화로웠다. 홍매화도 한창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한편, 어딜 가나 방문객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들은 질서 정연하게 줄 지어 차례대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다리기 싫어서, 그저 눈으로만 경치를 감상했다.

  4년 전에 정자에서 내려다본 아름다운 광경을 다랑에게 선사하고 싶어서, 경사 가파른 언덕을 부지런히 올랐다. 하지만, 정자에 도착하자 마찬가지로 관광객들로 미어터졌다. 다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꼭대기에는 식당 천막이 즐비했다. 점심시간이라서, 시장했다. 식사하고 싶었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매실 치킨이 눈에 띄었으나, 대기자가 너무 많았다. 음식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잔여석이 있는 곳을 찾아 비집고 들어갔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주문할 수 없었다. 직원들은 손님에게 영 무관심했고,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만 일어나자. 이런 대접받으면서, 돈 쓰기 싫어서 그래."

  언덕을 내려가는데, 누군가 다랑을 덥석 붙잡았다.

  "아니, 이게 대체 누구야!"



매거진의 이전글 매화가 준 행운(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