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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Mar 16. 2024

매화가 준 행운(상)

다시 찾은 광양 매화 축제

  수요일에 바톨린 낭종 수술 후, 목요일에 산부인과 진료받고, 금요일에도 내원했다. 이제 그만 와도 된다는 여의사의 말을 듣고, 귀가 후 차차 건강을 회복하던 차였다. 남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랑: 광양 매화 축제 가봤어?

슈히: 응, 4년 전에.

다랑: 누구랑?

슈히: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랑 가려고 했는데, 헤어졌거든. 그래서, 혼자 갔어. 2020년 코로나 시국이어서, 매화 축제 취소되고, 굉장히 한산했어. 게다가 평일이었거든. 매화는 찬란히 폈는데, 어찌나 마음이 시리던지...... 혼자 오신 어떤 여자분이 마침 사진 촬영해 준다고 해서, 용케 기념사진 한 장 건졌어. 그분은 서울에서 기차 타고 오셨다고 하던데, 서로 사진 찍어 줬지. 그리고, 광양 백운산 등산했어. 명산 100 인증하러 간 김에 매화 축제 들린 거야."

다랑: 그렇구나. 그럼, 가봤으니 또 안 가겠네?"

슈히: 너랑 안 가봤으니, 갈게. 언제 갈 건데?"

다랑: 월요일 어때? 회사 창립 기념일이라서, 쉬거든.

슈히: 곤란해. 토요일 어때?

다랑: 내일? 부모님도 매화 축제 가신다던데, 혹시 마주칠까 봐......

슈히: 뭐, 어때. 가자!



  주말이라서, 인파가 몰릴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약 3시간 이동했다. 워낙 먼 길이라서, 축제장 인근에 도착하자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목적지는 광양시와 하동군의 경계였는데, 하동을 지나기도 전에 교통 체증이 심각했다. 


다랑: 벌써 차가 막히다니, 여기서부터 4km나 더 가야 하는데!

슈히: 그냥, 걸어가는 게 어때? 그게 더 빠르겠어.

다랑: 누나 몸 상태 안 좋은데, 괜찮겠어?

슈히: 걷지 못할 정도로 아프진 않아. 괜찮아. 우리 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잖아. 서두르자!



인근 적당한 장소에 주차한 후, 차에서 내렸다. 웬걸, 다랑은 정장 차림에 구두를 신은 채였다.


슈히: 왜 구두를 신었어? 오래 걸으면 발 아플 텐데...... 운동화 없니?

다랑: 멋지게 하고 오라며......

슈히: 야외 활동할 땐 운동화가 필수야. 물론, 정장 차림에 운동화 신으면 안 어울리긴 하겠지만...... 난 운동화 신고도 예쁘게 꾸몄는데! 우산도 챙겨. 봄햇살 자외선은 피부에 치명적이거든!



  우리는 큰 우산을 함께 쓴 채 도보를 걸었다. 날씨는 화창했으나, 다소 한기가 느껴졌다. 털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폴라 니트 위에 두툼한 무스탕을 걸치고, 빨간 장갑을 낀 상태였다.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크고 쌀쌀했다.

  우리처럼 걸어가는 관광객들이 몇 명 보였다. 뒤에 있던 노부부는 우리를 추월해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그러든가 말든가, 여유롭게 걸으며 경치를 감상했다. 축제 초반이라서, 아직 매화는 만개하지 않았다. 축제장이 가까워질수록, 인파는 점점 늘었다. 한데 무리를 지어 걸었다. 

  "다음 주말에 오면 절정이겠다! 아니, 그전에 혹시라도 비라도 오면 꽃이 다 질 수도 있고."

  다랑과 함께 다정히 기념 촬영했다.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이런 데 함께 올 사람이 있어서, 참 좋구나!'

  맨발 걷기 이벤트라는 문구가 보였다. 추첨을 통해 상품권 10만 원을 준다는 하단의 작은 글씨를 읽고, 다랑에게 외쳤다.

  "우리, 저거 할래?" 


 




[2020년 3월, 광양 매화 마을에서]



[2024년 3월, 다시 찾은 광양 매화 축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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