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다섯 번째 노래자랑(하)

본선 진출 15팀

by 슈히

왼손으로 마이크를 단단히 쥐고, 다랑의 오른팔에 팔짱을 꼈다. 관객석을 향해 미소를 띤 채, 오른손을 흔들며 무대 중앙으로 나갔다.

"안녕하세요. D동에 사는 슈히,"

"E동에 사는 다랑입니다."

"남진과 장윤정의 <당신이 좋아>를 부르겠습니다. 노래를 부르기 앞서, 탱고를 짧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랑과 마주 섰다. 그가 이끄는 대로 침착하게 움직였다. 그가 오른손으로 내 좌측 갈비뼈를 살짝 밀자, 반동으로 내 몸이 뒤로 밀렸다. 우측 다리를 뒤로 크게 뻗어 공간을 확보했다. 그가 내민 발을 우측 발로 살짝 건드리며, 속으로 되뇌었다.

'앞, 옆, 뒤, 다시 앞.'

발걸음을 옮기며 다랑의 우측을 빙그르 돌았다.

'여기서 무릎을 잠깐 굽히고, 하나, 둘.'

탱고 기술 중 히로를 실수 없이 해냈다.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다랑이 노래하며 좌측 손으로 내 우측 어깨를 쓸었다.

"그대는 내 운명."

"당신도 내 운명!"

우측 손으로 다랑의 가슴과 배를 쓸자, 다랑이 행사장 풍선처럼 두 손을 높이 들고 몸을 흔들었다. 가사도 틀린 부분이 없고, 음정과 박자도 정확했다. 생각보다 훌륭한 공연이었다. 반면, 관객석은 조용했다. 박수 소리나 환호는 없었다.

심사위원이 질문했다.

"둘이 어떤 관계인가요?"

다랑이 대답했다.

"연인입니다."

"부부는 아니고?"

"네."

"합격이요."

"감사합니다!"

웃으며 무대를 내려왔다. 심사위원 석은 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하나는 안경 쓴 PD의 좌석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새 사회자 남희석이 머물다 간 곳이었다.

"마침 PD가 자리에 없어서, 우리 합격한 거 아니야?"

다랑이 말했다. 과연 그럴듯한 의견이었다.

"일단 네 덕에 합격한 거야. 혼자 무대 섰으면, 어림도 없었어. 고마워!"

진행 요원의 안내를 따라 강당을 나서니, 2차 예심 합격자 명찰을 받을 수 있었다. 2차 예심 신청서를 작성한 후, 대기실로 이동했다. 여자 화장실에서 만난 다른 참가자들이 먼저 말을 건넸다.

"무대 재밌게 봤어요!"

"아, 그래요? 관객석에선 별 반응 없던데."

"긴장해서, 못 들은 걸 거예요."

대기실에 앉아 길고도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출입문은 개방된 상태였고, 난방은 미작동 중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추위에 떨었다. 다랑은 피곤한지 잠이 들었다. 그로부터 약 3시간 후, 2차 예심이 시작됐다. 2차 예심에서 우리의 순번은 19번이었다. 18시 30분부터 시작됐고, 우리의 순서를 마치자 1시간이 지난 후였다.

"넌 어서 수업 들으러 가!"

다랑의 등을 떠밀었다.

"같이 기다려."

"아냐, 여긴 나 혼자 있을게. 넌 학원 가야지!"

혼자 강당에 남아 2차 예심 결과를 들었다. 2차 예심 합격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15팀이었다. 합격이 예상되는 참가자들도 있었으나, 합격이 의아한 도전자들도 다수 있었다.

21시경, 걸어서 귀가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는데, 누군가 말을 건넸다.

"아깝게 떨어졌네요."

아는 사람인가 싶어 자세히 봤는데, 낯선 이였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였다. 평소 음악 감상을 즐기는 듯 보였다.

"아, 그러게요. 속상해요! 합격의 장벽이 너무 높네요. 이번이 무려 다섯 번째 도전이거든요."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고, 우리는 나란히 걸어 맞은편 인도로 이동했다.

"다른 지역 주민이세요?"

"아뇨, 대덕구민 맞아요. 이사 왔어요. 작년엔 동구민이었어요. 전국 노래자랑 동구 편 예심 때 참가했거든요. 자꾸 탈락하는 이유가 분명 있겠죠. 1차 예심 통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나마 발전했네요."

"예심을 쭉 지켜보니까, 제 생각엔 이야깃거리가 있는 참가자들을 뽑는 것 같아요."

그의 의견을 듣고 보니, 과연 일리가 있었다.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도로변의 백목련이 홀로 처연히 빛나고 있었다. 발걸음을 돌려 가까이 다가갔다. 인적이 드문 외딴곳에서 이렇게 꿋꿋이 핀 자태를 보니, 동병상련의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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