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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Sep 20. 2024

대화

  “여기 앉아라. 할 얘기가 있다.”

  어머니가 말했다. 딸은 의문을 품은 채, 말없이 탁자에 앉아 어머니와 마주 봤다. 거실에는 모녀 둘 뿐이었고, 다음 대사는 충격적이었다.

  “네가 수술해라.”

  “…뭘요?”

딸이 질문했다.

  “아버지 간 이식.”

순간, 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어머니는 지옥에라도 갈 기세였다. 어머니의 이런 태도는 딸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야?’ 

  딸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죄송해요. 전 못해요.”

  “왜? 이제, 희망은 간 이식 수술뿐이야. 아버지, 저렇게 돌아가시게 내버려 둘 거야?”

  “아버지는 60대이시고, 그 정도면 사실 만큼 사셨잖아요. 운명을 받아들이셔야죠. 저는 이제 겨우 서른 살인걸요. 저도 제 인생이 있잖아요!”

  “60대면, 죽기엔 너무 젊은 나이지.”

  “아버지는 결혼도 하시고, 자녀도 둘이나 낳아서 길러 보셨으니, 이제 여한이 없으실 것 같은데요. 게다가, B형 간염 보균자인데도 불구하고, 술을 즐겨 드시잖아요. 발암은 결국, 건강 관리를 잘못한 본인의 탓 아닌가요?”

  “난 이대로 네 아버지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 과부로 살고 싶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다 무시하고, 손가락질할 거야.”

  “오빠가 수술하면 되잖아요!”

딸은 어머니를 설득하려고 노력했으나, 어머니의 태도는 완강했다.

  “여기, 네 오빠가 받은 건강검진 결과다.”

  어머니가 우편물을 탁자에 올려놨고, 딸은 곧장 서류를 펼쳤다. 아들의 건강 성적은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네 할아버지가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신 건, 너도 알지? 그래서, 너희들 모두 어릴 때부터 운동 열심히 했잖아.”

  그랬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딸은 유년 시절부터 죽지 않을 만큼만 운동했다. 다니는 학원도 주로 운동 목적이었다.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수영, 태권도, 발레, 에어로빅 등 다양한 종목의 운동을 배우고, 연마했다.

  부모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출타 중인 시간이 더 길었다. 맞벌이인 탓이었다. 결과적으로, 딸의 기억 속엔 부모와의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었다.

  “오빠는 운동하는 거 싫어하고, 지금은 운동을 아예 안 하죠. 술과 담배 다 하고, 게다가 뚱뚱하잖아요.”

  “그래, 그게 문제지. 검사한 건 아니지만, 검사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 준우는 아마, 지방간이 있을 거다. 반면, 넌 건강하잖니.”

  아들보다 딸이 간 이식 기증자로 적합한 건, 객관적으로 명확했다. 딸보다 무려 5살이나 많은 아들은 심지어 건강검진 결과마저 숨겼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건강검진 결과를 물었을 때, 아들은 우편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수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했고, 그녀의 요청에 의해 우편은 재발송됐다. 우편물은 아들이 혼자 사는 아파트가 아니라, 부모와 딸이 함께 사는 주택으로 전송됐다. 어머니는 아들이 숨기고자 했으나 숨기지 못한 현실을 포착했다.       


   

  건강 관리에 주의하십시오. 술, 담배를 끊고, 운동하시길 권장합니다. 비만 상태이며, 대사증후군(당뇨 전 단계)이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고 지극히 사무적인 문장이었다. 의사의 소견은 짧고 간결했지만, 건강의 적신호를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래,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우리 가족 관계를 이만 끊자. 간 이식 수술을 안 하면, 넌 이제 우리 딸이 아니다!”

  어머니의 단호한 선언에, 딸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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