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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Oct 25. 2024

연락

  수라의 몸은 차차 회복됐다. 어느 날, 수라는 입원 생활이 너무 지루한 나머지 SNS에 접속했다. 가상현실의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평소 수라가 그들의 게시글에 반응을 남기는 일은 드물었지만, 그들은 종종 수라의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굉장히 뜬금없었지만, 수라는 대뜸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어디 사세요?"

  답장은 곧 도착했다.

  "서울이요. 무슨 일이세요?"

상대가 의아해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서울 금와 병원에 현재 입원 중이에요. 이식 수술했어요."

  "앗, 정말요? 대수술을 하셨네요. 금와 병원이면 별로 멀지 않아요. 문병 갈까요?"

  수라가 먼저 문병을 와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오겠다고 자발적으로 약속한 이는 두 명이나 됐다. 한 명은 서울에 사는 변호사였고, 다른 한 명은 경기에 사는 건축가였다. 그들의 게시물에서 알 수 있는 정보였다.

  '전문 분야 종사자들이네. 온라인상의 정보를 맹신할 순 없지만, 일단 성실해 보인다.'

  "퇴근 후에 금방 갈 수 있어요. 언제 갈까요?"

  "보러 와주신다니, 너무 고마워요. 가능하신 날짜와 시간 알려주시면, 제가 맞출게요."

  수라는 실제로 그들을 번도 만난 일이 없지만, SNS 친구들은 한걸음에 달려왔다.

  '실제 인맥 보다 SNS 친구가 훨씬 낫구나! 쯧쯔, 인생 헛살았어......'

  건축가는 평일 저녁에 왔다. 키가 작고, 퉁퉁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안경을 썼다. 그의 외모는 전혀 수라의 취향이 아니었지만, 와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병원의 공식적인 운영 시간이 한참 지난 터라, 로비가 한적했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고요한 로비에서 수라는 건축가와 대화했다.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도 간 이식 수술했어요. 기증자였죠."

  "앗, 정말요? 간 이식 수술한 사람들이 은근히 많네요. 제가 미술 지도하는 강사인데, 수강생 중 어느 어머님도 간 이식 수술했어요. 그분은 수혜자요. 아들이 기증해 줬대요."

  "그렇군요. 효자네요."

  "수술하기 전에 이것저것 물어보려고 그 아드님과 통화한 적이 한 번 있어요. 많이 아팠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잔뜩 숨기는 눈치였어요. 아프다고 말하면, 내가 겁먹고 변심할까 봐 그랬나......? 전혀 조언을 들을 수 없었어요. 아니면, 한참 과거의 일이라서 고통을 다 잊어버렸나?"

  "본인 얘기를 남에게 쉽사리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요. 수라 씨는 본인 사연을 남에게 드러내는 거에 대해 거리낌이 없나 봐요?"

  "네, 저는 외향적이고 감성적이라서 별 거부감이 없어요. 지금도 온라인 인맥까지 동원해서, 병원에서 대화 중이잖아요!"

  "하하, 이렇게 연락이 닿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수라 씨를 만나게 될 거라곤 전혀 상상 못 했어요. 마치, 연예인과 팬 미팅하는 기분인 걸요?"

  "연예인답지 못한 초라한 병자의 모습이라서, 죄송스럽네요. 화장품이고 뭐고 안 챙겨 왔어요. 외출할 일도 없고, 공식 석상에 설 일도 없는 환자가 화장한다는 것도 우습지만요. 아까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여자 친구는 수술 후 어떻게 됐어요?"

  "아, 그게...... 갑자기 연락이 끊겼어요."

  "엥, 그게 무슨...... 수술받다 죽은 거 아니에요?"

  "아마, 그건 아닐 거예요. 수술받다 죽었으면, 죽었다고 연락이 왔을 테니까요."

  "그럼, 여자 친구 살던 집에 가보지 그랬어요?"

  "당연히 가봤죠. 근데, 증발했더라고요. 대체 왜 그랬을까?"

  수라는 뭔가 위로의 말이 없을까 궁리했으나, 그를 위로할 수 있는 적절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놀라서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간 이식 수술을 받고 잠적하다니. 너무 힘들어서 기대고 싶었을 텐데, 애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헤어지고 싶은데 핑계가 없어서 수술을 빌미로 일방적인 이별을 고한 걸까? 여자 쪽 의견을 듣지 못하니, 도무지 알 수가 없군! 아니, 애초에 수술을 진짜 하긴 한 거야? 그것마저도 의심스럽다!'

  밤이 깊었다. 건축가는 오래 머물지 않고, 수라에게 작별을 고했다. 

  "빠른 쾌유를 빌게요. 우리, 다음에 또 볼 수 있나요?"

  "오, 글쎄요.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요? 제가 대림에 살거든요. 멀어요."

  수라는 간접적으로 거절을 표했다. 그에게 뭔가 희망을 심어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거리는 그저 물리적인 핑계였다. 또, 잠깐이지만 순배가 떠올랐다.

  다음 방문자는 토요일 낮에 왔다. 수라는 변호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보기 드문 장신이었다.

  "와, 키가 굉장히 크시네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지하철 타고 오면, 금방이에요. 수라 씨, 몸은 좀 어때요? 식사 아직 안 했으면, 식당에서 뭐라도 먹을래요?"

  "환자는 식당 출입 금지예요. 일반인만 식사 가능해요. 며칠 전에 갔다가, 문전박대당했거든요."

  "여기가 병원이니까, 아마 죽이 있을 거예요. 그거 포장해서, 병실 가서 먹어요. 내가 살게요."

  그는 친절하게도 지갑을 열었고, 수라에게 상냥하게 대했다. 초면의 낯선 상대에게 보살핌을 받으니, 수라는 이런 게 바로 인류애가 아닌가 싶었다.

  "수라 씨, 미혼이에요?"

  "네, 부모님과 살고 있어요."

  "몇 살이죠?"

  "서른 살이요."

  "결혼이라도 일찍 하지 그랬어요. 그러면, 간 이식 수술 안 해도 됐을 텐데요......"

  "아, 그러네요! 20대에 결혼해서 임자가 있는 몸이었다면, 간 이식 수술하라고 가족에게 강요받지 않았을 텐데. 인생의 큰 실수를 저질렀네요. 물론, 20대 때 결혼할 뻔한 적은 몇 번 있었어요."

  "서른 살이니, 이제 열심히 짝을 찾아봐요. 요즘 세상엔 20대에 결혼하는 건 좀 이르죠. 100세 시대니까요."

  "50세에도 결혼 못하는 사람은 못해요. 과거에 만난 상대들은 다 배우자감으론 '아니올시다'였어요. 1년 이상 사귀었던 남자는 1살 연하였는데, 너무 철이 없었어요. 그래서, 헤어졌죠. 대학 다닐 때 반년가량 사귀었던 남자는 술, 담배에 절어있고 여자를 너무 밝혔어요. 심지어, 제 친구한테도 추파를 보냈다는 걸 헤어진 후에야 친구에게 전해 들었어요. 헤어지길 정말 잘했죠. 그리고, 5개월 사귀었던 남자도 한 명 있었는데, 제일 끔찍했어요. 백수였거든요. 물론, 처음부터 무직이었던 건 아니지만요. 결론적으로, 셋 다 결혼할 수 없는 상대들이었어요. 아,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난 남자복이 없나? 아무튼, 이렇게 와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힘이 나네요."

  "치료 잘 받으시고, 회복 잘하세요. 다음에 서울 올 일 있으면, 미리 연락해요. 또 봐요."

  "네, 그럴게요. 변호사 님도 몸 건강히 잘 지내세요."

  몇 년 후, 수라는 서울에서 변호사를 재회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아내가 항암 치료를 받았어요. 지금은 완치 판정받았죠."

  "아, 저런...... 많이 힘드셨겠어요!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다른 가족들도 너무 힘들거든요. 제가 그 마음을 잘 알죠."

  "그런데, 그때부터 쭉 부부 관계를 안 해요."

  "아, 부인 입장에선 아무래도 잠자리하기가 많이 힘든가 봐요."

  수라는 변호사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나, 다음에 이어진 그의 발언은 요지경이었다.

  "여자 친구가 한 명 있어요.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해요. 2주에 1회 만날까 말까예요."

  "애인을 뜻하시는 거예요?"

  수라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변호사를 뚫어져라 봤다.

  '아니, 왜 이런 비밀 얘기를 나한테 하냐고? 두 번째 만남에 너무 망측하다, 진짜! 조카뻘 되는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거야, 정말?'

  "그 여자도 외로운 사람이에요. 남편이 의원이라는데, 출장이 잦대요. 그래서, 집을 자주 비우나 봐요. 부인은 집에서 혼자 자녀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세월 다 보낸 거지."

  '변호사 님 말을 들으니, 과연 남편의 부재가 진짜 출장일지 의문이 드네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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