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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Oct 30. 2024

용돈

  문병객들 중, 의외의 방문자가 있었다. 막내 외숙부는 평일 저녁 퇴근 후, 딸 서진과 아들 용현을 거느리고 왔다. 외사촌 서진과 고종사촌 수라는 평소에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었고, 심지어 연락처도 몰랐다. 수라는 사실, 과거에도 서진과 특별히 가깝게 지낼 마음이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통통한 외모 때문이었다. 서진은 수라의 몸을 물티슈로 닦아준 다정한 외숙모의 딸이기도 한데, 외숙모를 닮아서인지 도무지 홀쭉해질 줄을 몰랐다. 

  어릴 적, 수라는 천성적으로 먹성이 좋아 포동포동했다. 대개 어른들은 그런 수라를 복스럽다며 귀여워했다. 수라가 시골 외갓집에서 며칠 머물며 동네를 거닐면, 할머니들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못 보던 안데, 뉘 집 아가 이리 예쁜고?"

  칭찬을 들은 수라는 기분이 좋아서 활짝 웃었다. 한편, 짓궂은 사촌 오빠들은 수라를 놀려댔다. 

  "준우랑 수라는 못 보던 사이에 더 살쪘니? 꿀꿀돼지야! 크크 크큭!"

  사촌 오빠들은 모두 말라깽이였다. 준우는 또래인 사촌들의 그런 놀림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으나, 어린 수라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말았다. 더군다나, 이성이었기 때문에 타격이 컸다. 분하고, 창피해서 어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으나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유난히 수라를 애지중지하던 큰 외숙모는 수라를 살살 달랬으나. 그녀의 위로조차 수라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이고, 깜찍한 것! 우째 이리도 예쁘게 생겼으까잉? 우리 수라 공주님을 도대체 누가 놀렸으까? 오빠들이 수라 놀려싸믄 수라는 오빠들한티 갈비씨라고 놀려부러. 사내놈들이 빼싹 말라가꼬 영 보기 거시기 하당게! 수라 나중에 커서 대학가믄 살은 절로 빠진다! 진짜여."

  결과적으로, 수라는 유년 시절에 받은 놀림 탓에 유독 살집 있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느꼈다. 후덕한 사람의 살은 넉넉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아니었다. 수라는 뚱뚱한 사람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게을러 보여! 왜 저렇게 자신을 방치하는 거지? 적당히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적어도 비만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나?'

  큰 외숙모의 말처럼, 어른이 되면 살이 자동적으로 빠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수라는 고3 수험생일 때, 입시 준비를 하며 살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수험 기간에 마지막으로 잰 체중은 약 70kg에 육박했고, 교복이 작아져서 치맛단이 뜯어졌다. 꽉 끼는 교복 치마와 조끼를 억지로 입고 학교 생활을 하려니,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수라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혹독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누가 뭐래도, 부단히 노력했다. 18시 이후엔 물 이외에 어떤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이 수라에게 간식을 권해도, 수라는 절대 먹지 않았다.

  "독하다, 독해!"

  그만큼, 날씬한 몸매에 대해 수라는 절실했다. 그렇게 철저한 자기 관리 속에서 1학기와 여름방학이 지났을 때, 수라의 체중은 무려 58kg이었다. 163cm인 여성의 표준 체중보다는 과했지만, 건강하고 탄력 있는 싱싱한 육신이었다.

  비호감이었던 서진이 수라에게 다가와 다정한 위로의 말들을 건넸다. 왕래가 없던 사촌 언니에게 병상에서 관심을 받으니, 수라는 서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서진 언니는 외국어 대학교 졸업하고, 승무원 준비한다더니 잘 안 됐나? 소문엔 결혼도 안 하겠다고 했다던데......'

  수라는 서진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에,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언니, 예전에 과외 지도했지? 지금은 무슨 일 해?"

  "아버지 회사에서 근무해."

  서진의 아버지는 세무사였다. 아무래도, 세무 사무실의 업무는 서진의 대학 전공과는 무관할 것 같았다. 수라는 서진의 진로에 대해 의문이 들었으나, 더 캐묻는 건 실례일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수라야, 이거 받아. 수술하느라 고생했어!"

  서진이 수라에게 흰 봉투를 내밀었다. 수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야?"

수라가 봉투를 받아 들며 내용물을 확인하려 하자, 서진이 저지했다.

  "용돈 좀 넣었어. 이따 확인해. 나 가고 난 뒤에."

수라는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서진의 가족들이 사라진 후, 수라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10만 원이 들어있었다. 수라에게는 큰 액수였다.

  '와, 서진 언니 돈 잘 버나 보다! 눈물 나게 고맙네.'

  뿐만 아니라, 수라는 동네 아주머니와 옆집 아저씨에게도 위로금을 받았다. 직접 전달받은 것은 아니고, 어머니를 통해서였다. 그들의 선심 덕분에, 수라는 감동을 받았다.

  그 후부터, 수라는 서진과 잘 지내려 노력했다. 먼저 연락해 서진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택배로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서진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수라도 제풀에 지쳐, 곧 관심을 거뒀다. 몇 년 후, 수라는 어머니를 통해 별안간 서진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서진 언니, 연말에 결혼한단다."

  "오, 진짜요? 누구랑 한대요?"

  "나도 잘 몰라. 남자랑 하겠지, 뭐."

  "새신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서진 언니한테 연락해 봐야겠다."

  수라는 곧장 서진에게 연락했다.

  "서진 언니, 결혼 축하해!"

몇 시간 후, 답장이 왔다.

  "수라야, 축하해 줘서 고마워! 경황이 없어서 결혼한다고 말도 못 했네. 나중에 시간 되면, 형부랑 밥 한번 먹자."

  환영의 뜻으로 받아들인 수라는 조만간 서진을 만날 요량으로 종종 연락했다.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왔다.

  "서진 언니, 새해 복 많이 받아! 신혼집 언제 놀러 가면 돼?"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우리가 상반기가 일이 많아서, 바쁜 거 끝나고 연락할게."

  또다시 시간이 흐르고, 상반기가 끝나갈 즈음이 됐다.

  "언니 언제 시간 돼?"

  "수라야, 오랜만. 우리는 5월~6월 종합 소득세 신고 기간이라서 좀 바빠."

  "수목원 가려는데, 서진 언니랑 같이 갈까 해서."

  "8월부터 한가해져. 7월에 상반기 부가세 신고 있어서. 우리 업계가 상반기에 일이 몰려."

  수라는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서진에게 연락했으나, 7월이 지나고 8월이 돼도 통 무소식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수라는 서진에게 전화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사람을 갖고 노는구나. 고작 돈 10만 원에 이런 사람이랑 잘 지내려고 했다니!'

  수라가 친구 솔아에게 사연을 털어놓자, 솔아가 조언했다.

  "너, 결혼식 갔어? 안 갔지?"

  "응, 다른 일정이 있어서 참석 못했어."

  "그럼, 사촌 언니한테 축의금은 전했어?"

  "아니. 신혼집 갈 때 선물 주려고 축의금 안 냈는데."

  "축의금을 안 내니까, 너 쌩까는 거잖아!"

  "에이, 설마! 그게 사실이라면, 남보다 오히려 가족이 더 냉정하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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