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봉을 완등하기까지
앞으로 몇 년간 정맥을 가려고 마음먹었는데, D는 대뜸 영남 알프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을 함께 이루고자, 영남 알프스에 대해 검색했다. 마침 영남 알프스는 낙동정맥의 일부였다. 영남 알프스를 오르면, 정맥도 등산하는 셈이니 잘 됐다 싶어서 가기로 결정했다.
새해가 며칠 지난 1월의 첫 주말이었다. D와 둘이서 자가용을 타고, 머나먼 경상도로 향했다. 산악회원들과 들머리에 모여서, 인사했다. 약 10명 이상이 모였는데, D와 나는 모두와 초면이었다. 안경 쓴 30대 남자 운영진이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건네길래, 몇 마디 주고받았다.
"블랙야크 명산 100, 섬&산, 백두대간 모두 완주하셨죠? 대단하시네요!"
그 역시 명산 100 완등자였다.
"엄청 힘들었어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완등하긴 어렵죠. 너무 고생했어요."
얼마나 걸었을까, 남자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헐떡였고 우리와 점점 멀어졌다.
해가 뜨기 전에 산을 올랐기에, 울산 신불산 정상에 닿았을 땐 이른 오전이었다. 인적이 드물어서, 인증 사진 촬영은 수월했다. 5년 전에 영남 알프스 인증을 두어 개 한 적이 있는데, 인증하는 방법이 그때와 많이 달랐다. 2025년 현재에는 스마트폰에 영남 알프스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후, 산 정상에서만 인증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 소지자만 인증이 가능하네. 정상에서만 인증할 수 있으니, 조작하거나 사기 치기는 영 어렵겠는걸?'
성공적으로 인증을 마치고, 신불산에서 간월산으로 향했다. 키가 작고, 피부가 흰 30대 여자 회원과 대화하며 이동했다. 그녀는 명랑한 성격이었고, 사진 찍기를 참 좋아했다. 배우자는 등산을 싫어해서, 집에서부터 혼자 주행해서 왔다고 했다.
"원래 친구랑 둘이서 오려고 했는데, 친구가 개인 사정이 있어서 갑자기 못 왔어요."
한편, 20대의 남자 회원은 친한 여자 친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귀는 사이 아니고 그냥 친구인데, 앞으로 연인으로 발전하고 싶어요. 그녀에게 뭔가 선물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요?"
"음, 립스틱 어때요? 쓸 때마다 선물한 사람을 생각할 거예요. 저도 남자 친구한테 선물 받은 립스틱을 바를 때마다, 늘 상대를 떠올리거든요."
봄처럼 설레는 연애를 시작하게 될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풋풋하고 귀여웠다.
매서운 칼바람에 고통스러웠으나,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인내했다. 간식을 먹음으로써 체력을 보충하고, 짐을 가볍게 만들고자 했으나, 너무 추워서 식욕마저 없었다. 휴식 시간이 길면 땀이 식으므로, 오래 쉬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회원들은 무리 지어서 왔는데, 한참을 기다리자 가까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체력과 수준은 저마다 달랐다. 20대 여자 회원 M은 옷을 얇게 입은 탓에 사시나무 떨듯 줄곧 괴로워했다.
'옷을 왜 저렇게 입었을까? 많이 추울 텐데......'
M의 튼튼한 하체가 유독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가 종주를 즐기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의아해서 질문했다.
"여태 누구랑 어디 있었어요? 통 안 보이던데."
"아, 저 혼자 다른 길로 갔어요. 좋은 경치를 보고 싶어서요. 미리 검색해서, 길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요? 아깝다! 그런 곳이 있는지 몰랐네요. 따라갈걸......"
2월에도 역시 2개를 인증하려고 했으나,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집에서 늦게 출발했다. 시간 관계상, 울산 가지산 한 개만 인증할 수 있었다. 겨울철에는 해가 빨리 지므로, 시간이 촉박했다. 안타까웠으나,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3월에는 울산 고헌산과 천황산을 등산했다. 케이블카에 탑승했는데, 백호 바위를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우와, 진짜 호랑이 같이 생겼어!"
붐비는 인파 속에서 D에게 안긴 채 감상한 자연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안내원이 부연 설명했다.
"지난 주말에 오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때가 진짜 예뻤거든요! 지금은 눈이 많이 녹아서, 아쉽네요."
초봄, 산불이 크게 번졌다. 4월에는 산불 통제 때문에 아무도 입산하지 못했다. 통제가 풀릴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D와 이별했다. 그간 갈등이 많았고, 싸움이 반복되며 서로 지쳤기 때문이었다. 힘든 나날들이었다. 우리를 포함해 총 4명이 가기로 한 해외여행도 취소됐다.
5월, 별안간 영남 알프스 산불 통제가 풀렸다. D에게 연락해 등산 의향을 묻자, 그는 다행히 수락했다.
"네가 가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거니까, 좋게 마무리하길 바라."
고맙게도 그가 장거리 운전을 맡았다. 울산 영축산과 밀양 운문산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40대 남자 산악회원과 들머리에서 합류했다. 그는 종주를 많이 한다고 했는데, 다리를 절뚝거렸다.
"종주를 무리해서, 무릎이 상했어요."
"그럼, 종주를 안 하시면 되잖아요."
"술을 좋아해서, 살이 자꾸 쪄요. 운동 꼭 해야 돼요."
"그럼, 술을 안 마시면 되잖아요."
"좋아하는 걸 즐기며 살아야, 그게 인생이죠."
뒤에서 오던 D가 내 목덜미를 보며, 말했다.
"뒷목 다 타겠다."
그 말을 듣고, 얼른 손수건을 꺼내 목에 묶었다.
영축산을 하산하고 운문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비 소식이 있다며 회원이 걱정했다. 우중 산행은 위험하므로,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가길 원했다. D도 그에게 동의했다. 못마땅한 건 오직 나뿐이었다. 맞은편에선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등산객들이 계속 등장했다.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들머리로 향했다. 걱정돼서, 말을 붙였더니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대답했다.
"비, 안 올 거예요. 확실히 안 와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산행을 감행했다. 겁쟁이 남자 둘은 내 결정을 존중했다.
"오늘 운문산 성공 못하면, 다음에 언제 올지 기약이 없어요. 시간 어렵게 낸 거라서요. 비가 와도, 가겠어요!"
운문산 정상에 다다를 무렵, 세상을 내려다보니 익숙한 풍경이었다. 기록을 찾아보니, 예전에 블랙야크 명산 100+ 1좌로 인증한 곳이었다.
'어쩐지, 들머리에서부터 어째 익숙한 풍경이라더니...... 5년 전에도 5월에 왔네. 이런 우연이 있나!'
D가 나를 위해 운전하고, 짐을 들고, 길을 안내해 준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난관을 뚫고 영남 알프스의 완등에 도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비록 더 이상 연인이 아니지만, 그간 동행한 많은 산행과 추억들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아 청춘으로 기억될 것이다(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