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김정희 유배지와 느리게 가는 편지
첫째 날 마지막 일정으로 서귀포의 김정희 유배지를 관람했다. 예전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 편>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어서, 언젠가 꼭 가봐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장소였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예술가인 김정희는 55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유배되어 약 9년간 머물렀다. 그는 제주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쳤고, 제주 지역의 학문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추사의 문하에는 3천의 선비가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정희는 제주 유배 시절에도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집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위리안치의 형을 받은 김정희는 이곳에서 학문과 예술을 심화시켰다. 그의 추사체는 벼루 열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어지게 했다고 할 정도로 고독한 정진 속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차를 매우 좋아한 김정희는 다도의 대가인 초의 선사와 평생 우정을 나누었으며, 제주 지역에 차 문화를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김정희는 추사체를 완성하고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국보 180호)를 비롯하여 많은 서화를 남겼다.
한편, 추사의 제자 이상적은 스승이 귀양살이하는 동안 정성으로 책을 보내주었다. 추사는 제주도에 유배 온 지 5년이 되었을 때, 이상적에게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세한도>를 그려 주었다. 이곳은 집터만 남아 경작지로 이용되다가 1984년에 강도순 증손의 고증에 따라 복원되었다. 제주 추사관은 조선 후기 대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삶과 학문, 예술 세계를 기리기 위해 2010년 5월에 건립되었다. -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 안내문(일부 요약)
김정희가 뒤집어쓴 누명이 뭘까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니, 그의 아버지 김노경이 반역 사건에 휘말려 먼저 귀양을 떠나고, 10년 후엔 김정희도 역시 누명을 입고 유배를 간다. 억울하고 분해서 생을 마감하고 싶었을 듯도 한데, 김정희는 제주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예술의 혼을 펼친다. 역경을 딛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간 점이 참 존경스럽고, 멋있다.
전시관 지하에는 방문객들이 추사체를 연습하도록 붓, 먹, 벼루, 화선지 등이 마련된 작은 공간이 있었다. 서예를 할 마음은 없었으나, 느리게 가는 편지를 써보라는 문구가 있길래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우울한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며, 편지를 쓰고 봉투에 고이 접어 넣었다.
작년 5월에 제주 한라 수목원에서 그가 쓴 엽서가 올해 내게 전송된 것처럼, 오늘 내가 김정희 유배지에서 쓴 편지는 내년 이맘때에 상대에게 닿을 것이다. 2026년 5월에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있을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