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 계곡에서 삼만 리
안덕 계곡은 올레길 9구간인데, 생소했다. 가본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이 부분을 건너뛴 모양이었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갔는데, 경치가 놀랍게도 아름다웠다. 연둣빛 나뭇잎의 색감이 곱고, 수면에 비친 풍경은 그림 같았다.
"와, 올레길 걸을 때 왜 이런 곳을 빠뜨렸지? 참 예쁘다!"
친구지간인 여성 둘이 돗자리를 펴고 그늘에 자리 잡았다. 준비한 도시락을 펼쳤다. 그녀들은 물멍 하러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인증지가 어딘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블랙야크에서 공지한 주소대로 내비게이션을 검색해 찾아왔건만, 사진 속 인증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운동복 차림의 부부가 지나가길래, 인증지가 어딘지 아냐고 물었더니 남성이 자신도 역시 블랙야크 인증 중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그가 이미 인증한 줄 오해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는 저쪽으로 가보라고 가리켰다. 가파른 경사를 부리나케 올랐으나 인적이 없고 지루한 길이 죽 이어졌다.
'아냐,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이 차림으로 오래 걸을 순 없는데......'
통이 넓은 헐렁한 긴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거추장스러웠다. 이른 아침부터 워낙 많은 장소를 누빈 나머지,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맞은편에서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한 명 다가오길래, 그에게 다가가 길을 물었다.
"어, 아무튼 여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조형물 못 봤어요. 다른 곳으로 가보세요. 이쪽으로 가시면, 계속 올레길이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의 말을 듣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다음 목적지가 아직 한 곳 더 남았기에, 어서 인증을 마치고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었으나 인증지는 도무지 눈앞에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반대편까지 갔으나, 빈 사업장이었다. 길을 물어볼 이가 아무도 없었다.
냉정히 판단을 내렸다. 다시 안덕 계곡으로 돌아가 여성들에게 길을 물었다. 여자가 휴대전화로 검색하더니, 도로로 나가보라고 일렀다. 다른 선택지가 없으므로,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천천히 걸었던 길을 되돌아갈 땐 힘껏 달렸다. 도로로 나서자, 아까 만난 부부와 또 마주쳤다.
"어, 인증지 아직 못 찾았어요?"
'알지도 못하면서 길을 잘못 알려주고, 남을 고생시키냐......'
남성이 먼저 말을 걸었으나, 무시했다. 그가 길을 잘못 알려준 탓에 똥개 훈련했기 때문에 그가 굉장히 원망스러웠다.
안덕 계곡 초입을 벗어나 우측으로 나섰다. 도로를 지나자, 신호등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탐색했다. 인증 간판이 보였다. 장시간 헤맸으나, 안도감이 들었다. 잠시, 성취감에 젖었다. 너무 힘든 여정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도로변이라서 위험했다. 차들이 쉴 새 없이 줄지어 이동했다. 결국, 맞은편으로 건너서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안덕 계곡에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냈으면 좋으련만, 땀과 흙에 절은 몸을 이끌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