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 2일 차
8월 31일
구마모토 2일 차.
시내 구경을 할까 아소산을 갈까 고민을 하며 전날 잠을 들었는데 오늘 일어나 보니 이미 시간은 10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아소산은 포기했고 시내 구경을 하자니... 아까울 것 같아서 JR 남규슈 패스를 사용해서 어디든 가보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이미 산 거니깐 한 번이라도 더 써서 이득을 봐야겠다 싶었다.
어제저녁에 사둔 유부초밥 3조각을 아침으로 먹은 뒤 오늘은 버스 1일 패스를 사용해서 구마모토 역까지 이동했다. 숙소에서 전차보다는 버스 정류장이 더 가까웠고 전차가 생각보다 많이 느려서 버스가 그나마 더 빨리 갈 수 있었다.
구마모토 버스 3번 승차장에서 내린 뒤 역으로 걸어 이동했는데 오늘 역시 날씨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구마모토부터는 많이 덥지는 않아 어디 놀러 가기에 너무 좋은 날씨였다. 일단 구글 맵을 켠 뒤 JR 남규슈 패스로 갈 수 있는 곳을 알아보다가 요즘 올레길로 인기 있다는 이즈미를 가보기로 했다. 물론 이즈미에 가더라도 나는 올레길을 걷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이미 지난 산행으로 더 이상의 힘든 관광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출근시간이 지나서 열차에 사람도 없고 여유롭게 이즈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이즈미에서 구마모토로 돌아가는 열차는 많이 없기 때문에 항상 역에 도착해서 시간 체크하는 걸 잊지 말아야 했다. 대충 1시나 2시 28분 기차를 타고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역을 나왔다.
이즈미역에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끔 여행객들이 보이긴 했지만 실제 이곳을 이용하는 고객은 많아 보이진 않았다. 역을 걸어나와 밖으로 나오니 남쪽이라 그런지 다시 해가 뜨겁게 느껴졌다. 일단 여기는 동네 한 바퀴만 돌아보려고 왔기 때문에 따로 관광 정보를 찾아보진 않았다.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있었고 지나가는 행인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직 오전이어서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한국의 시골 풍경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강을 따라 올레길 코스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건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나와있다. 실제 올레길을 걸어본 리뷰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다리까지 일단 가보기로 했다.
한 40분 정도 걸었을까 마을의 번화가 비슷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여러 가게들이 작게 작게 있었고 다니는 사람은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중에 책방이 보여서 들어가 보았는데 연세가 꽤 있으신 할아버지께서 혼자 지키고 계셨다. 여기 또한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이 넓은 마을에서 이런 가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건지가 궁금해질 정도.
이즈미를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특색 있는 컬러풀한 하수도 맨홀 뚜껑을 보았는데 왜 그 전 여행지에서 사진을 안 찍었나 생각이 갑작스레 들었다. 후회도 밀려오면서... 그러나 대신에 나는 그림을 그리며 모으고 있으니 그걸로 퉁치자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넘어갔다.
이즈미가 물과 관련된 마을이라고 얼핏 들었는데 옆에 지나가는 냇가의 물이 엄청 맑았다. 이 물에 발을 담가보고자 내려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가끔 길을 찾아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잡초가 엄청나게 자라 있었다.
그냥 나와있는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중간중간 구글 지도로 위치를 확인하며 열차 시간에 맞게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남겨둬야 했다. 이곳도 작은 마을이지만 신사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옛날 주택부터 세련된 디자인의 집들이 많이 보였다. 진짜 한국의 시골 풍경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걸어가면서 계속 받았다.
대략 한 바퀴를 거의 다 돌았을 때쯤 편의점에 들려 물 한잔을 구입한 뒤 편의점의 왼쪽 길로 갈까 오른쪽 길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왼쪽 길로 가기로 했는데 이 길이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좋은 레스토랑을 발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차역 쪽으로 가던 중 레스토랑 간판이 눈에 띄었고 배가 고플락 말락 하던 차에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점심 메뉴가 500엔이라는 점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사실 대부분이 이즈미를 갈 일도 없겠지만, 혹시나 오게 된다면 이 레스토랑을 추천한다. 점심메뉴를 판매하며 보통 500엔선으로 음식들이 이뤄져 있다. 옛날 음식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지만 가격 대비 양과 맛이 너무나도 괜찮기 때문에 추천한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정말 예스러운 느낌이 많이 나는 곳이었다. 또한 생각보다 일본인들이 많이 앉아있어서 분명 이 집이 맛집이다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주었다. 일단 배부르게 먹는 게 나에게 중요했기 때문에 가장 기본인 치킨가스 세트로 시켜 주문했다.
그 맛은 500엔짜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대단한 음식이었다 물론 1000엔짜리 이상을 먹으면 또 달라지겠지만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여러 가지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식당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식당 그림도 한 장 그린 뒤 유유히 빠져나왔다. 아까와 다른 길로 돌아가면서 이 작은 마을의 분위기를 눈에 담기 위해 천천히 걸어갔다. 물론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이곳에 올리진 않았다.
그렇게 점심을 다 먹고 마을 반 바퀴 정도를 돌고 2시 28분 기차를 타고 다시 구마모토로 이동했다. 이렇게 마을을 둘러봐도 신칸센으로 타고 가면 금방. 아직 하루의 반 정도나 남아 있었기 때문에 구마모토로 가서 남은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도시에 황금빛이 들기 시작했다. 일단 구마모토에서 아케이드 거리를 둘러보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 가보았다. 그리고 이곳에 마트가 또 어디 있는지 구글 지도를 봐가며 찾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찾을 수 없었다. (흑 내 도시락...)
그리고 전철을 다시 타고 A선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마지막 정거장을 가면 무엇이든 볼 게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나에게 보였던 건 중고품 판매 전문점이었다...
혹시라도 무엇인가 있을까 들어갔다가 결국 한 시간 동안 그곳에서 나올 수 없었고 나올 때 내 손에는 이미 무엇인가 들려있었다.
일본에는 영화 팸플릿이라는 것을 따로 제작해서 판매하는지 이때 처음 알았다. 단순히 포스터가 아니라 영화 콘셉트이나 소개 같은 것을 몇 페이지의 팸플릿으로 만들어 판매를 하고 있는데, 이걸 중고품으로 권당 싸게 팔고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 5개를 골라 구입했다. 그렇게 나오니 해는 더 지고 있었다.
공원은 생각보다 엄청 넓었으며 물이 너무나도 깨끗해서 그 위에서 아이가 물장난을 치며 놀고 있을 정도였다.(부럽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이 공원 안에서 보트 배도 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렇게 큰 공원을 적당히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사진을 찍고, 동물들을 만나게 되면 주인들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왔다.
그렇게 공원까지 둘러본 뒤 숙소 근처에 마트를 하나 찾아냈는데 그곳에 들려 간단히 먹을 간식거리들을 구입한 뒤에 숙소 아래층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이 식당은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이었는데, 손님이 많진 않아 조용한 식당이었지만 맛은 정말 최고였다. 가격도 나오는 음식에 비해서 적은 양이 아녔기에 맛과 가격까지 다 최고였다. 일본 여행하면서 맛있었던 음식 중 탑 3안에 들 정도이니깐.
다 먹고 난 뒤 음료와 달달한 디저트도 제공이 되었다. 다음에 구마모토를 또 가게 된다면 여기는 무조건 들릴 생각이다. 혹시나 궁금하신 분들은 지난번에 링크 걸었던 구마모토 숙소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저녁도 마치고 숙소로 올라와서 정리하고 쉬고 있는데 오늘 새로 온 게스트 한 명이 나의 꿈을 자기 노트에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인이었던 그녀는 일본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꿈을 적고 모아가지고 다닌다고 설명해줬다. 일본어를 다 쓸 수 없었기에 한글로 간단하게 쓴 뒤 일본어로 번역해 일본어로 다시 한번 적어주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지만 뭔가 내가 내 꿈을 남에게 적어서 보여주니 다시금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구마모토에서 2일도 마무리했고 내일은 드디어 가고 싶었던 아소산을 가는 날.
어떤 여행이 될지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전차 이용권 - ¥500
간식 및 아침 - 카드결제 별도(¥958)
저녁 - ¥880
점심 - ¥500
물 - ¥108
총지출 -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