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달과 남자는 피시방이 보이는 길 건너편 버스정류장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한낮의 햇빛은 아직 따가웠다. 버스에 사람들이 우르르 타고 내릴 때마다 둘은 한쪽으로 몸을 나란히 기울였다.
“매니저 자식 언제 오려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무료한 듯 중얼거렸다.
“아직 멀었어요. 다 저녁때나 새벽에 올 때도 있었는데요. 게임이 영 안 풀리면 모를까. 근데 또 그러면 와서 얼마나 지랄을 떨던지…….”
호달은 덩치만 큰 어린 녀석들을 부하처럼 끌고 다니며 조폭 흉내를 내던 매니저를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너도 참 답답하다. 까짓 알바야 그만두고 새로 찾으면 되지 뭣하러 견디고 있어.”
“말이야 쉽지. 고졸에 기술도 체력도 없는데 어디 간들 별다르겠어요.”
날씨만큼이나 지지부진하고 맥 빠지는 대화가 띄엄띄엄 오갔다.
“그런데 왜 하필 벤 존슨이에요?”
문득 생각났다는 듯 호달이 남자에게 물었다. 직사광선을 받아 발갛게 익은 앞이마를 무가지로 훨훨 부채질하던 그가 반색을 했다.
“실은 내가 육상선수 출신이거든. 이거 봐, 아직 탄탄하지?”
남자가 헐렁한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깡마르게 보였던 그의 몸은 생각보다 탄력 있었다.
“이래 봬도 내가 전국 소년 체전 단거리 우승자였어.”
호달의 반응이 심드렁하자 그는 근육이 도드라지게 힘준 다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은근한 목소리로 자랑을 덧붙였다.
“덕분에 맨 앞줄에서 올림픽 경기 참관까지 했다니까. 88서울올림픽 알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