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깊숙이 숨어있는 것도 아닌데 여간해서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그런 곳 말이다. 영화 <해리포터>를 보았다면 해리와 친구들이 호그와트행 열차를 타던 9와 3/4승강장을 떠올려 보면 될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다니는 승강장 한 쪽의 마법사만을 위한 출입구. 현실에도 그런 곳이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달리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큰길가에 있는 그 이상한 나라를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이 많은데다 일부러 찾아갔다가 헤매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찾기 힘들지만 그래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방문하고 싶다면 몇 가지 기억해야할 말이 있다.
첫째, “모든 모험은 첫걸음을 필요로 하지.”
어느 날 우연히 토끼굴에 빠진 앨리스가 모험을 시작하며 한 말이다. 우리에게 책 읽기란 어느새 모험 같은 것이 되었다.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며 바삐 걸어가는 토끼씨처럼 시간에 쫓겨 걷는다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상가가 늘어선 거리의 건물 귀퉁이,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좁은 유리문과 같은 폭의 차양, 간판은 책으로의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된 사람 눈에만 띄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파란색 줄무늬 차양 위 흐릿한 글씨의 간판은 직접 보고도 책방이 맞나, 들어가도 되나? 싶은 생각에 문을 열기까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출입구의 손잡이를 잡았다면 망설이지 말고 활짝 열어보시길. 참! 문이 열리는 시간은 수요일에서 토요일 오후 3시에서 10시까지이나 닫는 시간은 주인장 재량이니 잠겨있다고 실망하지 말고 꼭 다시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모든 모험에는 첫걸음이 필요하므로.
둘째, “불가능한 것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에요.”
문을 열면 토끼 굴처럼 좁고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오래된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계단을 올라갈수록 가까워지는 천장에는 누군가 훅 불어 올린 듯 책들이 매달려있다. 낡은 풍금과 앨리스 포스터 앞에 이르렀다면 숨을 크게 한번 쉬고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진짜 문을 열면 된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곱슬머리에 모자를 쓴 주인장은 2007년에 은평구에 ‘이상한 헌책방’을 열었다. 벌써 13년. ‘운영했다’는 말보다 ‘견뎌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힘든 때도 많았다는 그의 오랜 노력과 정성이 책방 곳곳에 스며있다. 주인장은 문학, 역사, 철학, 예술에 관한 책을 하나하나 직접 읽어보고 선별하여 진열한다. 그가 손글씨 메모로 붙여 놓은 책 정보와 읽기 난이도, 짤막한 소개 글 덕분에 낯선 책을 대할 때의 긴장감을 덜고 내게 맞는 책을 고르기 좋다.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 전집은 하나로 묶어 판매하는데 가격이 합리적인 데다 간혹 한두 권만 구하지 못해 서운할 일이 없으니 마치 쉽게 얻는 보물 같다. 사실 일단 책방에 들어섰다면 주인장이 미리 개척해 놓은 길을 따라 돌아다니며 느긋하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 책방에는 분야별, 작가별로 정리된 고서와 원서, 초판본이 포함된 책들과 예술관련 잡지들, 클래식 LP판 뿐 아니라 오래된 책의 일러스트를 활용한 빈티지 액자까지 시간의 축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결과물들이 즐비하다. 제일 먼저 모험을 시작한 주인장의 행로가 궁금하다면 그가 문학과 책읽기, 헌책방에 관해 쓴 열권이 넘는 저서 살펴보면 된다. 올해도 그는 자신의 모험담을 담은 책을 한 권 발표했다.
셋째, “이건 비밀인데……멋진 사람들은 다 미쳤단다.”
이미 발견한 보물들을 넘어서 모험에 좀 더 깊이 빠져들고 싶은 이들을 위해 주인장이 마련해 놓은 것이 있다. 한 권의 책을 깊이 읽는 ‘한책 읽기’와 함께 읽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막독(막막한 독서모임)’, 바흐 음악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평균율’과의 LP감상회, 간간이 열리는 영화상영, 북토크가 그것이다. 한가지 더! 책방 안의 제본 공방에서는 헌 책 재장정 및 제본, 식물 세밀화, 북바인딩, 수제 마블링을 배울 수 있다. 원한다면 누구나 멋지게 미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다.
책방 모험을 마친 후, 주인장이 수집한 앨리스 관련 책과 다양한 소품까지 구경하고 나면 선물이 있다. 그가 손수 그린 마을지도와 수제 마블링 책갈피다. 그에게는 책방 밖 마을이 탐험해야 할 이상한 나라인 걸까? 출입문 옆 낮은 상자에는 이상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남겨 놓고 간 흔적이 있다. 엽서와 수첩, 필기도구, 빨대 등 종류도 다양하다. 필요한 것은 아무 거나 가지고 갈 수 있지만 다음에 올 때 내 것을 하나 놓고 가야한다. 가져갈 것을 고르다보면 곧 시작될 모험을 기다리는 물건들의 미묘한 설렘을 느낄 수 있다. 신비한 무늬의 마블링과 보물지도처럼 말아 쥔 지도, 나와함께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게 된 물건과 책들을 들고 책방의 계단을 내려온 순간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말이 있다.
어제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지금의 난 어제의 내가 아니거든요.
길을 걷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발견했다면 반드시 그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시길 바란다. 어제, 아니 들어가기 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 나오게 될 테니.
*이 글은 2020년 은평문화재단 《지역문화네트워크 프로젝트》 '우리동네 숨은 명소 발굴하기'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