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사실은 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휴일을 늘린다기보다 한주의 고비에 잠깐 쉬어가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일주일에 꼬박 6일을 일하던 때에 비하면 한가롭기 그지없는 생각일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된 후 사람들은 휴식도 업무처럼 최고의 성과를 내야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더 맛있는 것, 더 재미난 것을 찾아다니다보면 어느새 월요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쉴 시간을 갖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열성적인 업무와 휴식에서 떨어져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 2018년 5월 은평구에 문을 연 카페 FLOT. FLOT는‘흐름, 물결, 물 위에 떠있는’등의 의미를 가진 불어이다. 재미있게도 영어로는‘아군의 최전선’이라는 다소 전투적인 의미를 가진 낱말이다. 카페의 젊은 사장님은 이곳을 ‘녹번동 틈 사이에 생겨나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가며, 다양한 변화로 거센 파도를 일으킬 공간’이라 소개했다. 과연 카페 FLOT는 녹번역과 역촌역을 잇는 큰길 중간쯤 골목 틈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까닭에 활짝 열린 초록색 대문과 아담한 마당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카페는 마당을 반 바퀴 돌아 들어가는 구조이다. 짧지만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입구가 원색의 줄무늬 옷을 입은 나무며 화분, 감각적인 장식물로 꾸며져 있었다. 들어갈 때는 몰랐지만 카페를 나오며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 있다. 장식의 재료가 타일, 거울, 문틀이나 꽃무늬 커튼, 심지어 냄비 같이 가정에서 흔히 쓰이는 물건이라는 점이었다. 덕분에 집에 가면 나도 한번? 하는 의욕이 불쑥 솟으려고 했지만 재빨리 눌렀다. 그랬다가는 한동안 애쓰는 휴일을 보내야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FLOT 내부의 첫 인상은
무척 독특했다. 상업화된 여느 매장과 달리 크기와 모양, 색이 제각각인 테이블과 의자, 각종 소품들이 한때는 거실과 큰방, 작은방이었을 곳에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었다. 익숙함과 생소함, 오래 묵은 따뜻함과 세련된 감성이 한 공간에 혼재하면서도 산만하지 않고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들뜬 기분으로 주문하고 자리를 찾기 위해 내부를 둘러보았다. 아치형 통로가 뚫린 벽으로 구분된 공간마다 분위기가 달랐다. 유독 눈길을 끈 곳은 이인용 테이블 두 개가 겨우 들어가 있는 작은 방이었다. 커다란 창 앞에 덩굴식물이 심긴 화분과 촛대, 스탠드, 거울 등이 놓인 콘솔형 테이블이 때마침 쏟아져 들어온 햇빛을 받아 화보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맞은편에 전면 창으로 안마당이 훤히 내다보이는 공간 역시 매력적이었다. 층고가 높은 벽과 천장은 마감 하지 않은 시멘트 벽돌과 목재로 자연스러움을 살리고 대신 곳곳에 포인트 장식과 창을 두었다. 한쪽에 다락방처럼 남겨놓은 2층과 그곳으로 통하는 계단에 차곡차곡 놓인 여행 가방도 보는 이에게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적당히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물건들이 어느 한구석 허투루 놓여있지 않은 이곳에 흠뻑 빠져있을 즈음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등받이가 푹신한 의자와 은은한 조명이 있는 창가에 앉아 생강, 감초, 강화, 레몬그라스, 오렌지껍질을 블렌딩한 투메릭 진저티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맑고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사실 FLOT의 메뉴들은 시간을 두고 하나씩 맛보고 싶을 정도로 제각기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천일염을 올린 플로커피와 소금빵은 수수하고 편안한 맛 속에 숨은 강한 끌림이 이곳의 분위기와 꼭 닮아있다. 복숭아와 자두 철에만 선보이는 피치멜랑쥬, 하겐다즈 아이스크림과 국내산 팥이 들어간 팥쉐이크, 얼핏 보면 새싹 돋은 화분 같은 제주 보리미숫가루와 그날그날 직접 구워내는 빵과 케이크도 변신을 거듭하며 기분 좋은 설렘을 준다. 단, 모두 수제 메뉴라 수량이 한정적이다. 은평구 주민이라면 사장님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메뉴 소식을 보고 때맞춰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대개 오픈 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10시까지이고 매주 수요일이 정기 휴일이지만 가끔 카페 일정에 변경이 생기기도 한다. 이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리 공지가 되므로 확인해 보아야 한다.
이처럼 잔잔한 변화로 일상에 기쁨을 주는 FLOT는 가끔 색다른 시도를 한다. 카페를 갤러리 삼아 작가의 개인전을 여는 것이다. 2018년에는‘your blues’라는 주제로 bora_vora 작가의 사진전을, 2019년에는 타샤변 작가의 개인전을 한 달간 진행했다. 직접 보지 못하고 놓친 전시가 아쉽지만 앞으로 FLOT가 시도할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있기에 기다려보기로 했다.
FLOT에는 일주일을 꽉 채워 열심히 사는 이에게 필요한 가깝고 안락하며 신선한 쉼이 있다. 숨이 차게 바빴던 날, 혹은 가만히 있어도 지치는 날 녹번동 틈 사이 작은 FLOT에 들러보자. 그곳에는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차를 내리고 빵을 굽는 누군가가 있다. 나는 마음에 드는 테이블에 앉아 꽃병에 소복이 담긴 꽃을 바라보거나 창밖의 선선한 마당, 차곡차곡 쌓인 여행가방과 따뜻한 조명이 비추는 장식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 부드러운 위로의 물결 위에 떠 있다 보면 집으로 돌아갈 때쯤엔 파도 같은 기쁨이 내 몸을 가볍게 밀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은 2020년 은평문화재단 《지역문화네트워크 프로젝트》 '우리동네 숨은 명소 발굴하기'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