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책방에서 만나요

- 안산 무늬책방

by 이찬란 Nov 08. 2020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다. 이제 곧 겨울이 오려나 보다. 곰도 아닌데 날이 추워지면 겨울잠 모드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따뜻한 실내에 웅크리고 있어도 진짜로 겨울잠을 자는 것은 아니기에 따분하기 그지없다. 따뜻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조금은 유익해서 겨우내 야금야금 즐길게 뭐 없을까?


 안산 상록수역과 한대앞역의 중간쯤
 주택가 골목의 무늬 책방


  책방과 사장님의 이름이 같다. 사장님 박무늬씨는 안산의 대형 서점 안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책을 두 권이나 낸 작가이자 독립출판사 ‘머쓱’ 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의 두 번째 책 《오늘도 손님이 없어서 빵을 굽습니다》에는 실제로 손님이 없던 카페에서 ‘오늘의 스위츠 프로젝트’ 라는 이름으로 매일 다른 빵을 만들어 파는 과정이 담겨있다. 책에 등장하는 ‘잘 다녀와 머랭, 자만했지뭐양~갱’ 같은 재미난 이름의 빵을 맛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책방을 찾았다. 슈퍼와 상점, 주택이 오밀조밀 붙어있는 골목 한 가운데 시원한 전면 창과 ‘책, 꽃, 커피’ 라고 쓰인 흰색 간판이 금방 눈에 띄었다. 책과 꽃과 커피라니 너무 잘 어울리지 뭐양  헤헷.     


  얼핏 보면 카페 같지만 무늬책방은 뚜렷한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 서점과 달리 독립서점에는 운영자의 취향이 반영된다. 자신이 직접 읽어보고 좋았던 책, 권하고 싶은 책을 골라 진열하고 독자가 요구하는 책을 찾아 들여놓기도 한다. 상업성을 우선하는 일방적인 책 판매와 달리 적극적인 소통의 방식으로 운영되는 서점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독자는 미처 몰라봤던 양서나 독립 출판물을 발견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박무늬 대표는 직접 고른 책 옆에 일일이 손글씨로 추천사를 적어 붙여놓았다. 이모티콘처럼 앙증맞은 그림이 곁들여진 글을 보고 있자니 모든 책이 다 욕심난다. 책방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인스타그램과 홈페이지, 유튜브를 통해 큐레이션을 볼 수  있다. 한가지 더, 메일로 신청만하면 책방 소식, 모임 후기, 입고한 책의 비하인드 이야기, 책방 지기의 단상들, 꽃과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수요일의 편지로 보내준다기에 나도 얼른 신청했다.  

    


  무늬책방에서는 책을 사면
핸드드립 커피나 차를 무료로 준다

  


오프라인 서점이 온라인 서점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책을 사서 바로 읽고 싶은 마음을 알기 때문이란다. 편한 자리에 앉아 새 책을 읽고 있으면 한쪽에서 조용조용 차를 만들어 옆에 놓아주는 정성스러움이 온라인에 있을까. 가장 쉬운 커피조차 머신을 사용하지 않고 핸드드립과 모카포트로 시간을 들여 내려주니 따로 차만 마시러 와도 기분 좋을 듯하다.


  책은 원하면 포장도 해 준다. 레몬 그림이 그려진 책갈피를 끼워 환한 노랑 종이로 포장해 주는 책. 아무래도 노란색이 책방의 시그니처인 모양이다. 창 쪽에 길게 놓인 테이블에 이미 포장되어 있는 책이 있어 살펴보니  ‘블라인드 북’ 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엽서에 ‘사랑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 혹은 아픔을 직시할 용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로 시작하는 짧은 메시지와 가격 적혀 있고 안에 든 책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따금 내 마음을 알아주는 책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골라보면 어떨까싶다. 포장을 열어보기 전엔 내용을 알 수 없으니 나 자신에게 선물 받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블라인드 북을 한 권 고르고 그 위에 책방에서 파는 꽃을 올리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선물을 할 수도 있겠다.     


  책방 소식 전하랴 판매하랴 바쁠 만도 한데 문 연지 3주차에 벌써 모임이 여러 개 열렸다. 매주 화요일 ‘한국 여성SF작가 소설읽기’, ‘수요일 저녁 에세이 읽기모임’, ‘F라이데이 F레드릭 와인 모임’까지. 너무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박무늬 대표는 “제가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니 이곳에서 좋아하는 걸 하려고요.”라고 대답한다. 그는 SF는 잘 모르는 분야라 도전하고 싶어서, 에세이는 책 읽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서, 와인은 이탈리아에서 지내는 동안 참여했던 와인 모임의 연장으로 다양한 와인을 맛보며 동화 속 생쥐 프레드릭처럼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에는 함께 모여 영화를 보고 작은 파티를 열 계획이라고 말하는 얼굴에 생기가 가득하다. 일이 아닌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 이렇구나싶어 새삼 부러운 동시에 모임에 함께 할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조용하고 심심한 동네에 문득 생겨난 무늬책방은 어느 날 보도블럭 틈으로 삐죽 얼굴을 내민 꽃처럼 싱그러웠다. 마스크를 쓰고 시작한 겨울이 어느덧 되돌아오는 동안 서서히 메말라가던 일상이 물기를 머금은 기분이다. 부디 이 고마운 책방이 오래오래 골목을 지켜주길 바래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헌책방, 이름은 살롱 도스또옙스끼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