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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란 Jun 12. 2024

영혼과의 짧은 인사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어디에 머물게 될까. 자신의 무덤가 근처나 생전 애착하던 곳? 혹은 정해진 장소 없이 이곳저곳을 떠다니게 될까?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 않지만 할머니를 떠올릴 때면 죽음 이후의 세계가 궁금해지곤 한다. 이곳에서는 그곳을 볼 수 없는데 그곳에서는 우리를 볼 수 있는지, 마음만 먹으면 모습을 바꾸어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지 같은 생각도 한다. 다소 만화 같은 발상이긴 해도 그런 생각은 적잖은 위로를 준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 유난히 길게 눈앞을 맴도는 나비를 향해 할머니! 하고 불러보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고 나면 딱히 힘들지 않았는데도 왠지 울고 난 듯 마음이 말개진다.    

 

올 초, 첫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설에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할머니 산소를 찾았다. 돌아가신 지 이십 년이 훌쩍 지나는 동안 첫 방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자리에 누워있던 할머니는 손녀에게 손을 붙들린 채 “여가 누구여?”하고 묻고 또 물었다. 할머니가 물을 때마다 나는 “윤이 둘채 딸이여.”하고 대답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있었지만 잡아야 할 손이 더 있는 것처럼 연신 서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고 나서 일 년도 안 되어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나는 백일을 앞둔 아기를 돌보느라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해서인지 할머니는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내 꿈에 나타났다. 꿈에서는 아프기 전의 단정하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엄마 보러 온 지 육 개월도 넘은 것 같아.”

산소에 가까워지자 나의 엄마 윤은 아이처럼 설레어 했다.

“맨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면서 왜 자주 안 왔대? 먼 거리도 아니구만.”

“니 아빠가 가자고 안 하는데 혼자 어떻게 와, 내가. 운전도 못 하는데.”

“택시 타고 오면 되지.”

“아우~야, 택시비가 얼만데.”

“보고 싶은데 택시비가 문제야? 엄마가 할머니 보고 싶다는 거는 다 거짓말이야.”

엄마에게인지, 아빠에게인지 아니면 나에겐 지 불쑥 심통이 나서 나는 괜한 성질을 부렸다.

“그래, 그렇게 오면 되는데 잘 안되더라.”

“요 앞에서 유턴해서 오른쪽 첫 번째 길이다.”

풀죽은 엄마 목소리 위로 아빠 목소리가 겹쳤다. 아빠의 안내에 따라 여동생이 능숙하게 차를 움직였다.

     

커다란 골프장 건물 옆으로 축대를 쌓은 야트막한 산이 보였다. 엄마가 앞장서고 여동생과 아빠, 내가 차례로 뒤따랐다. 언제 챙겼는지 아빠 어깨에는 길다란 갈퀴가 척 얹혀 있었다. 모르는 이들의 무덤을 지나는 동안 비석도 없이 방치된 묘와 모양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깎여나간 봉분을 몇 개 보았다. 저런 건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구나 싶어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해가 잘 드는 곳에 모신 할머니 무덤은 깔끔한 편이었다. 우리는 물티슈로 돌상을 닦고 몇 가지 음식을 차렸다. 전과 과일, 소주, 그리고 믹스커피. 믹스커피는 생전 할머니가 좋아하던 거라며 아빠가 직접 타 보온병에 담아온 것이었다. 첫 책을 할머니에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미처 챙기지 못 한 나는 아쉬운 대로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던 글을 찾아 상에 함께 두었다.

늘 우리 절을 받던 엄마와 아빠가 나란히 서서 절을 했다. 동생과 나도 뒤따라 절하고 차례로 소주 한 잔씩을 올렸다.

“커피는 당신이 올릴래?” 엄마가 묻자, 쑥스러운 표정의 아빠가 종이컵에 가득 담긴 믹스커피를 무덤가에 고루 뿌리며 말했다.

“어머니, 많이 잡사요. 커피 맛있죠? 대접으로 드시고 싶다 하셨잖아요.”

사위가 타 주는 커피니 두 배로 맛있겠다는 딸들의 너스레에 엄마가 “시골말로 아이고 맛있구라, 하겠지.” 하며 웃었다.

     

겨울치고는 따뜻한 햇빛 때문인지 명랑해진 우리는 은박 돗자리를 깔고 앉아 할머니와 관련된 옛날이야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조잘대며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할머니, 그때 어쨌더라?” 하고 무덤에 대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는 듯도, 있는 듯도 했다. 어느새 아빠는 메고 온 갈퀴로 주변을 싹싹 쓸어내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저만치 떨어진 곳까지, 이따금 코와 눈 주변을 쓱 훔치면서 열심히 움직였다.

“아따, 우리 유 이덕씨가 귀한 딸 내준 보람이 있겄네잉.”

목을 쭉 빼고 어설픈 사투리를 내지르는 딸의 눈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아빠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만약에 영혼이 정말로 있다면 인정 많은 할머니는 백발이 된 딸과 사위의 등을 가만히 쓸어 주었을 것이다. 이십 년 만에 찾아온 손녀들에게는 괘씸하지만 예쁘다고 했을 게 분명하다.  

    

아빠의 수고로 한층 말끔해진 할머니를 떠나기 전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아빠는 마지막까지 이곳저곳을 살피며 튀어나온 잡초를 뜯어냈고 엄마는 손으로 봉긋한 봉분을 한참 어루만졌다. 나는 상에 올려두었던 휴대폰 화면을 무덤 이곳저곳에 바짝 들이밀었다. 문맹인 할머니가 내가 책에 쓴 당신 이야기를 읽지 못할 걸 알았지만 소리 내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신 ‘다음에 혼자 와서 읽어드릴게요.’ 하고 속으로 허튼 약속을 했다. “안녕, 할머니 잘 있어요. 다음에 또 올게.” 동생이 쿨하게 인사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는 중에 엄마가 바닥에 칵, 침을 뱉었다.

“엄마, 뭐 하는 거야! 남의 무덤 있는 데다가.”

동생과 내가 질색팔색하며 타박하자 앞서가던 아빠가 “야, 느이 엄마 축농증이 심해져서 그런 거야.”하고 편을 들었다.

“잘한다 잘해. 기껏 딸내미 왔다고 자랑할려다가 할머니 창피만 당하겠네.”

“그러게 말야. 무덤마다 돌아다니면서 딸 버릇없이 키워 미안하다고 밤새 사과하게 생겼어.”

“할머니 미안! 우리가 엄마 교육 잘 시켜서 다시 데리고 올게요.”

걷는 동안 잠깐 가라앉았던 마음을 짓궂은 농담으로 휘저으며 나는 다시 한번 할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못 본 시간에 비해 짧았던 만남이 그래도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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