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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란 Jun 26. 2024

전무후무할 가족여행 1





실현될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하는 약속들이 있다. 애초에 지킬 마음 없는 공염불이거나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지만 곧 잊어버리는 약속이 그렇다. 둘 다가 아니라면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해 지레 포기했다가도 불쑥 생각나 말이나 해보는 경우일 수도 있다. 가족이 한데 모이는 날이면 우리는 허황된 꿈을 꾸듯 그런 약속을 남발했다. 그중 가장 빈번한 건 가족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그때 걸어 다녔던 해변이랑 골목이 하나하나 다 기억 나.”

“한 번 더 가지 뭐.”

    

엄마는 십 년 전, 그러니까 내가 이혼하기 전 (이혼이라 쓰고 독립이라 읽는다) 모시고 갔던 보라카이를 두고두고 잊지 못했다. 살면서 했던 가장 마음 편하고 행복한 여행이었다고 했다. 지인들과 패키지 형태로 다니던 여행에서는 아내들이 남편들의 음주 가무와 일탈을 단속하느라 죄다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다녀와서는 경비 처리 문제며 각자의 이해 충돌로 다툼과 뒷말이 무수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짜인 일정에 따라 끌려다니는 일이 무척 피곤했는데, 가족끼리 가니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가고 싶은 데로만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단다.

 

그때 우리는 숙소와 비행기표만 예약해 두고 모든 일정을 현지에서 직접 해결했다. 물론 계획 없이 집 밖으로 한 발도 내딛지 않는 극 J인 나는 책과 인터넷을 통해 이미 한 달 전부터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느라 골머리를 앓았지만 말이다.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즐거웠다. 특히, 아빠는 첫날 저녁에 방문한 바비큐 식당에서 “디스카운트 오케이?”를 외치며 파격 할인을 성사시킨 후 더욱 적극적으로 현지인들과 소통했고, 엄마는 그런 남편을 뜯어말리면서도 사랑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전남편 m과 나, 딸아이도 오랜만의 휴식을 만끽했다.

     

이따금 좋은 추억으로만 곱씹던 보라카이 여행을 다시, 그것도 온 가족이 함께 가게 된 건 남동생 내외 덕분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부부는 의욕이 넘쳤고 겁도 없이 열네 명이나 되는 대가족의 여행을 추진했다. ‘정말? 가능할까?’ 하면서도 부모님이 더 나이 드시고 신혼부부에게 아기가 생기기 전에 다녀오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다들 동참하기로 했다.

젊은 부부는 비행기 티켓과 숙소 예약, 투어와 마사지, 콜밴, 픽업샌딩 등 인원이 많아진 만큼 복잡해진 일정 관리를 흔쾌히 도맡았다. 미안하고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부모님과 사남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까지 삼대가 함께하는 해외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의미심장한 기분이 들었다. 후회 없이 즐거워야지, 마음껏 다정해야지 다짐했다.

     

그러나 대가족이 한 번에 움직이는 게 마음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이른 새벽 공항에서 스마트 패스를 등록하고 짐을 부치면서부터 우왕좌왕 좌충우돌이 시작되었다. 누구는 화장실을 가야 했고 누구는 휴대폰 충전이 시급했으며, 졸린 사람, 배고픈 사람, 말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도 생겼다.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요구와 질문을 해결하느라 신혼부부의 얼굴은 급격히 핼쑥해졌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는걸. 비행기에 오른 이상 누구도 중간에 돌아갈 수 없었고 우리는 무수한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기며 공항에서 버스와 배를 갈아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해 짐을 풀고 나자 날카로워졌던 마음이 한결 잦아들었다. 인원이 많아서인지 내내 불안해하던 엄마도 그제야 들뜬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낯익은 장소를 짚어보았다.

“여기 마트 앞에 호수가 있었는데. 어머, 아직도 있네.”

“그럼 있지 어디 갔겠어? 저기 저 성당도 아직 있네.”

“진짜다. 어머머머 신기해.”

아빠와 엄마가 투닥대며 옛 기억을 되살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힘들어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팀으로 나누어 예약한 마사지를 받고 저녁을 먹은 후 신혼부부와 아이들은 시내로, 부모님과 우리 세 자매는 해변으로 나갔다. 일자로 쭉 뻗은 해변을 따라 걷는 동안에도 엄마와 아빠는 여전한 곳과 변한 곳을 찾느라 바빴다. 아빠가 “디스카운트 오케이?”를 외쳤던 ‘게리스 그릴(Gerry’s Grill)’은 확장 이전을 했고, ‘옐로우캡 피자(Yellow Cab Pizza)’ 와 ‘비치 헛 바(Beach Hut Bar)’는 그대로였다. 눈에 익은 장소마다 이야깃거리가 한가득이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언니와 여동생은 이미 들었던 이야기와 실제 장소를 맞춰 보며 바쁘게 시선을 움직였다. 엄마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우리 그때 길이 엇갈려가지고 너랑 나랑은 피자 산다고 서 있고 니 아빠는 마트 앞에 가 있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맞어, 그랬다 진짜.”

“m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진땀 뺐을걸.”

“그치…….”

그래, 이런 순간이 올 줄 알았다. 행복했던 여행의 기억 속에는 분명 m이 있었으니 부모님이 그를 떠올리는 건 당연했다.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일렬로 걸었다. 호객꾼들이 끊임없이 코팅된 투어 안내지를 들이밀며 “싸다, 싸다.”를 외쳤다. 그들을 피해 바다 가까이로 내려가 앉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밀려온 파도가 찰싹찰싹 소리 내며 발을 덮쳤다가 물러갔다. 그럴 때마다 발밑에서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많이 변했다.”

“십 년이잖아.”

“다음에 오면 또 변해있겠지?”

“에그, 우리는 죽어야지. 다음에 또 오면 되겠니.”

딸들의 나지막한 대화에 엄마가 농담같은 진담을 섞었다.

“또 와야지! 그러니까 이백 살까지 사세요.”

“그럴까?”

발가락을 오므려 빠져나가는 모래를 움켜쥐면서 우리는 어느새 또 공염불인지 허황된 꿈인지 모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컴컴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해변을 사진으로 찍어 m에게 전송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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