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면입니다만...
우리 화장품 가게는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다. 하단은 진열을 해서 가려 있지만, 상단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훤히 잘 보인다. 처음에는 매장 제일 안쪽에 계산대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작은 매장 가운데에 계산대가 들어가자 진열장을 놓을 곳이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계산대를 통유리와 붙어있는 출입구를 바라보는 쪽에 배치했다. 매장에 고객이 들어오면 바로 인사를 할 수 있고, 화장품 쇼핑을 마친 후에 계산을 하고 출입구로 바로 나갈 수 있는 구조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대를 출입구와 가까운 통유리 앞에 설치한 건 잘한 일이다.
매장이 한가한 시간에는 통유리 너머를 바라보며 사람 구경을 한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우리 가게에 오는 고객님이 없나 확인하는 것이다. 사람은 정보가 없을 때 더 불안하다. 같은 상황에서 정보가 주어지면 예상이 가능해서 덜 불안하거나 그 불안한 상황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통유리는 나에게 마치 정보를 물어다 주는 전서구 같다. 갑자기 비가 내리면 손님이 없어도 덜 불안하다. 왜 손님이 없는지 알기 때문이다. 유명한 운동경기가 중계되는 날이나 선거 개표가 있는 저녁에는 길거리에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인다. 그래도 괜찮다. 통유리를 통해 거리의 상황이 보이니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갈 수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계산대 위치를 잘 잡았다.
밖을 보고 있자면 행인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나 사교의 나라 미국에서 사는 MBTI 대문자 E인 나는 당연히 인사를 한다. 어떤 분은 함께 반갑게 목례를 한다. 어떤 분은 당황해하며 인사를 한다. 어떤 분은 놀라서 얼른 시선을 돌린다. 그래도 꿋꿋하게 눈이 마주치며 인사를 한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계산대에 앉아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남성분과 눈이 마주쳤다. 활짝 웃으며 목례를 했다. 그러자 그분이 가던 길을 멈추고 가게 문을 여셨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다가가 더 반갑게 인사했다. 그런데 그분은 대뜸 "저 아세요?"라고 물었다. 의외의 질문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 상황이 재미있기도 했다. 나는 솔직하게 "눈이 마주쳐서 그냥 인사드린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 후로 그분과 10분 가까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베트남 참전용사'라고 적힌 모자를 쓴 그분이 언제 미국에 왔는지, 어디에 거주하는지, 군대 동기들 근황까지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갈 때마다 내가 자꾸 인사를 하길래 혹시 아는 사람인지, 어디서 만난 사람인지 궁금했다고 했다. 얼마나 재미있는 인연인가? 계산대가 매장 안쪽에 있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인연이다. 통유리 너머 세상을 궁금해하지 않았다면 마주칠 수 없었던 인연이다. 인사와 호기심이 없었으면 닿지 않았을 인연이다.
어떤 인연이든 첫 순간은 초면이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만나면서 인연을 쌓아간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모든 인연은 만나는 지점이 필요하다. 텅 빈 가게를 지키면서 통유리 너머 행인에게 인사를 하는 사장의 본심은 고객 유치이다. 어떻게든 손님이 한 분이라도 더 오기를 바라서 인사까지 했을 것이다. 계획하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즉, 인사는 호객행위다. 그런데 신기하게 나의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잠깐의 눈 맞춤과 미소, 목례를 주고받다 보니 감사한 인연이 많이 생겼다. 상대방이 불편해해서 민망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반갑게 인사해 준다.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건넨 인사지만, 따뜻한 반가움은 햇빛처럼 유리를 통과해서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정도로 훌륭한 호객행위가 어디 있을까 싶다. 물론 당장 매출에 영향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매장 분위기와 이미지 구축에 장기적으로 영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매일 호객행위를 열심히 한다. 초면인 사람들과 구면이 되기 위하여! 구면인 사람들과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기 위하여! 이런 희망을 품고 호객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통유리 옆에 자라 잡은 계산대 덕분이다. 계산대 위치를 기가 막히게 잡은 나 스스로를 칭찬하며 나는 오늘도 인사를 건네며 호객행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