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들, 힘냅시다!
나는 행운아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표어를 몸소 실천한 우리 부모님은 딸 둘을 낳아 잘 기르셨다. 없는 형편에도 남부럽지 않게 정성과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난 원래 그냥 그런 건 줄 알았다. 나중에 역사공부를 하며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딸은 학교에 안 보냈다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지곤 했다. 당연하게 가방 메고 가던 학교가 새삼스럽게 특권처럼 느껴졌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건 예전 여성들의 삶을 생각해 보면 무척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원 없이 공부를 하며 살다 보니 강산이 바뀌어 이제 딸이 없으면 안 되는 분위기까지 형성되었다. 다들 딸을 낳고 싶어 안달 난 시대가 되었다. 나 어릴 때만 해도 엄마들은 아들을 낳고 싶어 했는데 말이다. 시대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여성의 권리와 직위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나는 행운아다.
이런 행운은 누려야 제 맛이다.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나는 일을 한다.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자아실현의 이유가 더 크다. 맞벌이하는 가정에서 자란 것도 영향이 있다. 우리 부모님은 남들이 알아주는 대단한 직업을 가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두 분은 참 근사하고 멋지게 보였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우리를 키운 부모님이 대단하게 보였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일을 한다. 내가 부모님 덕분에 누리는 행운을 내 자녀들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단지 돈을 버는 게 아닌,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 시간과 인생에 대해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직업을 전향해서 화장품 가게 사장이 되자, 세 아이의 반응이 확연하게 달랐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큰 아이는 별 관심이 없다. 자기 코가 석자이니 엄마 코까지 신경 쓸 겨를도 여유도 마음도 없어 보인다. 미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둘째 아이는 아주 행복해한다.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직업 중에 최고란다. 제일 자주 하는 말은 "엄마 가게 놀러 가도 돼요?"다. 우리 가게의 큰 손이다. 용돈의 대부분을 여기서 사용한다. 고마운 고객이다. 아직 어린 막내는 무척 괴로워했다. 아침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애초롭게 나를 바라보며 "엄마, 오늘 일 안 가면 안 돼?"라고 묻곤 했다. 어차피 자기도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집에 같이 있자고 조르곤 했다. 주말이면 "엄마, 오늘 일 안 가?"라며 뛸 듯이 기뻐한다. 이게 이렇게까지 좋아할 일인가 싶다가도 아직까지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아이가 고마워서 "우리 오늘은 이렇게 붙어있자."라고 말하며 꼭 안아준다.
일을 하던 안 하던 엄마는 용감하다. 생존을 위해 일선에 뛰어들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해 꿈을 고이 접어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기도 한다. 어떤 상황이든 자녀를 향한 엄마의 사랑과 헌신은 고결하다. 근데 막상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그렇지가 않다. 엄마는 피곤하다. 아이를 재우다 내가 먼저 잠드는 날이 대부분이다. 엄마는 바쁘다. 퇴근해도 여유롭게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할 틈도 없다. 엄마는 괴롭다. 예고 없이 아픈 아이를 베이비시터 손에 부탁하며 출근할 때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치열한 전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패잔병처럼 온몸에 상처를 입고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면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와 온기가 내 상처를 덮는다.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도움 덕분이다. 일하러 가는 엄마를 힘들지만 보내준 우리 아이의 아량 덕분에, 엄마가 필요한 순간에도 기다려준 우리 아이의 배려 덕분에, 부족한 엄마를 매일 봐주는 우리 아이의 사랑 덕분에 나는 오늘도 일을 한다. 그래서 나는 행운아다. 이런 행운을 누리는 모든 워킹맘들이 감사와 행복으로 일터와 가정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