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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Mar 07. 2019

악플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인터넷에서 몰매 맞아본 사연


얼마 전 유럽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친구네에 잠시 놀러 갈 일이 있었다. 한국보다 추운 지방에 사는 친구는 그 완두콩만 한 자취방에 북유럽식 벽난로를 고즈넉하게 설치해 놓았는데, 밤이 되면 타닥타닥 땔나무 타는 소리가 일품이었다. 늦은 밤, 장작불을 지피며 얼음이 달각거리는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있자니 어쩐지 고민 상담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할아버지와 소시지' 동화책을 펼쳐야 할 것 같았다면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따땃하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참나무 한복판으로 쿠깅호일에 똘똘 감싼 감자를 휙휙 던져 넣으며 짐짓 '그토록 소원하던 이민을 갔는데, 요즘도 고민이 있느냐?' 친구 녀석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잠깐 고민하더니 한결 진지해진 목소리로 운을 뗐다. '가이드 후기 평점을 낮게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민이야, 일종의 악플 같은 거지. 너도 오늘 내가 가이드하는 거 봤겠지만, 난 늘 똑같이 하려 하는데 아주 가끔씩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있네.'


오, 연고 하나 없는 만리 타향에서조차 '한국어 악플'을 신경 써야 하는구나. 새삼스레 진지한 친구를 보고 있자니, 위로는 커녕 '그 자유로운 유러피안은 대체 어디로 가셨나'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쓰고 보니 좀 악당 같다.) 하지만 친구의 표정이 생각보다 무겁고 어두워 이번만큼은 내면의 성악설은 잠시 접어두고 공감할 이야기가 없을지 요리조리 궁리해보았다. 그리고 나와 악플 사이에 있었던 옛이야기 하나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일은 내가 대학교 1학년, 철 모르던 새내기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학교 커뮤니티에 일주일 동안 추천수 1위를 찍고 악플 수백 개를 먹으며 소위 말해 '쥐어 터진 적'이 있었는데, 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기말고사가 거의 끝난 6월 중순이었다. 그 당시 미국 소설 수업 하나가 교수님 사정으로 종강이 엄청나게 늦었는데, 이 때문에 나는 남들이 다 놀러 갈 여름날, 새벽 4시 중앙 도서관 끄트머리 앉아 소설책과 씨름을 해야만 했다. 고작 두세 사람 앉아있는 도서관에서 꾸벅꾸벅 졸며 헨리 제임스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소설을 읽고 있으려니 차츰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이때 적당히 산책하고 돌아와 도서관에 엎드려 잤으면 좋았으련만 갑자기 동아리방에 있던 '사과와 과도'가 번뜩 떠올랐다.


대충 이런 그림


이 당시 나는 '과일 잘 깎아서 예쁨 받는 사위'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유치뽕짝인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 KBS 8시 주말 드라마의 영향이 무척 크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왜 '넝쿨째 굴러들어 온 당신'같은 드라마를 보면 '어머 김서방은 어쩜 이렇게 과일도 잘 깎아!' 하는 말이 들리고 '하하 어머님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죠!' 이런 식으로 응대하는 식상한 장면이 있지 않는데, 이것이 나에겐 '진짜 멋있는 장면'으로 느껴졌다.


아무튼 전공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고, 색다른 꿈에라도 한 발짝 가까워져야겠고 싶어 동아리방에 가 과도와 과일을 들고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대충 눈치를 살펴보니 500명 정도 들어갈 도서관에는 고작 3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심야에는 무단횡단이 횡행하는 것처럼, 나는 잠시 도덕적 아노미에 빠진 채 과도를 빙빙 돌리며 흥얼흥얼 구석 자리에 가 앉았다. 그리곤 사과를 쓱쓱 깎아 사각사각 먹으며 책을 봤다. 토끼 모양으로 깔끔하게 깎은 것이 대견하여 단톡방에 자랑하는 것도 물론 잊지 않았다. 그리고 1교시 시험을 치른 뒤 곧장 곯아떨어졌다.


그러니까 이만한데 3명 있었다고 보시면 될듯


저녁 무렵 일어나 보니 나는 인터넷 스타가 되어있었다. 카톡창을 보니 모든 학교 친구들이 '당장 학교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라!' 난리를 치고 있었다. 뭔 일이래, 눈을 부비며 인터넷을 켜자 '어제 중도에서 사과 깎아먹은 미X놈 보아라'라는 글이 메인에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사람이 순간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받으면 그 장면이 사진처럼 남는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이 장면이 그 대표적인 방증이다.


아무튼 내용을 읽어보니 어제 나와 같이 늦은 종강을 엉망진창 심경으로 견디던 세 사람 중 한 명이 내가 사과를 깎아먹는 모습에 무척 불편했던 모양이다. 전후 사정 다 들어보면 '뭐야 웃기는 놈이네' 넘어갈 수도 있는 일화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 앞뒤 맥락 다 자르고 본 나는 '새벽 4시에 과도를 빙빙 돌리며 도서관에 들어와 콧노래와 함께 사과를 깎아 먹는 도른자'였던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이게 그렇게까지 욕할 일인가 싶게 온갖 심한 욕을 다 들었는데, '세기말이니 별 XX가 다 있네', '정신병원 보내라', '싸이코는 퇴학시키자' 등등 아직도 하나하나 기억이 난다. 여기에 순간적으로 억울(?)했던 나는 '아니 잘못한 건 맞는데 사람도 없으니 구석에서 그럴 수 있지 않나요, 너무 심하게 욕하시는 것 같네요'라고 댓글을 달았는데 정신이 쏙 빠진 나머지 그걸 또 실명으로 달았었다. 이제 영문과 1학년 '중도에서 사과 깎아 먹은 애, 광섭'은 온갖 욕을 일주일 동안 계속 먹었다.


학교 커뮤니티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대학교 1학년이 그걸 알 턱이 없다. 일주일을 끙끙 앓던 나는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큰 맘먹고 또박또박 사죄문을 써 내려갔다. 사죄문에는 '예쁨 받은 사위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유준상이 너무 멋있어 보여 따라 하다 이런 참극을 벌였다', '앞으로 도서관에서는 젤리 한 톨 먹지 않겠으며 선배님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시길 빈다' 같은 내용을 꾹꾹 눌러 담았다.


사죄문을 올리자 진짜 신기했던 것은 그다음부터 사람들이 이 일을 귀여워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댓글에는 하나같이 '광섭아 담에는 나눠먹어라', '과일 깎는 거 나만 좋아하는 거 아니네' 등등 과일 깎는 방식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가 벌어졌다. 정신병원에 갈 일이었던 이 사건은 정말 언제 그랬냐는 듯 '1학년이 철 모르고 벌인 귀여운 사건'이 되었고 나는 그 뒤로 2년 정도 '사과남'이라는 별명도 가지게 되었다.


이때 내가 깨달았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악플을 단다는 것이었다. 욕을 먹는 일주일 동안 나는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그 사람들은 그냥 재미있는 일이 있으니 욕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해당 사건이 이제 '백기투항'덕에 흥밋거리가 못된다 싶으니 금세 다른 사건을 찾아 나섰다. 누군가 나를 욕한다면 내가 할 일은 '잘못한 것은 사과하고, 그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게 내버려 두는 것뿐인 듯싶네'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다시 유러피안 친구에게 말문을 열었다. 네가 가이드를 못한 것 같으면 댓글에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그런데 못한 게 없는 것 같으면 그냥 무시하고 내버려두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아무 생각도 없이 그 말을 하고 있을 테니까'. 이제 벽난로에서 한참 익은 감자를 꺼냈다. 친구는 '별 웃기는 일도 다 있네'라 말했지만 표정은 한결 수월해져 있었다. 이제 저 녀석을 다시 골려줄 차례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잽싸게 쿠킹 호일을 친구 등허리에 집어던지곤 구운 감자를 냠냠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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