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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Mar 06. 2019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뒷이야기

이 많은 전시는 누가 설치했을까


예전에 입담 좋은 교수님 한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이 세상에 모든 ‘쩌는 것’들은 누군가 뒤에서 정말 (소금에) ‘쩔었기 때문에’ 나온 것들이라고 말이다. 흔히 이 생각은 ‘호수 위 우아한 백조와 진흙탕 물장구 이론’으로도 유명한데 이 고루한 생각을 이제와 갑자기 떠올리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건 올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MWC)를 준비하며 그 ‘진흙탕 물장구’를 눈앞에서 아-주 생생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화장실 가는 것도 일이다


우선 전시의 뒷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화려한 앞면을 잠시만 살펴보자. 매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는 늘여서 말하면 Mobile World Congress의 약자인데 해석하면 (그리고 과장을 조금 보태면) ‘천하제일 모바일 대전’로 읽힌다. 이 전시회는 비범한 이름값에 걸맞게 전 세계에 다양한 모바일 기업들이 몽땅 참가하는데, 그러다 보니 차세대 모바일 제품을 공개하는 데뷔장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예를 들면 매해 삼성이 새로운 갤럭시 시리즈를 발표하는 장소 역시 이곳 MWC 전시장이었다. (고동진 사장님이 핸드폰을 들고 ‘디스 이즈 샘숭 갤럭시’ 하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다면 바로 여기다, 하지만 올해 갤럭시 폴드는 애플의 앞마당인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셨다고..)


대충 이런 느낌의 행사가 계속 있다


이렇듯 이 전시회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많다는 IT 기업들이 ‘우리가 제일 쩐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격전지인만큼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세계 각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아주 멋들어진 부스를 설치하며 잔치를 벌인다. 각양각색의 언론사와 신이 난 관람객들은 그 화려한 외양에 한껏 취해 기술의 진보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오색 창연 전시회’의 뒷면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제 본격적으로 번쩍번쩍한 전시회가 세워지기 전까지 파닥파닥 펼쳐지는 ‘진흙탕 물장구’를 3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해보자.




하나. 전시장 건축하기


전시 담당자가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눈앞에 뻔뻔스레 펼쳐진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전시장은 천장이 무척 높기 때문에 그 광경이 한층 을씨년스럽게 마련이다. 하지만 전시를 하는 업체는 이런 황량한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본인이 직접, 혹은 대행사와 힘을 합쳐 ‘앞으로 3-4일 동안 기거할 홈 스위트홈’을 지어야 한다. 따라서 현지 업체와 계약을 맺고 미리 주문했던 공사를 뚝딱뚝딱 진행한다. (한국에서 모든 걸 가져올 수는 없는 노릇이라 현지 업체의 도움이 필수다.) 이 일련의 과정은 보통 짧게는 3일 길게는 2주일까지도 걸릴 수 있으니, 작업량 자체는 생각보다 많은 편이라고 하겠다.


들어서자마자 바람이 쌩하고 분다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전시장이 원래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잘 보일 줄 알았던 간판이 오후에 들이친 햇빛에 가려 흐릿해질 때도 있고, 생각했던 것보다 공간이 난잡한 경우도 빈번하다. 가장 곤란한 상황은 주변 부스가 너무 화려한 나머지 우리 부스만 초라해 보이는 애잔한 경우인데, 이 상태를 그대로 놔두면 전시 기간 내내 옆 부스만 바글바글한 슬픈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에 무슨 수든 써야 한다. 때문에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조명 더 달자’ , ‘간판 바꾸자’, ‘이벤트 용품 사 오자’ 등등 온갖 종류의 유인책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썩인다.


모든 부스가 준비 때문에 난장판이다


둘. 전시용품 설치하기


전시장의 골조가 올라가고 부스들이 구색을 갖추기 시작하면 이제 하드웨어를 집어넣을 차례다. 전시장 별로 들어가는 하드웨어는 각양각색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커다란 모니터, 넙적한 태블릿, 최신 스마트폰이 대표적인 전시 용품들이다. 대개 모니터는 영상을 틀어놓는데,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은 시연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특징이라면 스페인처럼 눈 한번 깜짝하면 여권이고 뭐고 다 사라지는 나라에서는 한시도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말 1분만 한눈을 팔아도 눈앞에서 100만 원이 넘는 기계가 그냥 사라질 수 있다. 때문에 이런 디바이스들은 보통 튼튼한 보안장치를 붙여놓는데, 이 사실을 까먹고 멍충이(본인)처럼 힘으로 옮기려다가는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경보음을 들을 수 있다.


일단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디바이스를 가져온다


반드시 이런 IT기기만 하드웨어인 것은 아니다. 전시장에서 사용하는 하드웨어는 ‘관람객용 커피머신’, ‘소개 패널’, ‘리플릿’, ‘에코백’ 등등 다양한데, 이 녀석들은 소풍 전날 마냥 아무리 준비를 꼼꼼히 한다고 해도 한두 개가 꼭 빠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전시 담당자는 출국날 난리를 치며 공항에서 인쇄물 퀵서비스를 받아가거나, 스페인 현지를 뛰어다녀야 한다. (또르륵) 커피 머신이 갑자기 망가진다거나, 인쇄물에서 치명적인 오타가 발견되는 것은 덤이다. 아무튼 확인 또 확인만이 전시 담당자가 버둥대며 살길인 셈이다.

셋. 가이드 교육하기


하드웨어 설치가 끝나면 그다음은 자연스레 소프트웨어다. 이 말은 풀어쓰면 전시장에서 방문자들을 안내할 수 있는 ‘가이드’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뜻이다. 스타트업들 같은 경우는 ‘창업자’가 직접 본인의 서비스를 설명하기 때문에 (또 예산도 부족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교육할 일이 없지만, 상당수의 기업들이 ‘현지 가이드’를 고용한다. 이런 가이드들은 대개 현지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현지인’이나 ‘유학생’들인데 그만큼 활기차고 당찬 사람들이 많다. (아주 중요한 행사는 전문 가이드가 진행한다.)


현지 기업이 아닌 경우 가이드가 필요하다


현지 가이드들에게 교육하는 내용은 대개 전시하는 서비스에 대한 시시콜콜한 내용과, 지켜야 할 규칙들이다. 전시하는 서비스나 기술 관련 시시콜콜한 내용은 가이드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서 하하호호 수다 떨며 전달하면 되지만 전시장 규칙은 결이 약간 다르다.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따라야 하는 규칙을 처음부터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하게 안내하지 않으면 아직 나이가 어린 가이드들은 곧장 해이해져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방문자에게 실수를 하는 경우가 속출한다. 특히 방문객에게 불친절한 모습이 현지 대행사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가이드들은 눈물 쏙 뺄 만큼 크게 혼나게 되는데,  이런 불상사는 미연에 짐짓 못된 척을 해서라도 방지하는 편이 좋다. (혼나는 모습을 보면 괜히 옆에서 마음이 아프다.)


전시가 끝나면 모두 좋은 친구로 남는다




탄성이 나오는 전시회는 모든 전시 담당자가 각자 맡은 바 역할을 하며 하루 온종일 뛰어다녀야 간신히 달성할 수 있다. 오늘 열거한 3가지 사항 외에도 이번 MWC 전시에서는 정말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일일이 나열하기엔 너무 개인 일기장이 될 것 같다. 앞으로 어딘가 멋들어진 전시장에 가게 된다면 오늘 말씀드린 3가지는 한번 생각해봐 주시길. 지금 눈앞에 보이는 ‘짜잔!’이 만들어지기까지 누군가가 진흙 속에서 바둥바둥거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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