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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Mar 11. 2019

이상한 나라의 취준생

직장인이 벼슬이 아니듯 취준생도 벼슬은 아니에요

우리나라에는 학교를 갓 졸업하고 직장에 덩그러니 놓여진 따끈따끈 꼬마 사원들에게 특권이자 의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의 상담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꼬마 사원들은 모두 회사에서는 '넵! 넵!'거라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막둥이들이지만 학교에 있는 후배들에게는 '현직자'라는 명함이 있는 '대선배님'(?)들이다. 때문에 자연스레 이 다리 건너고 저 다리 건너 '취업 상담 요청'이 시시때때로 들어오게 된다.


대부분의 취업 상담은 '회사의 본모습(!)', '상세한 직무', '워라밸', '자소서', '면접 꿀팁' , '복리 후생', 일단 이 정도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미 상당히 절박한 취준생들은 위와 같은 질문들을 아주 상세히, 그리고 꼼꼼하게 물어보는데, 때때로 정말 간절해 보이는 취준생을 접할 때면 물음에 답해주는 나까지 괜스레 숙연해지곤 한다. 그런 만큼 더 신경 써서 알려주고, 마지막까지 짜내서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반 발자국 앞에 있는 사람'의 행동 패턴이라 하겠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다고 했던가. 수십 명씩 취준생을 접하다 보면 고대 이집트나, 중세 유럽에서나 있을 법한 기이한 상식이 당연한 분들을 까먹을-만하면 한 번씩 만나게 된다. 세상에는 바른 사람, 고운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으나, 오늘만큼은 반드시 그런 법도 아니란 사실을 조금은 '이상했던 사례'를 통해 소상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저도 현직자는 처음이에요.. 0_0


1. 나를 통해 자존심을 챙기는 분들


취업준비생 중 현직자를 통해 자존심을 챙기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현직자의 자기소개서나 소위 이야기하는 '스펙'을 필요 이상으로 상세히 물어본다. 그리곤 자신의 '스펙'과 견주어 본인이 더 뛰어난 부분이 있음을 '나에게' 어필한다. (대체 왜!?) 예를 들어 내 학점이 3.5라면 이 분들은 본인의 학점이 3.8 임을 강조하며 '저는 그간 학교 공부만 너무 열심히 했던 건 아닌가 싶네요' 하고 물어보는 식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대충 그분의 교우관계가 고비사막처럼 푸슬푸슬했겠구나 짐작이 가지만 어쨌든 촌스럽게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껄껄대며 얌전히 있는다.(부들부들)


또 다른 경우로는 회사 자체를 깎아내리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통신사에 다니는 나는 통신 판매 업무를 맡고 있지는 않지만 아주 잠시 체험해본 입장에서 그게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하고 고된 일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이때 무례한 질문자들은 '그런 폰팔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꺼내거나, '직무가 구리네요'라는 말도 자유자재로 하신다. 비록 애사심이라곤 아주 조금밖에 없는 나지만 생판 모르는 남이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을 깎아내리는 일이 듣기 좋지만은 않다. 아-주 가끔 이런 일들을 겪다 보면 취업준비가 얼마나 이 사람을 갉아먹었기에 이렇게 자존감이 낮은 분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속이 갑갑해진다.


2. 소개팅식 밀당카톡 하시는 분들


취업상담을 '한번 더 만나볼까' 고민되는 애-매한 소개팅 카톡마냥 뜨뜬 미지근하게 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소개받은 사람을 마치 '다산 콜센터'처럼 아주 띄엄띄엄 시도 때도 없이 이용한다는 것인데, 정말 정도가 지나친 경우가 한번 있었다. 이 분은 사람 좋게 '앞으로 자주 여쭤볼게요 ㅎㅎ'라고 말씀하시더니 그 뒤로 거의 매일 카톡을 하셨다. 자기 친구들 질문을 대신 물어봐주는 상담소 역할도 자처하는 분이었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근무시간에는 정신없이 바쁘고, 퇴근하고는 지쳐서 뻗어있다. (극히 일부의 정신력 갑들이 자기 계발(!)이라는 것을 한다.) 따라서 시간을 내 모르는 사람을 상담해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이런 분들은 그것을 잘 몰라 주신다. 추가적으로 이 분들은 내 쪽에서 연락하면 제때 답변을 하시는 적이 없다. 그러다 보면 '내가 무슨 업을 쌓자고 이 짓을 하고 있나' 싶어 '예절의 끈'이 끊고 난생처음 읽씹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3. 무리한 요구 하시는 분들


세 번째는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분들이다. 지난번에는 대화 중에 갑자기 잠깐 기다려달라고 하시는 분이 있어서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시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뜸 본인의 자기소개서를 들고 오셨다. 아 한번 읽어봐 달라는 건가 보다 싶어 파일을 열려고 하니, 방금 이야기했던 주의사항에 맞게 자소서를 '고쳐달라'고 말씀하셨다. 믿기지 않지만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 부모 형제 자식도 안 건드리는 게 '자기'소개서인데,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소서를 고쳐달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경우이며, 그걸 그대로 고쳐줄 거라 생각하는 건 얼마나 순수(?)한 마음가짐인가.


자소서를 고쳐달라고 하는 건 양반이다. 한 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다. 그분은 인사 부서에 지원하는 사람이었는데, 마침 내가 6개월 정도 그 부서에서 일한 적이 있어 사무실의 분위기와 귓동냥으로 들었던 업무 대해 자세히 알려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자 그분은 마치 쿨한 농담이라는 듯 '그럼 그분들께 제 얘기 좀 잘해주세요 ㅎㅎ'툭툭 부탁을 했다. 이건 또 대체 무슨 경우인가 싶었다.


그러지 말아요~




그래서 혹시나 그분들이 보실까 하여 '취업 상담 가이드' 하나를 아주 짧게 작성해본다. 누군가 '님, 지금 제때 말 못 하고 뒤에서 부들거리는 건가요?'라고 정곡을 찌르신다면 '그러네요'라고 슬프게 대답할 수밖에..


1. 상대방 존중해주기


답변하는 상대방을 존중해주시길! 이 말은 절대로 상대에게 아부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리고 내가 부탁하는 사람에게 당연한 예의를 갖춰서 말해달라는 것이다. 나를 낮출 필요도 그 사람을 높일 필요도 없다. 그냥 네이버 지식인의 유쾌한 질문자와 답변자처럼 '감사하다'는 관계 정도를 유지한다면, 웃기게 물어보든, 진지하게 물어보든 아-무 상관없다.


2. 미리 준비한 뒤 물어보기


질문은 사전에 어느 정도 준비한 뒤 인터뷰를 시작하시길! 이건 간단히 말해 '대답하는 상대방의 시간은 무척 소중하다'는 점을 주지하시면 된다. 예를 들어 마케터 직무에 지원하실 분이 준비도 제대로 안 하고 '고객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생각해보시라, 그 사람은 고객에게서 인사이트를 얻기도 힘들 것이고, 괜히 고객을 화나게 할 수도 있다. '나를 도와주겠다는 답변자'의 시간을 소중히 여길 때 가장 큰 도움을 받는 것은 질문자 자신이다.


3. 상식적인 도움 구하기


도움을 구하실 때는 상식적인 요청을 해주시길! 세상에 취업 관련된 부정은 아직도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단골 주제다. 남과 공정한 경쟁을 하고 싶다면 나부터 그런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취준생과 상담하기로 마음먹는 현직자들은 '1,2년 전 자신도 많이 힘들었으니 다른 사람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이러고만 싶어요.


글을 이렇게 궁상맞게 쓰긴 했지만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은 마음의 여유도 많이 없고, 상처도 많은 분들이 많다. 실제로 열 사람과 상담을 하면 8-9 사람은 '꼭 붙길 바래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사람들이다. 부디 많은 취준생들이 여러 군데서 도움을 받아 조그만 취업관문을 훌쩍 통과하시길, 글의 말미에서나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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