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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Mar 14. 2019

타임머신, 투명인간, 우주전쟁의 공통점

영문과생이 알려주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문학 이야기'


SF 장르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시간 여행?, 투명 인간?, 또는 외계인과의 전쟁? 이 모든 게 아주 좋은 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실상 오늘날 SF 영화를 생각한다면 이 세 가지 개념은, 마치 한국음식에 '다진 마늘과 진간장'이 들어가듯, 반드시 등장하는 필수 요소들이니까요. 오늘 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3가지 답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 합니다. 바로 이들이 가진 '공통점'입니다.


우선 가장 큰 공통점부터 말해 드려보겠습니다. 이 세가지 개념은 사실 단 한 명의 작가  'H.G. 웰스'가 쓴 세편의 소설 [The Time Machine], [The Invisible Man], [The War of the Worlds]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 위대한 아이디어들이 모두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H.G 웰스는 동시대 작가들(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J.R.R. 톨킨)에 비해 문장력이나 구성력은 부족했지만 독보적인 상상력 하나로 본인만의 영역을 새로 개척했던 위대한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혼자서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나요? 웰스 님


하지만 이 세 가지 소설의 공통점이 작가가 같다는 것 하나뿐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오늘 이야기는 첫 문단에서 벌써 끝나고 말았겠죠? 이제 조금 더 재미있고 신기한 '진짜 공통점'들에 대해서도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세 소설의 가장 재미있는 공통점은 두 번째 단어[머신, 인간, 전쟁]가 첫 번째 단어[타임, 투명, 우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타임 머신', '투명 인간', '우주 전쟁'이라는 제목의 앞, 뒤 단어에서 어떤 쪽이 더 중요해 보이시나요? 얼핏 생각하면 앞의 단어인 [타임, 투명, 우주]가 정말 중요해 보입니다. 타임 머신은 '시간'여행이 주제이고요, 투명 인간은 말 그대로 인간이 '투명'해질 때 벌어지는 일을 묘사한 겁니다. 마지막으로 우주 전쟁은 '우주'에 사는 미지의 외계인과 싸운 일대기를 묘사한 소설이구요. 그런데 웬걸, 세 소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실 뒤에 나오는 단어, '머신', '인간', '전쟁'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먼저 타임머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웰스가 '타임머신'이라는 소설을 쓰기 전에도 '시간 여행'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다만 그동안 등장했던 '시간 여행'은 종교색이 짙은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힌두교 신화인  '마하바라타'에는 신을 만나고 온 '라이바타' 왕이 미래로 이동한 이야기가 있구요, 가까운 예로 일본에서는 700년대에 쓰여진 일본기(Nihongi)에 '우라시마 타로'라는 어부가 300년 뒤 미래로 날아간 설화가 있습니다. 근대인 1800년대에도 웰스 이전에 벨라미라는 미국 작가가 120년 뒤 미래(서기 2000년) 대해 다룬 'Looking Backward'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었던지라 추천드립니다.)


발레미는 소설에서 서기 2000년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그렸습니다.


웰스의 타임 머신이 정말 특별한 이유는 '타임'에 '머신'이라는 장치를 더했기 때문입니다. 웰스 이전의 시간여행들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신의 뜻대로', '우연의 일치로', 혹은 '최면에 걸려 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이 미래로 이동하게 됩니다. 또 그 미래는 그가 가고 싶었던 미래도 아닙니다. 그저 '어쩌다 보니' 도착한 미래인 것입니다. 하지만 웰스는 '타임'을 '머신'으로 통제하면서, 시간 여행자가 본인이 가려고 하는 시대로 이동하게 해 줍니다. (물론 소설을 읽어보면 기계가 아직 저성능이라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그래서 사고가 납니다만, 원래 연대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 새로운 발상은 산업혁명 시대의 영국을 온몸으로 체험한 웰스가 인간이 '기계'로 '시간'마저 통제하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웰스의 머신 이후로 '의지에 따른' 시간 여행이 처음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가고 싶은 미래'로 가볼까?




두 번째인 투명 인간도 마찬가집니다. '투명'이 아니라 '인간'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우선 '투명'은 시간여행보다 훨-씬 역사가 깊은 아이디어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가장 오래된 투명인간 이야기라고 한다면 기원전 380년(!)에 쓰여진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한 '기게스의 반지' 설화가 있습니다. 리디아 왕국의 목동이었던 기게스는 우연히 갈라진 땅에서 '거인의 반지'를 발견합니다. 기게스는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손 안으로 돌리면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뛸 듯이 기뻐하지요. 다만 이 설화의 결말은 조금 비교육적인데요. 놀라운 힘을 손에 넣은 기게스가 왕비를 간통하고(!) 왕을 암살하여(!!) 스스로 리디아의 왕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기게스의 반지는 이후 니벨룽겐의 반지, 반지의 제왕으로 이어집니다.


'기게스의 반지'에서 '투명'의 주인공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반지'입니다. 반지의 신비로운 힘이 '기게스'를 투명으로 만들어줬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웰스의 '투명 인간'에서는 두 번째 단어, 즉 '인간'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이란 바로 '과학자'입니다. 소설 '투명 인간'의 주인공은 광학을 연구하는 의사인 '그리핀'인데요. 그는 오랜 화학 실험을 통해 신체의 굴절률을 공기의 굴절률과 똑같이 변형하여 '스스로의 노력으로' 투명한 사람이 됩니다. (물론 여기서도 완벽하지 않은 기술이 문제가 되어 원상태로 돌아가질 못합니다.. 또르륵) 이처럼 '투명인간'도 우연이나 신의 섭리가 아니라, 과학자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것'은 웰스의 생각이 최초입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투명 인간은 모두 본인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존재이지요.


실험을 통해 투명인간이 되는 '과학자' 그리핀




그럼 마지막인 '우주 전쟁'으로 한번 가보죠. 이미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이 '우주 전쟁'도 위 두 가지 사례와 똑같이 '우주'가 아닌 '전쟁'이 주인공입니다. 우주, 그러니까 여기서 '외계 생명체'에 대한 아이디어는 웰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어쩌면 나만 있는 게 아닐지 몰라 덜덜' 이라고 생각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인가 봅니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최초로 역설한 사람은 1500년대 이탈리아 천문학자 조르다노 부르노입니다. 그는 '우주는 무한하며 지구가 아닌 곳에도 생명체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수백 년(!) 앞선 주장을 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은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뽐내던 로마 가톨릭의 심리를 건드렸고 그는 화형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조차 그는 '불에 타는 나보다 나를 태우는 당신들이 더 떨고 있군'이라는 멋진 일갈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요.


그는 불에 타면서도 우주가 무한하다고 믿었습니다.


브루노의 주장은 위대한 것이었지만 외계인의 '존재'를 주장하는데 그쳤습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보다 고등한 외계 생명체가 우리를 침략하고 파괴하는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웰스가 최초로 해낸 것입니다. 그가 이처럼 '전쟁'을 전면에 내 세운 건 앞선 '산업 혁명 - 타임 머신', '과학 혁명 - 투명 인간'과 비슷한 시대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는 '외계인'이라는 모티프를 활용해 침략 전쟁을 일삼는 '제국주의 열강'을 비판하려 했던 것이지요. 쉽게 말해 '영국인들, 너희가 아프리카, 아시아로 가서 사람들을 총칼로 죽이고 괴롭히지만, 너희도 고등한 화성인이 온다면 똑같이 당할걸?'이라고 현실을 비틀어버린 것입니다.


소설을 읽으면 '위대한 대영제국의 군인'들은 고등한 화성인들의 공격에 손 한번 못쓰고 무너져 내립니다. 런던은 전부 폐허로 변하고 찐득찐득한 인간의 피로 뒤덮히지요. 더욱이 줄거리에는 제국주의 열강의 상징들이 '한방에' 날아가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외계인의 공격에 '기관차가 전복되거나', '전함이 침몰하거나', '며칠씩 신문이 도착하지 않는' 식이지요. 이 전쟁은 영국이 모두 파괴되고 희망이 없어보일 무렵 '미생물(병균)'의 도움으로 간신히 끝이 납니다.


런던을 초토화시키는 화성인 군단




신나게 쓰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이번 글에서는 원래 3가지 소설이 현대 문화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까지 이야기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길면 얘기가 지루하고 재미가 없죠. (개인적으로 집중 가능한 읽기 시간은 10분이라서요..) 그래서 오늘 글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읽은 내용이 재미있으셨다면, 다음번 글에는 똑같은 토픽의 다른 주제 '타임머신, 투명인간, 우주전쟁의 공통점 2부, 당신이 오늘 영화관에서 본 것은'이라는 제목으로 후다닥 돌아올게요! 그럼 그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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