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광섭 Apr 16. 2019

4월 생일에 느낄 수 있는 것들

4월은 태어나기에 퍽 괜찮은 달이다


T.S.Eliot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툴툴댔는데, 이 말은 4월에 태어난 내가 듣기에 썩 유쾌한 발언은 아니다. 물론 Eliot이 어떤 의미에서 그 말을 했는지는 학교 공부를 통해 대략 짐작 가는 바가 있지만 어쨌든 4월생의 입장에서 이 달이 꽤 괜찮은 때인 것만은 확실하다. 올해 생일도 어물쩡 어물쩡 휘리릭 지나쳐보니 4월에 태어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말로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한번 써보고 싶었다.


4월의 생일은 늘 벚꽃과 함께다. 그 시기가 약간 이를 때도, 혹은 늦을 때도 있었지만, 그건 아무리 일러야 몽우리가 터지기 직전이었고, 아무리 늦어야 초록 잎과 하얀 꽃이 섞이던 와중이었다. 그러니 생일만 생각하면 항상 하얀 꽃잎이 떠오르는 4월의 탄생은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꽤나 낭만적인 위치 선정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생일 무렵 외국에 있던 해에는 남의 생일날 축하받는 옆집 애 마냥 얼척없는 기분이 들곤 했으니, 벚꽃엔딩 브금이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리라.



이렇게 자연만 예쁜 것도 아니다. 4월 생일은 늘 많은 축하가 따른다. 학교의 새 학기는 항상 3월에 시작인데, 직전 학년 반이 헷갈리지 않을 만큼 적응하는 데는 대략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들과 가까워지는 것도 물론 마찬가지다. 3월은 아직 서먹한 달이라, 급식은 처음 보는 애와 쭈뼛쭈뼛 먹는 달, 남자애들끼리는 누가 축구를 잘하는지 조심스레 가늠하는 달이다. 4월 즈음 되어야 비로소 순식간에 가까워진 베스트 프랜드가 생기는데, 그러니까 연애로 치면 100일 차 같은 기분이랄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무조건 좋을 것 같지만 막상 5월 이후가 되면 서로 투닥투닥 싫은 점도 종종 보이기 때문에 4월에 생일을 맞는 것만큼 학교에서 많은 축하를 받는 때도 없다.


다만 4월에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그건 중간고사의 달이라는 것이다. 4월의 도처에는 시험이 널려있다. 더군다나 이 시험이라는 것은 그 해 처음 보는 시험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겨우내 다짐했던 ‘내년에는 다르게 살겠다’를 검증하는 시금석이 된다. 물론 해마다 판정은 ‘올해도 똑같네’ 정도로 나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다르다’가 혹여 가능할지도 모르니 늘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학교 3학년 때는 생일날 시험을 3개씩 보곤 했는데, 왠지 모를 억울함에 연필을 꾹꾹 눌러썼던 기억이 난다.


각자 자기가 태어난 달에 자랑과 불만이 있겠지만, 글쎄 나는 4월의 생일에 퍽 만족한다. 오늘도 청계천 인근에서 풋풋한 벚꽃이 떨어지는 걸 보고 있으려니, 비록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참 좋은 생일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다른 사람은 자기 생일을 어떻게 생각할까 틈틈이 궁금해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상]을 보셔도 되는 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