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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May 01. 2019

나이에 걸맞지 않은 자리

회사에서 '어린 책임자'로 살아보며 느끼는 것들

며칠 전  다른 회사로 강연을 한번 다녀왔다. 강연의 주제는 '사회적 가치 프로젝트 어떻게 시작하나요?'라는 알쏭달쏭한 내용. 아직 세상에 무엇 하나 완전히 이룬 것도, 제대로 보여준 것도 없는 내가 남 앞에 서서 '강사'라는 이름으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참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대개 이런 상황은 부득부득 피하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만도 않아 어쩔 수 없이 연단에 서야 하는 때가 간혹 있다. 그리고 요즘은 생각 외로 그런 경우가 잦다.


이번 강연의 목적은 예전에 내가 했던 사회공헌 사업의 방법론을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기업으로서 '의미 있는 사회사업'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비법(?)을 공유해달라는 요청이랄까. 요즘 여러 회사들이 지속 가능 경영(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기업 경영)에 몰두해 있다 보니 이런 문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더군다나 관련 일은 해본 사람은 한국에 무척 적어서 고작 나정도 되는 주니어에게도 많은 요청이 밀려온다.


그곳 회사에서 한 발표는 그 자체로 꽤 즐겁고 보람찼다. 연단에 서서 청중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는 것만큼 발표자로서는 즐거운 일이 없는지라 이야기가 끝나니 오히려 번쩍 힘이 났다. 그러나 그 뿌듯한 마음도 잠시, 곧이어 Q&A 시간이 되자 앞자리에 초롱초롱 눈으로 앉아 계셨던 한분이 손을 번쩍 드셨다. 그러더니 대뜸 '매니저님은 지금 몇 년 차신가요?' 하고 물어보시는 것이 아닌가. '네?? 저는 올해로 2년 찬데요..??'


그러니까 갑자기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처음에는 어떤 의미에서 치는 박수인지 몰랐으나 한 3초 정도 멍하니 생각해보니 학교를 갓 졸업한 애(?)가 이런 일을 해왔었구나라는 게 대견해서 쳐주시는 박수인듯했다. 아니면 고작 2년 차 밖에 안된 애(!)한테 단독 프로젝트를 맡겼던 대범(?)한 우리 회사에 치는 박수인가 싶기도 했고.. 그래서 우물우물.. '이게 박수받을 일인가 싶긴 하네요.. 허헛..;;'라고 얼버무렸지만 돌아오는 내내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이가 아직 어린데 (대학으로 돌아가면 화석이겠지만) 프로젝트 하나를 단독으로 맡아, 그것도 나보다 아는 것도 많은 팀원까지 꾸려 일을 수행하는 것은 한국에서 정말로 드문 일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특별히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고 그저 정말 어쩌다 보니(?) 조직상 그렇게 된 것이라 딱히 자랑할 만한 일은 못된다. 이렇게 '어린 책임자'로 1년을 근무하다 보면 방금 전 강연처럼 재미있는 해프닝도 종종 있었지만 사실 안 좋은 일이 참 자주 있었다.


우선 사내에서 무시당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간단하게는 회의실을 예약했는데 주니어인걸 보시곤 그 자리에 뭉개는 분들도 종종 있었고 이메일로만 이야기할 때는 프로젝트 매니저 직함이 있으니 친절하시다가 막상 만나자 하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나이 어린 사람은 아무래도 잘 모르고 부족할 테니 가르쳐 주는 것이 맞지만 일과 상관도 없이 '인생'을 훈계하는 분들이 가끔씩 있었다.


이런 일은 사내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외부 업체들과 계약을 하다 보면 40-50대 업체 팀장님들을 대할 일이 종종 있는데 극히 드물지만 연차나 나이를 묻는 분이 있다. 물론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은 뒤이어 따라 나오는 반응이 항상 일관되게 이상했다. '제가 매니저님 또래 때는 참 세상이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죠? 많~이 변했어요' 같은, 뉘앙스 상 뼈 있고, 의미 없는 말씀을 하는 식. 흠, 그분은 잘 모르셨겠지만, 그런 일이 파트너의 신뢰를 바닥냈다.


글쎄 왜 이런 경우가 자꾸 생기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복에 겨운(?) 박수를 한번 받아보니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치는지 조금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아마 그 박수가 '어린애'로서 거의 최초의 긍정 경험이었던 듯하다. 사회에서 '어린 책임자'로 산다는 것. 그러니까 뭔가.. 부족한 게 당연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참 생각지 못한 변수를 많이 일으킨다. 조직과 직함을 떠나 나이가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우리 사회에 아직도 정말 강하다는 것을 매번, 매 순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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