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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May 29. 2019

왜 나는 알라딘이 재미가 없을까

다들 재밌다는데 조금 실망한 사람이 쓴 리뷰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노래가 새로운 목소리로 들려오는 것, 그건 '그리우면서 동시에 신선한' 일이기에 마다할 사람이 없다. 요새 디즈니가 전념하는 고전(?) 애니메이션의 실사화가 딱 이 경우인데 그래서 그런지 '알라딘' 한 편의 개봉에 멀티플렉스 전체가 흔들거리는 듯하다. 또 곧이어 줄줄이 ‘라이온 킹’이나 ‘뮬란’처럼, 이제는 대명사가 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니 디즈니 팬 입장에서는 이토록 기대되는 일도 드물겠다.


신난다. 알라딘.


한참 지친 평일 저녁, 자스민 공주의 커다란 금 귀걸이가 찰랑이는 것을 떠올리며 꼭 같은 마음으로 영화관에 향했다.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알라딘을 만나지는 못했다. 다들 호평하는 영화에 혼자 '혹'평을 달려니 알게 모르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분명 안타까운 점이 많다. 나이를 먹은, 그리고 디즈니를 보며 자란, 그렇지만 조금 깐깐한 사람이 보았을 때 이번 알라딘은 어떤 점이 아쉬웠을까.




우선 영화는 스토리의 개연성이 무척 부실했다. 궁전에서만 자란 공주가 철딱서니가 없을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우리 쟈스민 공주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신다. 길거리 애들이 배고프다는 이유만으로 노점의 빵을 그냥 집어주는, 이 성인군자 연출은 이미 세상에 찌든 ‘어른이’의 눈에 ‘이건 만화에서나 가능한 거잖아요;;;’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공주의 행동은 마치 10살 무렵 일요일 아침에 보던 ‘디즈니 만화 동산’ 속 모습과 꼭 같아서 실사화라는 각색 자체를 무색하게 한다


이때는 참 아무렇지 않았는데.. 실사로 보니까 정말 이상하다.


지니의 마법으로 변신한 알라딘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진행 또한 스토리의 탄탄함을 갉아먹는다. 이런 장면은 아내의 유혹으로 대표되는 '안면인식장애 전개'의 전형적인 사례인데, 요정 지니가 아무리(!) 대단한 요술을 부렸기로서니, 최근에 만난 '마음에 드는 두 남자'가 말투며 하는 짓이 똑같다면 우리 공주님께서도 조금은 의심하셔야 하는 게 아닐까.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들다 보면 관객은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빠져나와 영화관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니 완전한 몰입감을 가지기 참 어려웠다.


스토리의 부실보다 치명적인 단점은 의문스러운 배역이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알라딘과 자파의 캐릭터가 말 그대로 '빈약하다'. 우선 주인공인 알라딘은 원래 자유로움과 재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이 핵심인데, 영화 속 모습은 그저 파쿠르를 잘하는 좀도둑으로 표현된다. 도입부의 소매치기신과 추격신이 그에게 '자유인'의 매력을 더하길 바랬지만 캐릭터 본연의 마력을 살리기엔 정말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음.. 이 사람이 알라딘이라고..?' 하고 떴던 가자미 눈이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유지되었다.


뭔가 묘하게.. 많이 달랐다.


알라딘보다 더한 미스 캐스팅은 악역인 자파였다. 영화상 유일한 악인인 그는 불행히도 어딘가 항상 어설펐다. 어렸을 적 내가 알던 자파는 코브라 지팡이 하나로 아라비아 전체를 으스스하게 만든, 그리고 게임에서도 너무너무 강력해 키보드를 팡팡치게한 악마 그 자체였는데, 영화 속 자파는 앵무새에게 중요한 정보는 거의 다 의존하는 좀 모자란 악당이다. 달리 말하면 주인공의 변신을 천천히 기다려주는, 친근한 이웃사촌 악역 3호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가 램프를 들고 온갖 악독한 소원을 빌어도, '저 분 얼마 못 가겠는걸?' 하는 생각만 들어 영화에 푸욱 빠져드는 것이 참 어려웠다. 그저 언제쯤 윌 스미스가 자파를 날려버릴까, 기다리는 상태가 되어 점점 심드렁해졌던 것 같다. 전체 관람가를 사랑하는 디즈니에게 '스톡홀름 증후군'을 떠올릴만한 매력적인 악당을 기대하는 건 너무 심한 요구겠지만, 적어도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 악당 정도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저 앵무새 같은 표정으로 영화를 보고 싶었다.


물론 영화가 아쉬운 점만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니다. 쟈스민의 노래와 지니의 재치(매우 의외였던 것이 사실 파란 윌 스미스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정말 대단한 능청을 보여줬다.) 그리고 화려한 무대 연출이 아라비아 여행을 즐겁게 이끌어줬다. 더욱이 이번 기회에 계속 반복할 OST 플레이리스트를 얻은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그렇지만 이 '알라딘'이 더 흥미진진한 것, 그래서 좀 더 매력적인 영화가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부디 이후에 나올 디즈니 영화들은 좀 더 너르고 푹-신해서 오래도록 생각나는 깊이를 가진 영화이길 조심조심 바라본다.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자스민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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