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프랑스 영화가 이렇게 재밌다구요?
가끔 굉장히 좋은 영화의 리뷰를 쓰려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자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버버대는 것과 비슷한 걸텐데요. 한 번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나부터 말해!’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며칠 정도 가만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채반에 사금파리가 남듯, 영화의 인상이 오롯이 가라앉게 됩니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이런 생각이 들만큼 아름답고 동시에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웃깁니다. 사실 이 단 한 가지만 보더라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프랑스에서 흥행했던 코미디 영화’라는 말을 접했을 때 한국 사람들이 보통 할 법한 생각은 ‘프랑스 영화가 진짜 재미겠어?’라는 의심일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간간히 마주쳤던 유럽 대륙의 문화가 생각보다 썩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일 테죠. 그렇지만 이 영화는 난해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저속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따뜻한 웃음을 전달합니다.
영화의 웃음은 오직 캐릭터에서 나옵니다. 음식 중에 묵말랭이처럼 처음에는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고소하다고 느껴지는 음식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웃음을 주는 패턴도 딱 이렇습니다. 관객은 등장인물을 친구처럼 사귀며 점점 영화의 웃음코드에 빠져듭니다. 10명의 ‘프랑스 수중발레 대표팀’은 한 명 한 명이 굉장히 독특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이 캐릭터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때 관객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나중에는 소리 내어 깔깔 웃어도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영화관의 분위기가 화악 달아오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일반적인 양산형 코메디물이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 영화는 영화를 잘 모르는 문외한이 보더라도 굉장히 꼼꼼하게 연출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사실 이 영화는 별거 없다’라는 의미심장한 내레이션으로 출발합니다. 그렇지만 곧이어 굉장히 ‘별거 있는’ 오프닝 신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인생은 네모에 동그라미를 넣는 것처럼 삐걱대고 어렵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이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영화가 카메라 연출을 끌어가는 원칙이기도 합니다. 관객은 거의 대부분의 주요 장면에서 동그라미와 네모가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들의 삶이 네모에 동그라미를 끼우듯 빡빡하고 어렵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지요. 더욱이 이런 연출은 전혀 촌스럽지 않고 매 순간 무척 자연스럽기까지 합니다. 장면마다 깃든 이런 세심함은 코미디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깊이를 전달합니다.
이 영화는 현실적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한 명 한 명은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루저들입니다. 딸에게 무시당하는 무명 로커, 파산 직전의 양아치 사장님, 2년 차 백수, 모태솔로 수영장 알바, 신경쇠약 별거남까지 수영선수 개개인이 모두 주옥같은 이력서(?)를 자랑합니다. 이 캐릭터들은 수영을 마친 뒤 사우나에서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는데, 우리 주변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아주 날것의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그나마 영화에서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라면 수중발레 코치인 델핀이 있을 텐데요. 관객들은 이 여리여리한 코치가 중년 아저씨 8명을 통솔하며 시까지 읽어주는 모습을 보곤 ‘저 사람만큼은 소위 정상(?)이려나’ 하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렇지만 곧이어 델핀 코치 역시 ‘알코올 중독자’에 ‘스토커’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우리의 아저씨 수영단은 절대 평범(?)한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이 영화는 비현실적입니다. 바로 앞에서는 영화가 현실적이라더니 여기서는 또 왜 정반대의 소리를 하냐 싶을 텐데요. 이 영화는 평상시에 지극히 현실적이다가도 비현실적이어야 하는 순간만큼은 환상적입니다. 간혹 영화를 보다 보면 끝까지 너무 현실적이어서 영화관을 빠져나올 때 관객이 무척 찝찝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내가 영화를 본 것인지 아니면 시사토론회에 다녀온 것인지 싶게 마음이 굉장히 무겁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해피엔딩이건, 새드 앤딩이건 적어도 찝찝한 엔딩은 아닙니다. 더 깊이 풀어내면 줄거리 스포일러가 되니 자세한 내막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은 모두 잔잔한 미소를 띠며 출구를 빠져나갑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감동적입니다. 영화에서 프랑스 수중발레 대표팀은 총 10명(코치 2명, 선수 8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워낙 다양한 캐릭터(10명)가 등장하다 보니 관객은 적어도 이들 중 한 명에게는 깊숙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은 배 나온 아저씨들과 같이 뛰고, 같이 수영하고, 같이 숨을 참으며 수중발레를 함께 배운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 바보 같은 아저씨들이 세계 선수권 무대에 오를 때 관중은 모두 숨을 죽이고 수중발레를 지켜봅니다. 남들이 ‘게이 같다’고 무시하고, '그까짓 수영이 뭐냐'며 비하할 때, 아저씨들의 훈련을 지켜본 관객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배불뚝이들을 응원합니다. 그래서 영화는 묘한 동료애(?)를 남기며 짙은 감동을 줍니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아무런 기대 없이 본 영화였습니다. 그렇지만 중반부부터는 ‘남은 시간이 짧아 아쉬운 영화’가 되었습니다. 사람에 대해 따뜻한 시선이 담긴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 인생이 힘들어서 위로가 필요하신 분,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웃고 싶으신 분, 모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본 영화가 개봉하면 꼭 한 번은 보시길 감히 추천드립니다. 저도 또 보러 갈거니까요.